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지
보통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내가 맞게 이해하고 있는지, 내 나름의 해석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특히 회사생활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열심히 메모를 하고 이야기가 끝난 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요약해서 되묻기도 한다.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는 상대가 말하는 요점을 뽑아내고 일반화해서 정리하는 일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4457455
소크라테스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사람이 아는 척만 하고 있을 뿐 사실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인 점을 지적했다. 무지無知의 지知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애초에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인식이 없으면 학습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때 비로소 배움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이 생겨난다. 그 후 학습과 경험을 쌓으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상태로 옮겨 가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는 상태다. 마지막은 진정한 달인 즉 숙달의 영역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잊고 있는)'상태, 즉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른다.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예를 섞어가며 한참 설명했다치자. 그런데 마지막에 상대방에게 단순 명료하게 '결국 OO이라는 뜻이죠?"라는 말을 듣는 다면 설령 요령 있게 정리한 말이라 해도 어딘가 소화불량처럼 또는 뭔가 누락된 것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또한 듣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결국 OO이라는 뜻이죠? 하고 끝내는 습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우리는 쉽사리 알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걸까? 영문학자이자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의 저자인 와타나베 쇼이치는 "두근두근할 만큼 알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역사학자 아베 긴야 교수가 그의 스승인 우에하라 센로쿠 교수에게서 " 안다는 것은 그로 인해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우리는 배움을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정체되고 만다.... 우리가 안다고 내세우는 일에 조금 더 겸허해져도 좋을 것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p268>
우리는 무의식 단계에서 마음속으로 '멘털 모델 mental model'(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마음속에 갖고 있는 세가를 보는 창'을 뜻함)을 형성하는데 현실이라는 바깥세상에서 오감을 통해 인식한 정보를 멘털 모델을 거쳐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걸러지고 왜곡되어 받아들여진단다. "요컨대 OO이라는 뜻이죠?라는 정리하는 것은 상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가진 멘털 모델에 맞춰 이해하는 듣기 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듣는 다면 자신을 바꿀 기회를 잡을 수 없다며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에서 듣는 방법의 깊이의 네 단계-매사추세츠, 공과대 MIT의 오토 샤머 교수의 U이론- 를 소개했다.
1단계: 자신 내면의 시점에서 생각한다. 새로운 정보를 자신이 과거에서부터 지녀온 사고 속으로 입력한다. 미래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효과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상황은 파멸에 이를 정도롤 악화된다.
2단계:시점이 자신과 주변의 경계에 있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미래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는 효율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본질적인 문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 대처할 뿐이다.
3단계:자신의 외부에 시점이 있다. 고객이 감정을 고객이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일체화한다. 상대와 비즈니스 거래 이상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4단계: 자유로운 시점. 무언가 큰일로 이어지는 직감을 얻는다. 이론의 축적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체험과 지식을 연결할 수 있는 지각 능력이 생긴다.
이들 네 단계의 커뮤니케이션 중 "결국 OO이라는 뜻이죠?"라고 정리하는 것은 가장 낮은 듣기 단계인 1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듣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틀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상대와 더욱 깊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창조적인 발견과 생성을 이끌어 내려면 '결국 OO이다'는 식으로 축소해서 인식하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의 데이터와 조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약 ' 결국 OO이라는 뜻이죠?"라고 요약하고 싶어 질 때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과 발견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라 제안한다.
처음에는 그동안의 나의 방식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든 저자의 논리라 생각했다. 과거의 경험치로 이해하고 되묻는 게 뭐가 나쁜가?라고 말이다.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편견을 벗어나 나 스스로 체화해서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무지의 지라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에서 배움이 시작되고 실제 학습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구나 느끼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으로 인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표현할 수 있고 나도 모르게 그간의 체험과 지식과도 연결되는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키우라는 조언으로 와 닿았다. 어찌 보면 이런 독서를 통해 나의 틀이 바뀌어야 함을 느끼는 것 또한 무지의 지의 시작이겠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습성을 경계하고 삶에 적용해보고 변화해보는 것까지 노력해보기로 하자.
쉽게 아는 것은 과거의 지각 틀을 그대로 늘려가는 효과밖에 가져다줄 수 없다 정말로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려면 안이하게 '알았다'라고 생각하는 습성을 경계해야 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