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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잊어버린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by 꽁스땅스

며칠 전 몸담았던 회사 동료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함께 근무하던 외국인 상사가 예정보다 빨리 본국으로 돌아갔다며 마음이 무겁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팀으로 일하면서 달라도 너무 달라 참 많이 힘들게 했던 사람이었다. 어지간해선 받아들이고 불편함도 감수하며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랐다. 3년을 함께 일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관계가 무르익기를 바랐지만 내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인연이 이어지지 못했다.




회사를 나오고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간혹 떠오르기도 했지만 잊고 살았다. 함께 할 때는 동료들에게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나의 억울함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들여다볼 생각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는지 모르겠다. 문자를 받고 나 역시 마음이 안 좋았다. 위독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급하게 떠났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성격이란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제외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들 모두 마찬가지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p43>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295475


책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링컨 역시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링컨의 생애에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몸서리쳐지는 사건으로 그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 귀중한 교훈을 배우게 되었단다. 책에서 소개한 그 사건은 이러하다.



링컨은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이후에도 그의 반대파 인사들에 대한 비판을 신문지상에 기고하곤 했다. 1842년 가을, 링컨은 허영심 많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제임스 쉴즈라는 정치가를 비방의 대상으로 삼았고 스프링필드 저널지에 익명의 편지를 보내 그를 인신공격했다. 이 글이 신문에 게재되자 사람들이 온통 쉴즈를 비웃었다.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제임스 쉴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는 투서한 자가 링컨으로 밝혀지자마다 말을 타고 그에게 달려가 결투를 신청했다. 링컨은 결투를 하고 싶지 않았고 결투에 반대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명예가 걸려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링컨은 무기를 선택해야 했다. 링컨은 남보다 긴 팔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병대의 장검을 선택하고 웨스트포인트 졸업생에게 개인교습까지 받았다. 그리고 약속한 날, 그와 쉴즈가 미시시피강의 강변 모래사장에서 만나 목숨을 건 결투를 시작하려는 순다 입회인들이 중재에 나서 결투는 중지되었다. 그 뒤로 링컨은 두 번 다시 남을 모욕하는 편지를 쓰지 않았고 남을 비웃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을 비난하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훨씬 후인 남북 전쟁 당시 링컨은 자기 부인과 다른 사람들이 남부 사람들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할 때면 이렇게 말했다. "그들만 탓할 수는 없네. 우리도 그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그들과 같은 행동을 취했을지도 모르니까"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리 장군이 패배한 군대와 함께 포토맥에 도착했을 때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가물이 범람해 있었고 승승장구한 북군이 추격해오고 있었다. 링컨은 미드 장군에게 즉각적인 공격을 요구하는 특사를 파견했다. 그런데 미드 장군은 명령을 받은 대로 하지 않고 바로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시간이 지연시키고 각종 구실을 내세워 전보를 보냈다. 리 장군을 공격하는 것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결국 리 장군은 병력과 함께 포토맥 강을 건너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링컨은 낙담한 심정으로 미드에게 어지간히 화가 나서 편지를 썼다. 하지만 아주 조심성 있게 쓴 그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 편지는 링컨이 죽은 뒤 그의 서류함 속에서 발견되었다. 링컨은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신랄한 비난과 힐책은 결국 대개의 경우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보들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하고 비난하며 불평한다. 그러나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서는 인격과 극기심이 필요하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p52>



첫째가 태어나고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까다롭게 아이를 대한 적이 있다. 워킹맘으로 예민하던 시절이라 음식을 흘린다거나 물건을 정리하지 않는다거나 아이의 결점을 들춰냈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회의하던 중에 전화라도 하면 쌩한 목소리에 "무슨 일이냐"며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첫째는 출근하는 나를 보며 "엄마 잘 갔다 와!" 하고 환하게 웃어주고 퇴근하는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수첩을 꺼내 일정을 확인하다가 첫째가 손글씨와 그림을 그려준 걸 발견했다. "엄마 빳팅! 언제나 빳팅! 좌절은 No! 일 잘하구와 ~ 나두 열심히 할께~ 두유 언더 스텐? 우리 언젠가 같이 데이트하겠지? 쿠쿠. 그롬 B2 B2 ♥ 일 잘하고 오셈~~♥ 그날 나는 말할 수 없는 엄마로서의 부끄러움에 사로잡혔다. 내가 왜 이런 나쁜 버릇을 갖게 되었을까?



책에서 저자는 흔히 부모들이 자녀를 비난하고 싶어 한다며 비난하기 말라고 말하기를 기대하겠지만 이런 충고를 한다. " 자녀를 비판하기 전에 미국 저널 잡지의 고전 중 하나인 '아버지는 잊어버린다'를 읽어보십시오" <아버지는 잊어버린다>가 작가 W. 리빙스턴 라니드에 의해 발표된 이래 잡지, 가정지, 일간신문에 수백 번 게재되었고 거의 모든 외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 기사 중 일부를 발췌해 보았다.


..... 잘못만을 찾아내 꾸짖는 버릇을. 그것도 너를 착한 아이로 만들려다 생긴 버릇이란다.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린 너한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한 데서 생긴 잘못이란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너를 재고 있었던 거란다. 그러나 너는 착하고 따뜻하고 진솔한 성격을 갖고 있다 너의 조그만 마음은 넓은 언덕 위에 비치는 새벽빛처럼 한없이 넓단다.

.. 하지만 나는 너와 사이좋게 지내고 네가 고통을 당할 때 같이 괴로워하고 네가 웃을 때 나도 웃겠다. 너를 꾸짖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혀를 깨물겠다. 그리고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되뇌어야지.

"우리 애는 작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라고

너를 어른처럼 대해 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단다.....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너한테 요구해 왔구나 너무나도 많은 것을.

<카네기 인간관계론> [아버지는 잊어버린다] 중에서 p54~p56>


예전에 나 역시 아이의 입장에서 첫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수첩을 본 날 깨달았다. 엄마인 내가 유치원생인 딸을 회사 동료를 대하듯 어른처럼 대해 온 것이 부끄러웠다. 뒤늦게야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나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아이에게 사과했다. 이제는 성년이 된 첫째. 그 옛날 수첩에 적었듯이 친구가 되었다. 저녁 준비며 집안일에 나의 전적인 조언자 노릇을 하고 있다. 가끔씩 옛날 못난 엄마가 했던 말이나 해주던 서투른 요리들도 다 기억한다. 어린 첫째에게 많은 것을 바라던 못난 엄마에서 첫째 덕분에 조금은 성숙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난 이나 비평, 불평을 하지 말라 <카네기 인간관계론>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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