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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 뭐라 하지 말아요

태도의 말들 2

by 꽁스땅스

오늘은 카페 봉사 가는 날이다.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는 상태라 전철로 향하면서 오늘은 손님이 없겠구나 생각하며 일찍 마감을 하고 와야지 했다. 전철에 탑승하자마자 가방에 챙겨갔던 책을 꺼내 읽었다. 부담 없이 읽으려 챙겨간 책 <태도의 말들>.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읽은 부분 중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에 머물게 했다.


그중 하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화가 윤석남의 인터뷰 글을 보고 쓴 저자의 글이다.


다만 노력하는 건 내 성향을 인정하고 잘 가꾸는 일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뒤통수를 치는 한마디를 읽었다. "예술이란 99퍼센트가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거라 하는 건데 재능이 있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라는 이야기를 읽고서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내 성격 바꾸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그것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무슨 상관이야? 앞으로 누군가 내 마음에 태클을 걸어오면 속으로 읊조리겠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겠다는 게 무슨 상관이야?" <태도의 말들 p181>


늦은 나이도 아닌 듯 보이는 마흔에 시작한 화가라면 그 정도의 배포는 필요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재능을 떠나 하고 싶은 걸 찾고 재능을 떠나서 가능, 불가능을 따지지 않고 도전하는 그가 멋져 보였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뭘까? 생각해본다. 지금으로서는 매일 읽고 쓰는 것이다. 하랑에서 퇴근하는 길에 아파트 우체통에 택배가 와있다. 어제 주문한 책이 한 권 배송되었다.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택배 봉투를 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집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퇴근했다. 거실 책상에 택배 봉투를 보며 주기적으로 새로운 책이 쌓인다며 한소리 한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다 나도 들리든 말든 혼잣말을 한다. "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 뭐라 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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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람에 관심이 많아 어떤 인터뷰도 흘려 읽지 않으려고 한다며 책 속에서 발견하는 문장도 좋지만 더 관심을 기울이는 건 한 사람의 입말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잡지를 보다가 시인 서한영교의 인터뷰 속 한마디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시시한 일상을 잘 가꾸며 사는 사람", "요리나 청소 같은 삶의 작은 단위부터 잘 가꿀 줄 아닌 사람"에 밑줄 긋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의미는 거대한 사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사건들이 퇴적되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오늘 내가 한 생각과 말, 들은 말들로 내 인생이 꾸려진다. <태도의 말들 p157>


일상이 모여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인데 예전에 몰랐던 시시한 일상이 참 소중하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의 속도도 몇 배 속으로 빨라짐을 느낀다. 하루하루의 작은 사건들이 퇴적되어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지만 어떤 것이든 기록하지 않는다면 잊히게 마련이다. 오늘 내가 책을 읽으며 든 생각, 사람들을 만나 들은 말들 역시 기록하지 않는다면 휘발되어 버릴 거다. 이 글을 읽으니 매일 읽고 쓰며 한 줄이라도 내 생각을 적어보려는 하루하루의 노력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 줄이 두 줄, 세 줄, 그리고 한 바닥으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길 소망하며 나도 저자의 말에 밑줄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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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을 돌아보니 계획했던 책 중 한 권을 완독 했고 나머지는 아직이다. 물론 선택한 책들을 소화하며 잠시 다른 책으로 기분전환을 하기도 했다. 여느 때보다 책을 읽는 속도나 글쓰기를 하는 거나 쉽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평을 쓰는 방식에 대해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라이브톡을 통해 동료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읽고 있는 책들을 완독하고 글쓰기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다만 모든 걸 책에 의지하기보다는 느리더라도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몇 자라도 서평에 녹여보는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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