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 바꾼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은 어제 집중이 안 되어 목표한 분량을 소화하지 못한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몇 페이지를 읽다 책상에 놓인 다른 책의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폈다. 잘 읽힌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만든 구체적인 일상들의 기록인 <예술하는 습관> 이란 책이다. 오늘 읽은 챕터는 '여자들은 대체 어떻게 해냈을까'와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그냥 쓸 것'인데 그중에서 마음에 와 닿았던 두 명의 작가를 소개하려고 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031686
글을 충분히 읽고 충분히 생각해야 해야 할 이야기가 생긴다
나이가 칠십 줄에 들어선 작가 니키 조반니 Nikki Giovannir(1943~)는 시인이자 운동가로 활동하며 버지니아 공대의 교수로 일한다. 조반니는 하루에 두 시간씩 죽어라 글 쓰는 작가가 아니다. 조반니는 아침 6시나 7시에 일어난다. 처음에는 그냥 집에서 빈둥 거리다 아이디어가 있거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면 커피를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 빈둥거린다.
제가 매일 하는 일은 독서예요. 만화책이라도 꼭 읽죠. 학생들에게 말해두는 게 글을 쓰는 것보다 뭔가를 읽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하는 습관 p174>
그녀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다만 파고들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고 가치가 없는 것을 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어렵다. 창작에 부딪힌 적이 있냐는 저자의 질문에 '그런 적은 없다'도 했다. 그리고 이런 조언을 한다.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전혀 느끼지 않아요.... 잘 풀리지 않는 것은 그냥 흘려버려요...
장벽에 부딪힌다면 글을 충분히 읽지 않기 때문이에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요. 사실 장벽 같은 건 없어요. 그냥 할 이야기가 없는 거죠. 그런 시기는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여야 하죠.
<예술하는 습관 p175>
조반니와의 인터뷰 글을 읽으면서 매일 읽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벽돌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압박감이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딴짓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다른 책으로나마 가라앉았던 흥미와 의욕을 다시 재생시킬 수 있어 다행이다. 책에서의 피로감을 다른 책으로 푸는 신기한 경험을 또 해본다. 글을 충분히 읽고 충분히 생각해야, 해야 할 이야기가 생긴다는 니키 조반니의 말을 가슴에 새겨야겠다.
커다란 돌을 계속 언덕으로 굴러 울리는 것이 삶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여권 신장론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300쪽 분량의 논문 [여성의 권리옹호]를 6주 만에 완성했다. 그녀는 항상 글을 빨리 써서 대부분의 작품들을 비슷한 시간 내에 완성했고 때로는 그 때문에 작품의 질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쓴 논문이 상당히 균일하지 못하고 방법과 배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두드러진 작품이라 비평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담성과 의분(불의에 대하여 일으키는 분노)은 그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는 출판되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강한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성공을 만끽하는 여유를 부리는 성격이 아니어서 곧장 다음 작품으로 들어갔다.
삶이란 인내하는 노동에 불과하다. 커다란 돌을 계속 언덕으로 굴려 올리는 것이 삶이다. 마침내 돌을 고정시켜놓았다 생각하고 쉴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순간 돌은 다시 굴러 떨어진다. 그럼 그 모든 고생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 예술하는 습관 p187>
매일 읽고 쓰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만하면 됐다 생각하고 쉬어야지 하는 마음은 매 순간 찾아온다.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조용히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노력하다가도 어떤 날은 해야 할 일이 많아 짜증이 나기도 한다. 책을 읽다 깜박깜박 조는 일도 그만두고 싶지만, 카페 봉사가 없는 날엔 더 많이 읽고 미리 글을 써두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은 늘 따로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며 그들은 가정을 이루고 처리할 집안일이 많았음에도 자기만의 시간을 찾아 날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예술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들에겐 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그 모든 것들이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의 표현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커다란 돌(매일 읽고 쓰는 습관)을 계속 언덕으로 굴려 올리는 것이 삶이다. 말도 안 되는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매일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간 쌓아온 돌(매일 읽고 쓰는 습관)은 굴러 떨어진다. 그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한번 내가 읽고 쓰는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삶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로 바꿔놓는다.
-버지니아 울프-
지난 15일간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은 <관계의 물리학>을 읽고 쓴 글이다. 벽돌 책을 읽으면서 예민해졌던 터에 동료분의 서평을 통해 알게 되어 읽은 책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조금씩 깎이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두 편의 독후감에 가까운 서평을 썼는데 많이 읽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에 글이 잘 써져서 기분이 좋았다. 더군다나 두 번째 서평은 카페 봉사를 하고 저녁에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막막했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를 시작을 하니 의외로 예전에 봤던 영화와 아이들을 키우면서 읽었던 만화책도 생각이 나서 쓰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
매일 읽고 쓰기를 하다 보니 어떤 날은 글감이 안 떠올라 저녁시간이 되도록 집안일을 하며 서성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조금만 읽어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 기쁜 마음으로 노트북을 켠다. 그래서 매일 읽고 쓰기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남은 15일 동안 계획한 책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려 한다. 어떤 글을 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충분히 읽고 충분히 생각하다 보면 할 이야기가 생길 거라 믿는다. 두리번거리지 말고 계속 돌을 굴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