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발명하는 청소년기
며칠 전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첫째가 학교 과제라며 가족 중 한 사람이 보는 본인에 대한 것을 보고서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자기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이번에는 동생이 보는 언니에 대해 제출하고 싶다고 했다. 둘째는 갑자기 이건 뭐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알았다며 내일 아침까지 적어서 주겠다고 했다. 4살 터울인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싸운 적이 없다. 작년 첫째가 재수할 때 둘째는 본인 시험이 끝날 때 친구들과 시내에 나갔다가 꼭 언니의 간식을 챙겨 와서 책상에 올려주곤 하는 말없이 서로를 챙기는 자매 사이라고나 할까? 남편과 나는 과연 둘째가 바라보는 언니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는 집에서 말이 없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굉장히 활달해서 퇴근 후 아이를 대할 때면 조잘대서 늘 미소 짓게 했다. 사춘기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아이로 변해 마음이 쓰였다. 하교 후에 아이에게 어떻게 해서든 대화거리를 찾아내 얘기를 나누며 표정을 살펴보지만 도무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학교에 학부모 상담 때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학교에서의 모습은 적극적이며 활기차게 잘해나간다는 말씀에 안심하기도 했다. 요즘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만나기가 힘들어져 가끔 스카이프를 통해서 얼굴 보며 통화를 할 때가 있다. 방문을 닫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평소와는 달리 생기 넘치게 웃기도 하며 한참 수다 떠는 걸 보면 친구가 참 좋을 때 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0대 teenager 란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1950년대의 일이었지만 청소년기 행동의 특별함에 대해서는 수천 년 동안 회자되었다고 한다. 책 <운명의 과학>의 저자 한나 크리츨로우는 청소년기는 새로움과 감각을 추구하는 행동, 더 극단적인 위험 감수, 자기 몰두, 또래 압력에 대한 민감성 등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청소년의 신경생물학은 전형적인 10대의 행동을 결정하는 절대적 열쇠이며 아기의 초기 시절에 일어나는 일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다는 거다. 발달 과정과 호르몬의 영향력이 서로 공모해서 뇌와 육체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충동성, 또래 압력에 대한 민감성, 극심한 자의식 등이 생겨난다는 거다.
청소년기에 큰 변화를 거치는 뇌 영역 중 하나는 이마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앞이마 겉질이다. 이 영역은 의사결정, 미래 계획, 부적절한 행동의 억제, 불필요한 위험 감수 행동의 예방, 타인을 이해하기 등 소위 사회인지 social cognition와 자기 인식 seld-awareness 등을 비롯한 수많은 고등 인지 기능에 관여한단다. 그래서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뇌 영역이고 그와 관련된 행동의 목록을 보면 청소년기 행동에서 이 영역이 맡는 역할이 대단히 중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청소년기가 시작될 즈음 뇌는 이미 자신의 네트워크 안에 잘 확립된 신경 고속도로가 가동 중이지만 추가적으로 계속해서 연결을 만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잘 사용하지 않는 신경로를 더 많이 가지치기 시작한다. 가지치기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데 지각 조정 perceptual tuning의 밑바탕이다. 무언가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는 경험은 뇌로 하여금 정보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측면들만 걸러내어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리도록 길들임으로써 우리의 지각을 조정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지시한다. 청소년기에 이것이 일어나는 속도가 더 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10대의 앞이마 겉질은 그런 시냅스 가지치기가 대량으로 일어나는 장소다. 이 뇌 영역은 자기가 배워 왔던 내용을 가다듬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해 나가는 일을 동시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대단히 역동적인 시기에는 앞이마 겉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과 보상회로를 비롯한 다른 심부 영역의 정보처리 방식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단다. 그 결과로 청소년은 즉각적은 만족과 보상에 대단히 예민해지지만 충동조절 능력과 의사결정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거다. 이로 인해 평균적으로 10대들은 안전책을 강구하지 않고 즉각적인 황홀감을 좇아 행동할 가능성이 크단다.
