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오티움
띠링! 카카오톡에 메시지가 왔다. 곁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예전 회사 동료들이다.
" 잘 지내시죠?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되실까요?"
" 아 네, 괜찮아요. 우리 얼굴 보는 거예요?"
" 치악산 가려고 하는데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실래요?"
" 우와, 좋아요. 시간 내야죠,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요"
" 아침 일찍 떠나서 당일 코스라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은 8시 조금 넘을 듯요"
" 네네, 비워둘게요. 약속 장소랑 시간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마지막에 근무했던 회사 동료 두 분이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면서 서로 속내를 이야기할 만큼 친해진 사이다. 회사를 떠날 때 마음 맞는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많이 아쉬웠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퇴사한 지 2년이 되어가는데도 우리의 만남은 이어지고 있다.
금요일의 일탈을 위해 혼자 그날 엄마의 공백을 메울 방도를 찾느라 머리를 굴렸다. 둘째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일찍 하교를 하니 점심거리는 챙겨놓으면 된다. 금요일이라 둘째 학원을 동행하는 문제가 있다. 혼자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인다. 그날 수업이 없는 첫째에게 SOS를 청해 보기로 한다. 두 아이와 학원 동행 문제가 해결되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녁은 셋이서 외식을 하도록 하면 된다. 완벽한 플랜이다.
둘째가 시험을 마치고 귀가했다. 점심을 챙겨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첫째는 흔쾌히 둘째를 학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끝나고 픽업은 남편 몫이다. 그런데 둘째는 금요일 시험을 마치고 쉬고 싶다며 학원 선생님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무튼 두 아이의 협조는 완벽하다. 이제 남편에게만 말하면 된다. 퇴근한 남편에게 그날의 일정을 말하고 저녁은 외식하라고 말했다. 나의 일탈 플랜이 성공했다.
드디어 금요일. 동료들과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나의 루틴은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찍 출근하는 남편 아침을 챙겨주고 책을 읽고 글쓰기를 했다. 한 달 서평은 리프레시 기간이지만 매일 읽는 습관이 꾸준히 이어가고 싶어 아침에 조금이라도 읽는 중이었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중이라 미리 마무리를 해야 했다. 두 아이 아침을 챙겨주기도 해야 했다.
책을 좋아하는 남편은 예전에 회사 생활을 할 때 나에게도 읽기를 권했다. 그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대답은 했지만 한두 달에 겨우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했다. 회사일에 너무 치이고 아이들 챙기고 주말에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느긋하게 책을 읽기보다 그냥 밖에 나가서 산책하거나 쉬는 게 좋았다. 퇴사 후 나의 삶은 달라졌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글쓰기까지 이어지면서 일을 했을 때와는 다른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평만을 썼다면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해서 주어지는 주제에 대해 쓰기도 했다. 한 달에서 서평뿐만 아니라 자기 발견, 지금은 커리어 발견까지 나를 탐구하는 글쓰기까지 하게 되었다. 남편은 틈만 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 뭔가를 하는 나를 보면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전혀 피곤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고 오히려 활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면 남편은 회사 다닐 때보다는 얼굴이 밝아서 좋다며 가족과 건강도 우선순위에서 놓치지 말라고 한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을 사랑하는 나 또한 바뀌게 된다. 오티움을 통한 기쁨은 삶의 동심원을 그리듯 다른 영역으로 퍼져나간다. 이전보다 삶의 질서와 균형이 잡히고 무엇보다. 생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생기는 좀처럼 감추어지지 않고 드러난다. <오티움 p190>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6395568
책 <오티움>에서 라틴어 '오티움'은 여가시간을 말하고 '네고 티움'은 여가 외 시간이라고 했다. 저자는 라틴어에는 일을 뜻하는 고유의 단어가 없다고 했다. 네고 티움이 일의 의미를 대신한다. 즉 일은 여가가 아닌 상태를 뜻했다는 거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정반대의 세상을 살고 있다. 지금은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이라는 의미의 여가가 오티움을 대신한다. 다만 과거 여가 중심의 사회란 일부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저자는 오티움이라는 옛 단어를 끌어온 이유를 여가의 의미와 기능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단지 휴식으로써의 여가가 중요했다. 몸으로 힘든 일을 하고 난 뒤에 편히 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는 거다. 현대인의 여가에서 중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오티움은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활동을 말한다.
<오티움 p55>
치악산행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침 독서와 글쓰기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갔다. 6월에 보고 또 오래간만에 회동으로 반가움에 가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동료분의 차를 타고 우리는 치악산으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동료는 최근에 자연이 좋아져서 산행을 시도해보고 있다고 했다. 하긴 지난번에도 그날 모인 셋이서 충주악어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치악산도 가보고 싶단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났다. 도심에서 벗어나 혼자 소백산도 다녀오고 조만간 한라산을 갈 예정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동료는 온 가족이 주말이면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코로나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초등학생 아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시작했는데 이제는 남편까지 온 가족이 주말이면 캠핑의자를 싣고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을 한단다. 두 동료는 퇴사 후 책을 읽고 글쓰기에 푹 빠진 나에게 오늘 모임을 말할 때도 글 쓰느라 함께 못할까 은근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그날 치악산 산행은 가을 단풍의 최절정이었다. 정상까지 가는 여정은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확실한 일탈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수천 번도 더 잘린 나뭇가지에서
나는 끈질기게 새 잎을 내민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꿋꿋이 나는
이 미친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가지가 잘린 떡갈나무> 헤르만 헤세
책에서 저자는 헤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세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손수 정원을 만들고 가꾸었다. 생명이 움트는 신비에서부터 꽃이 피아나고 열매를 맺는 환희와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엄숙함까지 늘 자연과 함께하는 가운데 그의 작품이 탄생했다. 그리고 조국 독일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느라 매국노로 몰려 고독한 시간을 보낼 때도 가드닝은 그를 위로해 주고 평화를 지켜나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가드닝이야말로 헤세의 오티움이라는 거다.
나에게 오티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게 하는 것, 오티움 활동으로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 일상의 활기가 생겨나는 것. 외부로 향했던 시선이 온전히 나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매일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나의 동료들에게는 산행이 그러하고 자전거 여행이 그러하듯 말이다.
책을 읽고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의 정원도 헤세의 정원처럼 조금씩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저자는 오티움을 난지행, 즉 난이도가 있지만 지속적인 행복이라고 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온전히 길러내는 것이 쉬은 일이 아니듯 부지런히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얻는 나다워짐을 느끼는 것 같다. 당신의 오티움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진심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