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 캐서린 그레이엄
오늘부터 하랑 봉사가 재개되었다. 새벽에 마저 책을 한 시간 읽고 글쓰기까지 하려고 했지만 아이들 식사를 챙기느라 겨우 읽던 책만 완독을 했다 오랜만에 전철을 타고 멤버들의 글을 읽으며 숙대하랑으로 갔다. 카페에서의 하루는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앉을새 없이 분주했다. 더치를 내리고 포장을 하고 오랜만에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 주문이 들어와 얼음을 준비하고 프렌치프레스에 우유 거품을 내면서 시원한 음료의 계절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랑 봉사한 날은 외식 찬스를 쓰는 날. 쌀국수가 당긴다는 둘째의 의견에 따라 한 그릇씩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피로감이 몰려온다. 동시에 새벽에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한 사람을 떠올리니 힘이 생기는 듯했다. 오늘은 그녀의 이야기를 써야지 생각하며 손만 씻고 노트북을 켰다.
캐서린 그레이엄의 인생 초반은 모든 것이 좋았다. 그녀의 아버지 유진 메이어는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번 재무 분야의 천재였고 어머니는 아름다운 사교계의 명사였다. 어린 시절 캐서린은 최고의 것들만 누렸다. 최고의 학교, 좋은 교사로부터 배웠으며 큰 집에서 살았고 많은 하녀와 하인이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1933년 그녀의 아버지는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당시 재정난으로 허덕이긴 했지만 중요한 신문사였는데 그는 결국 이 신문사를 적자의 수령에서 건져냈다. 신문을 비롯해 언론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워싱턴 포스트>를 물려받았고 남편 필립 그레이엄에게 신문사 경영권을 넘겼다.
그녀는 가문의 재산을 낭비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부잣집의 자녀들처럼 쉬운 길을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남편과 아버지라는 연에 달린 꼬리가 되어 사는데 만족했었다. 그러던 그녀의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남편 필립이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한 것이 시련의 출발점이었다. 심할 정도로 술을 많아 마셨고 경영과 관련해서는 무모한 의사결정을 내렸으며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필립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음이 밝혀졌고 건강하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는 자살했다.
1963년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신문사 경영에 대해서 아무런 경험이 없던 마흔여섯 살의 캐서린 그레이엄은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형 신문사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그녀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소심했고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녀는 여전히 부유했고 백인이었으며 여전히 특권을 누렸다. 다만 이 상황은 그녀가 계획했던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신문사를 떠맡아서 운영하기로 한 일은 그 뒤 20여 년 동안 이어지는 온갖 시련들 가운데 맨 첫 번째 일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워싱턴포스트>의 경영권을 가진 뒤에 신문사의 보수적인 이사회가 회사의 발전에 사사건건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만의 나침반을 개발해야 했다. 결국 그녀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편집장을 내세우는 조치로 모든 반대를 평정했고 신문 제작과 관련해서 더 이상의 압박은 없었다.
그런데 편집장과 기자들이 비밀리에 유출된 수상한 정부 문서를 입수한 다음 그레이엄에게 그 내용을 보도하고 관련 사항을 추가로 취재해도 좋을지 물었다. 그녀는 이 문제를 회사의 고문 변호사들과 상의했고 이사회에 의논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취재에 대해 반대했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그 문서의 내용을 신문에 싣고 추가 취재를 통해서 관련된 사실을 샅샅이 밝히기로 했다. 그녀가 내린 결정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문서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잘못하다간 회사를 신규 상장하는 일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고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이 문서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국방부 기밀문서였고 통킹만 사건이 미국이 조작한 것임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1년 뒤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임대한 사무실에서 발생한 절도 사건을 파헤치지 시작했는데 이 일로 신문사는 자칫 백악관 와 미국 정치계의 거물들과 영원히 등을 지게 될 수도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 소유의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필요로 하던 정부 승인을 못 받게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닉슨의 최측근 법무부 장관이던 존 미첼은 그레이엄이 너무 멀리 갔다면서 그녀를 협박하기도 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백악관이 <워싱턴 포스트>의 문을 닫게 만들 방안을 논의하는 중이라며 위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의 주가는 잘 나가는 축에 들지 못했고 주식시장에서도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1974년에 어떤 투자자가 회사의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사회는 깜짝 놀랐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작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엄은 서둘러 투자자를 만났다. 다음 해 신문사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했고 이 파업은 오랫동안 계속 이어졌다. 조합원들은 회사의 기계를 파괴하고 무고한 직원을 구타하며 불까지 질렀다. 한 신문사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다른 신문사들이 인력과 기계를 지원해서 돕는 것이 그 당시의 관례였지만 그레이엄의 경쟁자들은 이런 관례까지 깼고 그 바람에 <워싱턴 포스트>는 하루에 광고수입만으로도 30만 달러씩 손해를 보았다.
