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물리학 1
지인분들과 건강습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여러 미션 중에 그날 읽은 책에서 한 문장 쓰기가 있다. 오전에 첫째와 외출하는 길에 잠시 동료분들의 한 문장을 읽어보다가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어 무슨 책인지 여쭤봤다. 림태주 작가님의 <관계의 물리학> 이란 책이라고 알려주셔서 집으로 오는 길에 도서관에서 빌렸다. 에세이라서 그런지 글이 참 편안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관계에 대한 작가님의 문장에 밑줄을 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겨났다.
서로의 마음에 난 길이 관계다. 인연이 관계로 나아가려면 서로 간의 아름다움 증표가 필요하고 영혼이란 아마도 관계 때문에 생겨난 관념일 것이다. 몸은 내게 돌아와야 하므로 길 저편에 남겨두고 올 또 다른 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몸을 뺀 나머지 전부를 일컫는 영혼이 생겨난 이유다. 몸이 서로를 잇는 길이라면 영혼은 서로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욕망이다. <관계의 물리학> p7
출장 가방 꾸리는 스타일
회사의 친한 다른 동료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출장 가방을 챙기는 각자의 스타일을 얘기하게 되었다. 어떤 동료는 출장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트렁크를 꺼내 열어놓고 필요한 물건들을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챙겨 넣는다고 했다. 또 어떤 동료는 나처럼 가져갈 품목을 메모지에 적어두고 그걸 보면서 챙긴다고 했다. 출장 가방 꾸리는 것도 다 각자 자기 스타일이 다르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첫 출장이 싱가포르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해외에 나가본 거라고는 첫 직장에 입사하고 회사 생활에 적응할 때쯤 친구와 단둘이 홍콩을 다녀온 게 전부였다. 여행과 달리 첫 출장이었고 상사분과 함께 가는 거라 설렘보다는 긴장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2박 3일 정도의 일정이었고 떠나기 전 바쁜 일정도 있어서 미리 가방에 놓을 품목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었다. 혹시 비상약품(감기약, 소화제 등)이 집에 없으면 미리 사놓고 떠나기 전날 메모해 둔 걸 보면서 트렁크에 챙겼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벌의 옷과 물건들을 꾸역꾸역 넣어갔다.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짐을 풀 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나 입지 않은 옷가지들이 숨죽이고 있는 걸 정리하면서 민망해지기도 했다. 출장 횟수가 늘어나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부터는 최소한의 것을 꾸리게 되었다.
물건 정리 습관
나 역시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불필요한 걸 쌓아두는 건 아니지만 수시로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못 버리는 물건들은 대개 추억과 관련된 사연이 있어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찍은 사진들, 출장지에서 받은 기념품, 10주년 기념으로 받은 동료들의 손 편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적은 육아일기, 처음 깎아준 손톱 조각, 탯줄, 처음 입힌 배냇저고리 등등. 남편의 경우 사회 초년생이 된 기념으로 아버님이 사준 겨울용 코트를 아직까지 입는다. 20년도 넘은 올드 스타일의 코트지만 아주 소중히 옷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온 어떤 것도 버릴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와서 닿았으니 놓아 보내는 것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닿음과 놓음 사이에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앞뒤 속 사정이 있는 것이다. 애써 닿은 데는 그만한 인연의 작용이 있을 테고 애써 놓은 데는 또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관계의 물리학> p28
놓음과 닿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통해서도 생각지 못한 좋은 인연들은 만났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보내기도 했다. 능력을 발휘해 더 좋은 곳으로 떠나가는 동료들을 기쁘게 보내기도 했고 또 다른 인연을 만나 관계를 맺어가기도 했다. 특별히 첫째가 고3 수험생일 때 성당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그때 만난 분들과 닿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험생 부모라는 공통분모로 만나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의 아이들을 위해 함께 백일 동안 매일 만나서 기도를 하면서 돈독해졌다.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서인지 가끔 문자도 교환하고 안부로 묻는데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따뜻한 사이다.
닿음은 서로 간의 틈새가 일순간 사라진 접촉이다. 그렇게 닿아서 접촉면을 넓혀갈수록 우리는 따뜻해지고 안온해진다. 놓음은 서로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분리다. 그렇게 놓아서 여백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홀가분해지고 안온해진다. <관계의 물리학> p28
여행 가방 꾸리기와 물건을 버리는 습관에서 시작해서 놓음과 닿음으로 이어지는 작가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사람에게 온 어떤 것, 특히나 사연이 있는 것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듯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작가님은 관계를 '어디에선가 누구는 놓고 어디에선가 누구는 닿는다'라고 표현하신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관계는 멈추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갈 거다. 때로는 살아있음으로 그리워하기도 하고 살아가야 하므로 잊히기도 할 거다. 그래도 최소한의 놓음, 최대한의 닿음으로 따뜻하고 안온함을 느끼며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