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 리뷰
일본 드라마가 원작인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정우성이 <빠담빠담>이후 10여 년 만에 돌아온 드라마이다. 마음을 닫은 청각장애인 화가가 무명 배우를 만나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드는 사랑 이야기. 사실 어떤 이야기들이 그려질지 기시감이 조금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스토리보다 청각장애인을 이야기하면서, 그 주변의 침묵들을 그리는 디테일이 더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침묵을 그리는 디테일이 너무나 훌륭하다. 바꿔 말하면 미장센과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드라마라는 이야기이다. 청각장애인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 드라마에는 소리가 비어있는 장면들이 많다. 감독은 이러한 부분들을 적극 활용하여 비주얼과 배우의 표정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을 선보인다. 여기에 대사와 소리가 작으니 자연스럽게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사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그 무엇보다 <그해 우리는>을 연출한 김윤진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활용한 서로 다른 시선들이 인상적이었던 <그해 우리는>의 연출처럼, 침묵을 그리는 이 작품의 디테일한 연출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대화에 소리가 없으니, 대부분의 대사들이 글로 읽힌다. 소리가 없으니 비주얼에 더 집중하는 것만큼, 쓰이는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가 더 집중해서 읽히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 편의 소설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두 주인공의 마음의 소리를 글씨로 접근하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두 주인공 차진우와 정은모는 말이 없어도 결국 수화와 눈빛만으로 서로의 진심을 드러내고 전달한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이 진심들, 즉 마음의 소리를 시청자들도 눈으로 보고 글로 읽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물들의 진심이 색다른 방법으로 전달되는 이 작품의 남다름을 캐치한다면, 정말 개성 넘치는 멜로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이후 뭔가 어울리지 못했던 배역만을 맡았던 신현빈은 이번 캐릭터를 통해서 너무나 이상적인 정은모를 연기해 낸다.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와 사랑을 드러내는 표정연기, 특히 정우성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비주얼이 이 작품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분명 좋은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 연기였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우성. 사실 정우성은 그동안 어떤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그 연기력이 호불호가 극명했던 배우였다. 특정 배역에서 그 매력을 드러냈던 정우성은 이번 작품에서 그만의 우울하면서도 따스한 매력들을 효과적으로 믹싱하여 차진우라는 캐릭터를 단단하게 만들어낸다. 특히 중년임에도 여전히 청춘의 눈부심을 뿜어내는 그 독특한 아우라와 눈빛은 청각장애인인 차진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배우인데, 그 목소리를 걷어내고도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정우성의 표정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는지도 이번 작품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평범하지 않은 두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며 위로를 더해가는 사랑 이야기. 여기에 청각 장애인과 관계에서 드러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까지 세심하게 다루면서, 이 작품의 작은 디테일들은 계속해서 감탄하게 만든다. 하지만 반대로 이 작품의 큰 줄거리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식상한 전개만을 보여준다. 오랜 첫사랑의 등장과 삼각관계, 그리고 흔들리는 연인. 청각장애인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남다른 연출을 제외하면 이 작품의 스토리는 너무나 뻔한 전개를 답습하고 만다. 흥미롭게 봤던 전반부를 넘어 중반부부터 느려지고 지루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화의 엔딩 신에서 은모가 말한 대사처럼, 특별하다고 여겨졌던 이 작품들의 장점들마저 결국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은 불안한 흐름을 이어나간다.
함께여서 특별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들을
불편하다고 느끼게 될까봐 겁나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마음을 닫은 청각장애인과 자존감이 무너진 무명배우가 만나 서로를 위로하면서 진심을 전하는 과정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던 멜로드라마이다. 진심을 전하는 마음의 소리를 눈으로 보고 읽는 이 작품의 특별함만으로도 충분히 매력 넘치는 드라마였다. 미장센과 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비주얼과 귀에 감도는 OST, 그리고 멋진 배우들의 연기까지. 분명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많은 매력을 담고 있는 따스한 멜로드라마이다. 여기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비겁했던 츠네오와 다른 발걸음을 보여준 이 작품의 결말도 인상적이다. 물론 이 작품의 잔잔함과 침묵이 지루함과 불편함으로 느껴진다면, 평범한 스토리는 더 큰 단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