그런데 한 무리의 대주주들이 자기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레이엄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투자자의 조언에 따라 막대한 규모의 회사 자금을 풀어 자사 주식을 사들였다.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들이 그레이엄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끈기를 가지고 참아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 예측한 것보다 훌륭하게 돌파해냈다.
캐서린 그레이엄이 공개한 기밀문건은 국방부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 일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이 워터게이트 보도는 닉슨 대통령을 격앙시켰지만 결국 미국의 역사를 바꾸고 행정부를 완전히 해체해버렸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그 투자자는 젊은 워런 버핏이었다. 그는 그녀의 멘토가 되었고 회사의 막강한 후원자이자 조언자가 되었다. 그녀는 노동조합과 협상에 나섰고 마침내 파업도 끝났다. 그녀가 자기 회사의 주식을 되산 덕분에 회사의 자산 가치는 수조 달러로 뛰어올랐다. 그녀의 이런 행보는 기업계의 통상적인 관념뿐만 아니라 시장의 판단과도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견뎌내었던 그 긴 고투의 과정, 반복되었던 실패와 위기를 그리고 외부에서 가해지던 공격들이 모두 어느 한계점을 향하고 있었다. 1971년 <워싱턴포스트>가 주식 사장을 할 때 1백 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그녀가 물러나던 1993년에 그 1백 달러를 8천9백 달러로 불렸다. 그 덕분에 캐서린 그레이엄은 자기 세대의 가장 성공한 여성 CEO 이자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을 운영하는 최초의 여성 CEO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역대 최고의 CEO 반열에 올라섰다.
어떤 순간이든 실패의 가능성이나 걸림돌이 등장한다. 책 <에고라는 적>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에고는 어떤 것이 공정하다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이 그럴만한 것인지 따지고 그에 따라 절망하거나 분노한다는 거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이 우리가 잘못해서 빚어진 결과인지 혹은 우리에게 내재된 어떤 문제의 결과인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눈앞에 닥친 그 문제는 현실이고 그 문제를 자금 당장 붙잡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각자 겪는 실패와 역경은 상대적으로 다르고 또 모든 사람에게 특별하단다. 우리는 이런 고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시련 때문에 몰락하고 또 누군가는 이것을 딛고 일어선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누구든 간에 각자 맞닥뜨린 시련을 견디고 극복해야 한다는 거다.
시련에 닥쳤을 때 나는 어떤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불공평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부정적인 평가나 조언을 듣고 굳이 힘들고 번거로운 것들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문제는 내가 아니야! 하며 핑계대기에 급급하다. 그레이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련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불평하지 않고 눈앞에 놓인 상황을 받아들이곤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 자리에서 강해져야 했고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실패를 회피하지 않고 자기 원칙대로 나아갔다.
저자가 주장한 대로 중요한 점은 꾸준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부정적인 생각, 충동들을 세련되게 다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갔다. 마룻바닥이 반짝거릴 만큼 빛이 나도록 자주 들여다보자. 그것만이 인생의 여정에서 매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