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한 사람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냉철함

by 꽁스땅스

수영을 배우고 처음으로 다이빙을 배울 때 좋아하던 물속으로 입수하는 멋진 모습을 기대했지만 갑작스레 물에 대한 공포감이 생겼다. 코치가 가르쳐준 대로 자세를 잡고 폴짝 뛰어내리면 될 것을 아무 생각이 안 나고 그냥 두려움만 앞섰다. 물안경이 벗겨지고 배치기만 하기를 수십 번. 다이빙하는 날이면 맨 뒤에서 소심하게 뛰어내렸다. 매일 수영 수업을 마치고 레인 끝 쪽으로 가서 다이빙 연습을 했다. 누가 보든 말든. 그러던 어느 날, 점프하고 물속으로 다이빙을 했는데 그 느낌이 이거다 싶었다.


어린 소녀가 다이빙대로 걸어가서 과연 뛰어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면서 서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고 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마침내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 순간에 뛰어내렸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유럽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성인으로 자란 이 소녀는 유럽의 다른 정상들에게 "공포는 나쁜 보좌관입니다"라고 말했다.


수영 수업에서 다이빙대에 선 어린 소녀는 바로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다. 매체에서 그녀를 볼 때면 소박하고 수수해 보인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대담하고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그녀는 차분하고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책 <에고라는 적>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그녀가 서구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가 된 것, 그녀의 동일한 원칙을 가지고서 세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메르켈을 이솝우화에 나오는 거북이와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느리지만 꾸준한 사람이라는 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의 그 역사적인 밤에 그녀는 서른다섯 날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든 뒤에 다음날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존경받긴 하지만 그다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물리학자가 되었고 그 뒤에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오십 대에 이르러 총리가 되었다. 거기까지 이르는 여정은 부지런하고도 끈기 있는 과정이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형 사냥개 한 마리를 회의장 안으로 난입하게 만들어서 메르켈을 위협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문에 근거해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조금도 겁을 내지 않았고 나중에는 이것을 소재로 농담하기도 했단다. 결국 망신을 당하면서 어리석은 인물로 비친 쪽은 푸틴이었다. 메르켈이 정치적으로 성장하던 기간, 특히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온갖 스트레스 요인들과 자극에 개의치 않고 마음의 평정과 명석함을 놓치지 않고 유지해왔다고 한다.


메르켈같이 정상의 자리에 있다면 그 자리에 오른 순간부터 대담한 행동을 하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불같이 화를 내고 어떤 것은 무조건 금지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모든 것에 대해 기꺼이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지만 한 가지 원칙만은 예외였고 이것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냉철함과 자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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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않는 것, 주변에서 온갖 수많은 힘들이 소용돌이치지만 우리는 여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 이 냉철함은 균형을 잡아주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메르켈은 자기 자신을 중요시하지 않고 상황을 파악한다는 거다. 정치인들은 흔히 허황되고 자기 이미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녀는 이 점에 관한 한 지나칠 정도로 객관적이라는 거다. 결과가 중요할 뿐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많은 지도자들이 자기의 이미지와 권력과 지위로 들떠 있을 때조차도 냉정함을 유지하고, 남에게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나 세간의 관심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격렬한 감정을 토로하는 연설도 하지 않는다. 자기를 부풀리거나 남을 지배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말도 많지 않다. 그녀의 냉철함과 자제력 덕분에 200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독일 총리로 재임하고 있다.



메르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냉철함은 평온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가 자기를 인정하든 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알며 무엇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초점을 맞출 줄 그녀는 알고 있는 듯하다. 어떤 것이든 갑작스레 주어지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는 과정 속에서 작은 성취를 이루고,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어 또 내일을 시작하는 힘이 생기더라. 번듯하게 성공했으면서도 수수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메르켈의 뚝심, 냉철함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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