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고를 때 이용하는 기준은 무얼까?

우정의 메커니즘

by 꽁스땅스

중학교 3학년 말. 고등학교를 지원하고 학력고사를 치러야 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학력고사를 치르고 나는 수두에 걸려 집에서 지내야 했다. 아기 때 예방접종을 했을 텐데 어째서 사춘기가 되어 앓았는지 모르겠다. 고열에 온몸에 열꽃이 피어 겨우 죽만 먹고 잠을 잤다. 일주일쯤 지나고 나니 열꽃도 가라앉고 조금씩 식욕은 살아났지만 기력이 떨어져 마지막 3학년 기말고사는 학교 양호실에서 혼자 시험을 치렀다. 기말시험 후 졸업식까지 두 달 가까이 체력을 회복하느라 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때 나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건 친구들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소중한 다섯 명의 친구들! 어려운 환경에서 집안 살림도 챙기며 공부랑 책을 좋아하던 우리 반 반장, 글을 참 잘 쓰고 언니처럼 이해심 깊은 부반장, 언니들 틈에 자라서인지 센스만점에 수학을 잘하던 수학 부장, 나와 앞뒤로 앉아 많은 얘기를 나누고도 모자라 밤에 각자 서로에게 쓴 편지를 교환하던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던 친화력 최고인 경이. 새침하고 자기 생각이 강하지만 속이 깊어 늘 나를 응원해 주던 영이. 방과 후에 매일 전화해서 그날 있었던 일, 친구들 사이에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나눠주었고 재밌는 농담으로 나를 웃게 해 주었다. 그 친구들 덕에 긍정적인 기분이 들어 회복하고 졸업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책 <운명의 과학>의 저자 한나 크리츨로우는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느슨한 연대와 함께 그보다 더 가까운 친구를 형성하는 능력을 어떻게 진화시켰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대적으로 부끄러움이 많거나 내성적이라도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 기능 중 상당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쉽게 이루어진다는 거다. 이는 모든 인간관계가 기쁨, 보상, 동기와 관련이 있는 심부 뇌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 뇌의 연구를 해 온 옥스퍼드 대학교의 진화심리학 교수 던바 Robin Dunbar와 나눈 얘기를 통해 본인이 발견한 점들을 들려준다.


로빈은 인간이 애착과 관심에 화답하는 과정을 어떻게 보상으로 느끼며 더 나아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탐구하고 이것이 인간이 하나의 종으로 진화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탐구해 왔다. 로빈은 "우정은 단일 요인으로는 건강과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라고 했다. 그의 연구는 심장마비 이후의 회복 여부를 말해주는 최고의 예측 인자는 흡연 습관을 끊느냐, 감자튀김 등을 끊는 등의 식단 조절 여부가 아니라 자신을 뒷받침해 주는 인적 네트워크와 우정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했다. 포용, 걱정의 표현, 웃음 등 애정이 담긴 신체적 접촉은 엔도르핀 endorphin의 생산을 촉진해 준다는 것이다. 엔도르핀은 면역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회복 속도와 감염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주고 기분도 좋아지게 해 준다는 거다.


"우정은 뇌에 새겨져 있는 자기 보호 메커니즘입니다." 우정은 유사시에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완충하고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해지기 전에 동맹관계가 미리 확립되어 있어야 하고 여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죠. 친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인지적 비용이 따릅니다. 하지만 우정은 이렇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즉각적인 자기만족보다 우정과 공동체의 가치를 더 우선할 때가 있죠"


로빈은 인류가 눈 확 앞이마 겉질 orbital prefrontal context (눈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뇌 영역으로 충동을 억제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일에 관여한다.)을 발달시키던 것과 때를 같이해서 든든한 우정을 구축하고 가꿈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이러한 능력을 진화시켰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이 눈 확 앞이마 겉질이 인간에게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다는 점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으로 진화하는 데 핵심 토대라 되어 주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경이로운 처리능력 자체가 아니라 크고 복잡한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그 속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로빈은 그가 ' 사회적 뇌 가설 social-brain hypothesis'라고 부르는 것을 종과 종 수준에서 분석해 보고 포유류, 특히 영장류에서 이 뇌 영역의 상대적 크기라 그 정의 사회집단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이 뇌 영역의 크기는 인간에 와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인간이 평균적으로 150명 정도의 사람과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인지적 한계에 위해 결정되는 이 대략적인 공동체 규모를 넘어서면 사회의 역학을 통제하기 위해 더욱 형식적인 규칙들이 필요해진다. 로빈이 말하는 '던바의 수 Dunbar's number'는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보려고 의식적을 노력하는 사람의 수를 말한다.


