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만들어간다
오늘은 카페 봉사 가는 길에 전철에서 <예술하는 습관>을 이어서 읽었다. 세 개의 챕터,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영감을 기다리는 시간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일상과 예술의 균형에 대하여 를 읽었는데 그중에서 좀 더 알고 싶고 작품을 접하고 싶은 두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끝이 나지 않는 집안일 사이사이
미국의 소설가 헤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r 1811~1896). 대표작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통해 노예제도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분노를 표현했다.
당시 스토는 서른 살이었고 수년 동안 잡지에 이야기를 싣고 있었다. 데뷔작 소설집도 나올 무렵 스토는 네 아이의 엄마였고 일곱째 아이까지 낳아 길렀다. 신학교수인 스토의 남편은 그 시대 기준으로 열려 있는 사람이라 아내의 글쓰기를 격려해주었고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가 집안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키우기를 바랐다. 그녀는 올케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전형적인 하루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이 글을 쓰면서 적어도 열두 번은 글쓰기를 중단했어요. 한 번은 생선장수한테서 생선을 사려고, 또 한 번은 출판업자를 만나려고, 그다음에는 아이를 돌보려고 글쓰기를 멈췄죠. 그러고는 저녁식사로 차우더 수프를 끓이려고 부엌에 들어갔어요. 지금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다시 글을 쓰고 있죠. 그런 결심 덕분에 항상 글을 쓸 수 있어요. 이건 마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죠 <예술하는 습관 p232>
스토는 끝없는 집안일에도 불구하고 매일 세 시간씩 글을 쓸 수 있었다. 1852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출판하면서 부유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었지만 어김없이 또다시 집안일에 치여 글쓰기를 뒷전으로 미루게 되었다. 스토가 <톰 아저씨의 오두막> 후속 편을 쓰기 시작했을 때 스토의 남편은 출판업자들에게"아내의 집안일을 덜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라고 편지를 썼다.
우리 집 거실 책장에 꽂혀있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 우리나라에서는 <엉클 톰스 캐빈>이란 제목으로도 익숙하다. 남편이 명저라며 꼭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던 책이기도 한데 아직이다. 남편 말로는 이 책이 나오고 노예해방의 전기가 된 미국 남북전쟁을 촉발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며 출판 후 스토가 백악관에 방문했을 때 에이브레햄 링컨 대통령이 "당신이 이 엄청난 전쟁을 촉발시킨 책을 쓴 바로 그 조그마한 여인이로군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노예해방을 반대하던 남부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스토의 일상을 들여다보니 아이를 일곱이나 키우면서 대작을 완성한 그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하기에도 버거웠을 텐데 당시의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글로 표현하고 책으로 내기까지 의지가 확고한 작가였던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퇴근하고 거실에 <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란 책을 꺼내보았다. 당시 처참했던 노예제도의 현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언제고 그 현실을 냉정하게 읽어봐야겠다.
지금도 수천 명의 가슴을 찢어놓고, 수천 세대의 가족을 이산 시키고, 온순하고 힘없는 종족을 광기와 절망으로 내모는 잔인한 제도에 대하여 나는 이 책에서 그저 희미하게 그림자 정도만 묘사했을 뿐이다. 미국 법률의 그늘 아래, 그리스도 십자가 그늘 아래. 우리나라의 연안에서 시시각각 벌어지는 저 끔찍하고 살벌한 현실에 필적할 만한 비극적 작품은 쓸 수도 없거니와 말할 수도 구상할 수도 없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해리엇 비처 스토
한 편의 영화는 글에서 시작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감독, 제인 캠피온 Jane Campion(1954~). 그녀가 영화 한 편을 탄생시키는 기나긴 과정은 언제나 글쓰기로 시작된다. 뉴질랜드 태생의 영화 제작자로 일곱 편의 장편 영화 중 다섯 편의 대본을 직접 쓰거나 공동집필을 했다. 캠피온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창작과정은 대체로 직관적이라고 말했다.
이름 지을 수 없는 감정이 시발점이에요. 분위기랄까. 뭐 그런 게 느껴지죠. 전 그렇게 느껴지거나 떠오르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글을 쓰려고 해요. 그 과정이 잘 진행되면 결국에는 그 분위기가 영화가 되죠 <예술하는 습관 p281>
캠피온이 1993년도 영화 <피아노>의 대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일주일 동안 혼자서 그 이야기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머릿속에 빠져들어 지냈다. 그때는 며칠 동안 가끔씩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감이 오면 기본적으로 9시부터 5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그녀의 집필 과정은 깨지고 흐트러지기 쉬웠다. 진짜 영감에 사로잡힐 때는 일하고 또 일한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거나 지쳤을 땐 아쉬워하기도 했다
책을 통해 그녀가 대학교 때 본 <피아노>의 영화감독임을 알게 되었다. 피아노를 좋아해서 호기심에 제목만으로 보게되었고 여성 내면의 감정표현이 섬세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불완전한 여성 주인공들을 통해 많은 억압과 관습을 이기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의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편의 영화가 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를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예전에 봤던 <피아노> 뿐만 아니라 그녀의 다른 작품 <내 책상 위의 천사>도 찾아봐야겠다.
당시 여성들이 마주했던 일상의 장애물을 넘어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지를 만들어갔던 두 예술가를 만날 수 있어서 같은 여성으로서 자랑스럽고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한적인 환경에서도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간 그녀들이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