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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조금씩 해당되는 이야기

MBTI 신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by 꽁스땅스

책 <성격을 팝니다>를 완독 한 건 지난 화요일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MBTI의 편향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을 파헤친 저자의 용기라면 독자들에게 앞으로 'MBTI를 맹신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라도 제시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답을 찾지 못했다. 저자가 연구한 사실들을 나열하고 MBTI의 미래는 특정 사람들(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신실한 신자들)에게 '온전한 성격유형'이 될 가능성 그 이상을 약속한다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났다. '뭐지? 결국 사실은 이러하니 독자가 알아서 MBTI를 신뢰할 건지 판단하라는 거야?' 다시 책을 뒤적이며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빈곤한 예술가, 캐서린과 이사벨 모녀

두 여성은 20세기 격동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성격유형 지표 개발이라는 목표를 붙들고 창의적이면서도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이 아내이자 어머니였으면 빈곤한 예술가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남성들, 특히 이 두 여성과 동시대를 살았던 남성들에게 자기 발견에 도달하는 길은 잘 닦인 포장도로였다. 남성은 고등교육을 받고 직장을 구하는데 장벽이 없었고 집안 일과 육아로부터 자유로웠으며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회는 남성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압박감에 자신의 필요는 뒷전에 놓기 일쑤였던 여성들에게 자기 성찰에 이르는 길은 남의눈을 피해 뭔가 절충하면서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p20~21)



두 여성의 일대기를 읽어갈수록 어려움이나 실패에 직면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헌신하는 모습에 서서히 그녀들의 성공을 바라게 되었다. 비록 당시 성격 이론가 및 의사와 충돌하고 심각한 형태의 편견과 차별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 거세었지만 말이다. MBTI 개발자이기 전에 아내이자 어머니였으며 일상의 가사노동을 창의적인 자기실현의 기회로 삼기를 바라는 그녀들에게서 회사를 그만둔 후 나답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앞으로 나의 커리어를 모색하기에 두 여성의 열망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품은 굳건한 소망, 그로 인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아마추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지질 줄 모르는 열정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존 듀이는 인간성의 내부에 존재하는 가장 강렬한 갈망은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라고 말했다. 당시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계발하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가족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자신은 뒷전인 게 일반적이었다. 캐서린은 자녀들은 성격 파악을 통해 사회에 적응해 중요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유형이 따로 있지 않고 16가지 성격 유형 지표 각 유형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니도록 설계한 것은 어쩌면 긍정적인 답을 통해 자신의 맨발의 자아를 찾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더 나아가 자신뿐만 아니라 자아를 이해하고자 하는 대중들이 간단한 설문지를 통해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가길 바란 진심이 느껴졌다.



여성들의 창의성을 연구한 라벤나 헬슨

현대 산업사회가 성격 심리학에 끼친 영향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맥키논과 그의 팀원들은 19세기의 자아 개념을 부활시키고자 했다. 바로 그 버클리 성격평가 연구소에서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뒤에서 활약하던 여성. 식탁에 앉아 남성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실험을 지켜보지만 남자 연구원이나 심리학자들처럼 편하게 실험을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던 여자. 라벤나 헬슨은 연구소의 수장 맥키논의 제안으로 여성들의 창의성을 연구했다.


라벤나는 최초 설립된 여자 대학 밀스 칼리지의 1958년도 입학생 30명을 성격평가 연구소로 초대해 하루 동안 그들의 창의성을 평가했다. 여학생들이 꿈꾸는 미래는 하나같이 남편과 자식을 돌보는 헌신적인 삶이었으며 자기를 향상하는 삶을 꿈꾸는 여학생은 거의 없었다. 때를 기다린 그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실험대상이었던 여성들이 3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을 추적해 찾아가서 신입생 때 받았던 똑같은 검사를 했다. 분석 결과 결혼해서 자녀를 둔 여성들은 창의성 검사에서 점수가 낮게 나타난 반면에 동정심과 두려움, 의존성, 취약성 지수를 결합한 여성성 검사에서는 점수가 높게 나왔다. 15년이 흐르고 여학생들이 모두 45세가 되었을 때 찾아가 다시 한번 검사를 진행했다. 이들 가운데 다수(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에 관계없이)가 자신이 선택한 인생 방향에 대해 의문을 떨쳐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성격분석 대상 중 라벤나가 좋아했던 셰일라 밸런타인(그녀가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됨)과 그녀의 동료들이 53번째 생일을 맞이항 무렵에 라벤나는 그들을 찾아가 면담했다. 반갑게도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자녀들이 장성한 후로는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감, 적극성, 독립성을 측정하는 성격 검사에서 전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창의성과 인지능력검사에서는 여태껏 받은 점수 중에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그녀들은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고 진술했다. (p351~352)



라벤나를 포함한 이 여성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고려할 때 오랫동안 나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외국계 회사를 선호했다. 운 좋게 취업에 성공했고 비교적 융통성 있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고 결혼, 출산 후에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오랫동안 워킹맘으로 도우미 아주머니, 가정적인 남편의 도움을 받아 두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나의 내면에는 일하는 여성이고 싶었고 집안일과 육아 또한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일을 놓음으로써 나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자라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 나의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여 년 동안의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이 없어지고 카페 봉사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가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가사에만 전념하고 훌쩍 크는 두 딸과 남편만을 바라보는 것에 전념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글쓰기를 했다. 독서모임을 참여하고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회사 다닐 때에는 회사일에 묶여 엄두가 안 났던 독서나 글쓰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렇게 만난 동료들과의 인연으로 매일 읽고 쓰는 환경 설정을 설정하고 해오던 운동도 꾸준히 하며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독서모임이나 한 달, 글쓰기 모임에는 워킹맘, 주부이지만 자신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생활하는 분들이 많다. 스스로 창의적인 자신만의 삶을 가꾸는 그분들과 함께해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다.



MBTI 신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MBTI 나 기타 성격유형 검사를 맹신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인사부 주관하에 나의 행동과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하는 검사(Emergenetics)나 예전에 읽은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이란 책에서 제공된 34개의 특성 중 상위 5가지 강점을 발견하는 검사, 지인들이 공유해주는 재미 삼아 알아보는 나의 유형들. 대부분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향들과 비슷했고 간혹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순간 '나에게도 이런 면이!' 놀라기도 하지만 금세 잊어버린다. 이런 성격유형 검사가 전문가든 캐서린과 이사벨 같은 비전문가들은 대중들을 위해 자신을 파악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어느 정도는 표준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완벽한 검사라는 게 있을까?



책에서 저자가 파헤친 MBTI의 허점, 편향성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평생을 치열하게 헌신한 캐서린과 이사벨의 이야기를 읽은 나로서는 그 두 여성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MBTI의 타당성, 신뢰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혹이 계속 나오지만 비전문가임에도 취미생활을 훨씬 뛰어넘어 대중들의 마음을 읽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한다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는 도구이지 않을까. 다만 우리 각자가 MBTI는 답답했던 자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조금씩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네 심리학자들은 항상 사람들에게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으려고 해요. 성격유형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성격유형은 사람들이 그들의 특별한 재능을 탁월한 수준으로 연마하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성격을 팝니다. p405>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6628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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