이 수치는 분명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다른 행동과 마찬가지로 사회성도 사람마다 차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 확 앞이마 겉질 크기를 가지고 그 사람의 사회적 네트워크의 크기를 대단히 정확하고 민감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거다. 사회적 기질 social temperament에는 두 가지 뚜렷한 유형이 존재하는 데 이는 두 가지 별개의 뇌 프로필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눈 확 앞이마 겉 질의 부피가 더 큰데 이런 사람을 '외향성 extrovert 라 부른다. 이들은 그 부피에 비례해서 더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참여한다. 이런 사람들은 개개의 인간관계에 헌신하는 시간을 아껴 인간관계의 질은 조금 희생해서 사람을 얕게 만나는 대신, 거기서 아낀 역량을 더 큰 네트워크를 유지하는데 투자한다. 반면 '내향성 introvert'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유지하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 포함된 각각의 우정은 더욱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보면 이 스펙트럼에서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든 간에 뇌 화학 수준에서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우정과 동맹관계를 가꾸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사교 스타일이 종 전체를 이롭게 하는 사회구조를 뒷받침해 준단다. 사이가 더 가까운 내향성 사람에 의해 형성된 작은 집단은 사회적 응집성을 갖춘 안전한 집단을 만들어 내고 외향성 사람들은 이런 무리들 간에 다리를 이어 주어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는 반향실 효과 echo chamber effect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여 편협한 사고방식이 계속 증폭되는 효과)를 막아 이질적인 집단 사이에서 정보와 아이디어의 교환을 용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행동에서 이런 다양한 차이를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진화적으로 성공하는 데 핵심 용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사회 속에서 사람의 숫자와 우리가 형성하는 유대 스타일이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친구를 고를 때 이용하는 기준은 무엇일까?라고 저자는 반문했다.


로빈은 인간도 친구를 고를 때 상품의 특성을 광고하는 슈퍼마켓 바코드 같은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이런 특성은 주로 언어 사용을 통해 활성화된다. 사람들은 상호작용하면서 이런 언어를 통해 타인을 스캔할 수 있다. 많은 특성을 공유하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친구가 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나고 자란 장소와 방식, 교육 수준, 취미와 관심사, 세계관, 유머감각 등이 있다. 대화를 통해 이 모든 것에 대한 스캔이 이루어진다. 이것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은 이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인지 평가하게 된다.


세계관이 너무 다른 경우에는 우정이 싹을 틔우려다 자라지 못하고 십중팔구 사그라지게 된다. 만나는 사람마다 동맹을 맺을 만한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해 막대한 양의 시간과 인지 역령을 투여할 필요 없이 간략하게 확인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한다. 타인을 평가할 때 모든 사람이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것이 도움이 된단다.



저자는 인간은 애착과 보살핌을 구하고 나누어 주도록 선천적으로 타고났다고 했다. 보살피는 뇌는 무의식 수준에서 공통점을 기반으로 우정의 싹을 틔운다는 사실. 친구들의 애정 어린 관심으로 엔도르핀이 생겨 병에 대한 저항력까지 생긴다는 게 흥미로웠다. 다섯 친구들과의 첫 만남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같은 반이라 공유할 거리가 많기도 했고 대화를 하다 보니 호감이 생겨 자연스레 절친이 되었던 것 같다. 반장 부반장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내향성이 강한 편이라 서로를 잘 이해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느라 자주는 못 보지만 설 연휴나 추석 때면 자리를 마련한다. 사는 얘기도 나누고 과거를 소환해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다. 이번 추석에도 꼭 친구들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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