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심리학 2
경외라는 단어는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는 종교적인 의미가 짙다. 단순히 공포심을 가지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하고 불가침 한 존재인 신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이 섞인 감정을 품고 마음을 다하는 자세가 내가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의 경외다. 일반적인 경외감은 어떨 때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랜드 캐니언,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대자연의 신비나 웅장함을 대할 때, 스포츠 경기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기적적인 기록을 만들어내는 선수들을 대할 때 흥분되고 놀랍고 때에 따라서는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테크 심리학>에서는 현대인들이 경외감을 느끼는 대상은 신이 나 자연이 아닌 자신들이 가진 최신 기술이라고 말한다. 경외감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기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계와 장치를 접했을 때 놀라움을 표현하는데 그 놀라움은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가진다. 종교적이거나 공동체적인 요소는 줄어들었고 훨씬 개인적인 성격을 띤다. 자만심과 자아도취를 잠재울 능력도 약해졌다. 그 단어는 이제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와 마주칠 때의 감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테크 심리학 p358>
결혼하고 시아버님으로부터 전보를 받은 적이 있다. 진보라는 것이 영화 속에서 전쟁에서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장면이 익숙해서인지 나에게는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시아버님이 보낸 전보는 생일을 맞은 며느리를 축하하는 메시지여서 처음 받았을 때 생소한 기억이 난다.
책에서는 전보라는 발명품이 처음 나왔을 때 놀라운 신성의 발현으로 여겨졌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된다. 초자연적인 권능을 활용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기술이라 본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신기술에 놀라 새로운 기기들이 감히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까 걱정했고 신의 능력을 취하여 자아를 부적절하게 확장하는 행동을 두려워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들도 경외감만큼은 품고 있었으며 천국에 전보를 보낼 수 있다거나 고인이 된 사람들과도 연락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심리학자, 의사, 사회학자는 과거의 경외감을 현대인은 더 이상 경험하지 않는 원시적인 감정으로 치부했다. 이런 변화로 현대인들과 기술과의 관계는 보다 세속적이다. 현대인도 발명을 놀랠 때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이룩한 일에 대한 경외감이지 인간의 위력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를 바라보며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자아의식이 성장하면서 오히려 우주의 장엄함과 그 힘에 대한 의식은 점점 작아졌다는 거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경외감이 사회적 결속체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감정적 체험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온라인에서의 경외감이라는 감정이 생소했는데 책에서 언급한 세 사람의 예는 나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사는 그레그 베일스는 여러 질환을 치료해 주는 앱을 개발하는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데 경외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글을 남긴 적도 있다. 그는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경외감과 옛날 사람들이 교회에서 경험했던 초월 의식 사이에 종교적 유사성을 발견했다. 종교는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입구와 같은데 게임과 앱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레그는 디지털 기술의 경외할 만한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열광했다.
...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이 조그만 스마트폰 안에 온 세상이 다 들어있는 것이 정말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닌 온 우주가 다 들어있는 셈이지요. 그리고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모든 걸 보여줍니다. 제가 경외감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감동적이에요. 이런 경험은 지금까지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해본 적이 없어요. 이 핸드폰을 사는 데 고작 100달러밖에 안 썼는데 순식간에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됐네요 <테크 심리학 p389>
그래미상을 수상한 작곡가 에릭 휘태커 Eric Whitacre의 TED 강연'가상합창단 2천 명의 목소리는 컸다'가 한 예다. 완전히 몰입한 청중들 앞에서 휘태커는 전 세계에 흩어진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아카펠라 곡을 요청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휘태커의 곡 '황금처럼 찬란한 빛 Lux Aurumque의 각 파트를 불렀고 그것들을 다 합쳐 하나의 합창으로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인터넷과 협조해 준 팬들의 헌신 덕분에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2faDxw7WW4
워런 트레지번트는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회사의 제작 관리자로 현 직장에서 일하기 전 픽사 스튜디오에서 작품 애니메이터로 활약했다. 워런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의도적으로 마술과 환상을 만들어 내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어려서 <스타워즈>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 때문에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라는 마술을 경험했던 그가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경외감을 던져주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마술사가 될 수 있는지가 그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우리와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지난 주말 공들여 벼린 칼을 두 개 꺼내어 보여주면서 모든 도구는 중요하고 칼이든 소프트웨어든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자 하는지에 관한 진실"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진실이 발견되었을 때 또 거기에 오래되고 거추장스러운 방식을 대체하는 훌륭한 설계가 접목되었을 때 비로소 경외감이 샘솟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지금 하는 일의 목적은 애니메이터들이 '생각의 속도로 일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다. 업무는 환경이 편리해질수록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재능과 근면함의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테크 심리학 p401>
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기술에서 느끼는 경외감이란 감정에 확실하게 이해와 공감이 갔다. 기술 개발자들이 '경탄을 자아내는 경험'을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모습 또한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기술과 경외감의 관계에 대해 어떤 관련이 있을까란 의구심이 있었다. 앱이나 게임 개발자들이 대부분 상업적인 판매를 위한 일을 하겠지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놀랍고 마술 같은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경외감을 살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음을 알았다. 휘태커의 온라인상의 합창곡을 들었을 때의 감동, 경외감은 잊지 못할 듯하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이런 경외감을 더 많이 경험할 기회를 만드는 노력이 계속되길 바란다.
경외감은 인간을 초월하는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이며,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도 마찬가지다. <테크 심리학 p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