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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으로 충만한 개인이 된다는 것

테크 심리학 3

by 꽁스땅스

블로그에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남짓 되었다. 지나온 1년을 잠시 떠올려본다. 오랜 회사 생활을 접고 건강상의 이유로 아무런 계획 없이 워킹맘에서 주부로 살아가다 보니 하루, 일주일, 한 달이라는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상주 할머니, 도우미 이모님에게 맡겼던 가사를 내 손으로 하게 되었다. 하루에 하나씩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했다. 사회생활을 지탱하게 해 준 새벽 운동은 꾸준히 이어갔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싶어 남편의 권유로 커피를 배우러 다녔다. 새로이 배우는 걸 좋아해서 관심 있었던 언어 공부를 위해 학원에도 다녔다.


그렇게 8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에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는 남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큰소리친 나였다. 하지만 멀티플레이어가 되기에는 회사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일을 쳐내기에 급급했다. 준비는 고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뒤늦게야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어떻게 살아야지?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도서관을 다니며 어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뒤적이곤 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가기조차 귀찮아져서 집에서 어학원 공부도 책도 손이 안 가기에 무의식 중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살펴보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 빡독, 빡세게 독서하자]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빡세게 독서하자?라는 말이 신선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Kcokf7kt84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식은 실로 허약하며 쓸모없고 교육적 실패의 결과물에 불과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학문적 성취의 외장일 뿐이다.
<생각의 탄생 p43>


스피커분이 읽은 책 <생각의 탄생> 안에 문장을 읽어주시곤 지식의 탐색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게 지식의 심화는 만무하다는 말씀에 공감이 갔다. 뒤이어지는 임계점이란 단어, 한 분야의 책 100권 읽으면 최고 전문가는 아니지만 준전문가는 될 수 있다, 독서에 대한 임계점을 뚫고 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완독 후 삶이 바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독서가 가장 완벽한 투자이고 독서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숙주가 돼보자고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즐거움, 자기 계발 면에서 적은 효용을 투입해서 가장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완벽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통해 임계점을 뚫고 삶의 새로운 계기를 맛봤으면 합니다. -빡독. 신영준 박사님의 스피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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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가량의 영상을 보고 망치로 한 대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책을 통한 공부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의지를 도와줄 환경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독서모임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서평이란 것을 제출하고 통과가 되어야 했기에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스마트폰은 대부분이 업무용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가족들 지인들과의 소통 정도로 사용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독서모임 도전을 위해 어디에든 공개적으로 글쓰기를 해야 했다. 몇 년 전에 만들어 둔 블로그 계정을 열고 2019년 6월에 처음으로 공개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생전 처음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삶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았다. 대중을 의식해서 아름답고 보기 좋은 '좋아요'나 팔로워를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변화를 위한 기록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하고자, 목표한 공부를 위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벽시간을 활용하고자, 식습관을 바꾸고자,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고자 등등. 어찌 보면 혼자 조용히 할 수도 있지만 소셜미디어라는 환경설정을 통해 스스로의 중요성을 알리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이자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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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이기주의, 허영심, 자부심을 조금만 보여도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옷차림이 너무 화려하거나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 너무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 지위와 영광을 추구하는 것, 자신의 권력에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 등도 그러했다. 자기표현은 겸손과 절제가 필요한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부적절하거나 과다한 자기표현을 억누르는 사회적 압력에도 자기표현을 긍정하는 요소들은 19세기에 등장해 20세기에 완전히 꽃을 피웠다. <테크 심리학 p48>



책 <테크 심리학>에서는 과거 사람들은 사진과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 제 알게 됐고 도덕적 부담 없이 자신의 모습을 가꾸어갔다고 했다. 거울이 널리 보급되고 허영심이 별로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달라져 허영심 vanity 이 아예 거울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허영심이란 헛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진실에 무지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나 빠져드는 세속적인 관심사라는 생각도 힘을 잃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울'로 손쉽게 허영심에 빠져들 수 있다. 언제든 '베니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되었다. 과거에는 사진과 거울이었던 것에서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영역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고대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면 21세기의 나르시스는 페이스북, 셀카, 블로그 게시물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신화 속의 나르시스는 오로지 자신의 모습에만 빠져들었지만 현대 디지털 시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소셜미디어 콘텐츠에 독자들이 보내주는 '좋아요'및 여러 댓글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현대의 자아도취는 예전과 개념이 달라진 것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의미가 되었으며 뜻밖에도 좀 더 사회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자기 자랑은 타인과 연결되어야 하는 필요에서 나온 공동의 약속이기도 한 것이다. <테크 심리학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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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글을 쓰면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내 안의 감정 변화들이 있었다. 어떨 때는 과감하게 내 생각이나 나의 경험을 표현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너무 개인적인 부분까지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인정하며 솔직한 글쓰기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느슨한 유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감정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책을 읽고 한 줄이라도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와 사람들과의 온라인 소통은 예전에 느끼지 못한 충만함과 기쁨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감정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감정은 타고나거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블로그, 브런치 등을 이용한다. 올해 새로이 시작한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어 인스타그램에 인증을 하고 있다. 겉모습을 잘 꾸며서 보여줄 수는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나에 대해 속속들이 보여줄 수는 없다. 직접 만나 소통해도 그건 아주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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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의 나의 감정이 변화한 것처럼 앞으로도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투영될 것이고 나 또한 영향을 받아 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인생에서 어떻게 기술을 나에게 맞게 적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와 현명한 판단으로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지칠 줄 모르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모든 일이 가능한 이 시대에 멈춰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과연 어디서 발휘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그럴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제대로 된 기술 철학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최신 기술을 인간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게 또 우리가 만들 세상에 가장 어울리게 제한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믿는다. 위너의 통찰은 우리에게 인간은 자신이 가진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구상하고 선택하는 능력과 책임으로 독특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테크 심리학 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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