청소년의 뇌 발달에서 중요한 측면이 한 가지 더 있다. 10대 시절에는 뇌의 회백질 grey matter이 줄어든다. 앞이마 겉질에 서는 무려 17퍼센트나 줄어든다는 거다. 회백질은 중추신경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회백질의 일무는 백질 white matter의 확장으로 대체된다. 백질은 신경세포의 긴 회색 실린더 모양 구조물인 축삭돌기 axon 둘레를 감싸서 코팅하고 있는 지방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 코팅은 축삭돌기의 절연을 도와주어 전기신호가 뉴런에서 뉴런으로 더 빠르고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게 해 준다. 10대의 뇌 발달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과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고속의 신경로를 갖춘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 준다. 본질적으로 보면 이 중요한 시기가 끝날 즈음(20 중반까지)에는 외부 세계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단다.
책에서 청소년의 뇌는 범주 자체가 다르며 이 시기에는 신경로가 잘 변하고 열정과 창의력이 고조된다고 했다. 더욱 독립적인 정체성을 수립하고 가족이라는 맥락에서 벗어나서 기능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라서 10대가 된다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사실 이것은 필수적인 학습 시기라는 것이다. 또래에 초점을 맞추는 10대에서는 사회적 뇌를 발달시킬 필요성이 전면에 등장하고 10대들이 위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새로운 경험과 학습, 개인적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재미있기도 하다고 말한다. 청소년은 자의식이 가장 강하고 또래 압력에도 가장 민감한 시기일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 모두 고유의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과정의 일부분이고 이것이 10대 시절의 핵심과제란다.
한 연구진은 10대 청소년과 성인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논의해보라고 요청했다. 양쪽 집단 모두 이과제를 하는 동안 소위 사회적 뇌 회로가 활성화되며 불이 들어왔다. 그런데 10대의 뇌는 안쪽 앞이마 겉질이 특히나 활성화되는 반면 성인의 뇌는 기억과 더 관련이 많은 다른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청소년과 성인이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서로 다른 인지 전략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미래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또래와 비교해 보아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 성인의 경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자동화되기 때문에 의식적 사고에 덜 의존한다. 성인은 저장된 기억과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미래를 계획하거나 사회적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할 때 손쉽게 그런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인들에게 어떻게 행동할지 지침서 역할을 해주는 기억들을 만들어 내려면 당연히 그런 경험들을 직접 해보아야 한다. 직계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들과 접촉하면 신선한 전망과 아이디어들이 10대의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10대가 충동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경험의 레퍼토리를 더 크게 구축하기 위함이고 이런 경험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앞이마 겉질 다듬는 데 도움을 주고 이를 통해 미래의 의사결정 과정과 사고 과정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위안이 되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 개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청소년기에 추가적으로 지원해 주어도 너무 늦지 않다는 말이었다. 아울러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도움되는 일에 대한 조언이었다.
"10대 생물학을 따라 일어나는 뇌와 몸의 거친 변화들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그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고 자신의 나쁜 습관을 고쳐 나가면서 아이들의 운명이 펼쳐지는 모습을 차분하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다. 그 외로도 아이들이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또래들에 둘러싸여 새롭고도 안전한 경험과 활동에 많이 노출될 수 있게 해 준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무엇인지 실험하고 발견할 수 있어 더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10대의 부모가 되면 아이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가족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 운명의 과학 p69
둘째는 다음날 아침 언니에게 A4용지 한 장을 내밀었다. 엄마도 보고 싶다고 하니 끄덕여주어 언니에 대한 둘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남편과 내가 생각하는 것과 거의 흡사하게 아니 더 정확하게 언니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여전히 말이 없고 필요한 말만 곁에 와서 단어들로 늘어놓지만 아이의 뇌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잘 관찰해야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실험하고 발견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이 혼돈의 시기를 잘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