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오늘은 잠시 읽던 책을 멈추고 머리도 식힐 겸 책꽂이를 둘러봤다.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공감하는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마음에 와 닿은 <방구석 미술관>. 목차를 보니 낯익은 미술계 거장 14명를 소개하고 있다. 문득 몇 년 전 가족여행으로 파리에 갔을 때 오페라하우스 가르니에에서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천정 그림을 한참 쳐다보며 행복하게 했던 샤갈을 방구석이 아닌 거실 구석에서 반가이 만나고 싶어 책장을 넘겼다.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사랑을 반짝이는 색채로 담아낸 <생일>, <도시 위에서> 같은 작품을 보고 세련된 색채의 동화 같은 분위기에 일주일간의 피로가 씻기는 듯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도 그렇지만 몇몇 작품 자체 로만은 색채나 분위기로 보아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생각지 못한 아픔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름답고 보드라운 그림을 그린 샤갈에게서 예상치 못한 더 소중한 면을 알게 되었다
비프 테스크에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이름이나 화풍 때문에 나 역시 샤갈을 프랑스인으로 착각했다. 그는 1887년 러시아의 작은 마을 비프 테스크에서 태어났다. 샤갈은 유대인으로 본래 이름은 '모이세 하츠켈레프'란다. 당시 유대인은 거주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다. 지정된 지역, 강제 격리 거주 지역 게토 Getto에서 살아야 했다. 사실상 유대인의 사회활동과 영향력 증대를 싹부터 잘라놓은 상태로, 교육, 취업, 직업 제한, 토지 소유 금지 등의 차별로 인해 소규모 행상, 상업, 수공업에 국한되었다. 러시아인이 유대인 소유의 술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진 후 러시아인들이 집단을 이뤄 게토에 쳐들어가 무자비한 학살 와 강간을 자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포그롬(Pogrom)-러시아어로 파괴, 학살을 의미-행위는 20세기 초까지 이어졌고 유대인들은 이런 세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단다. 어린 시절 내내 이유 없이 차별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샤갈. 그는 유대인의 관습적으로 해야 할 일을 거부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굳은살로 덮여 있었다. (중략) 나도 벽에 기대앉아 일생을 그렇게 살 운명이었을까? 혹은 물건이 담긴 통을 운반하며 살아야 했을까? 나는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나는 특별한 직업을 찾아야 했다. 그래, 그것이 내가 찾는 것이다.(중략) '예술가란 무엇인가?'하고 나는 내게 물었다. -방구석 미술관 p269
파리지엔이 되다.
화가가 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당시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 유대인이 체류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했음에도 무작정 그곳으로 갔다. 모든 것을 건 도전이라 용기가 생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미술 애호가인 유대인 변호사를 만나 체류허가증을 받을 수 있었고 왕실 협회 미술학교, 즈반체바 학교를 다닌다.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즈반체바 학교에서 19세기 중반부터 펼쳐진 마네, 모네, 고갱과 세잔, 마티스 등의 작품을 접하고는 5년 만에 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유학을 간다. 프랑스인들이 자신을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큰 걸음'이란 뜻을 가진 '마르크 샤갈'로 개명하고 파리지엔의 삶을 꾸린다.
파리에서 나는 미술학교를 다니지도 선생을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그 도시는 그 안의 모든 것, 하루의 모든 순간들이 그 자체로 선생이었다. -방구석 미술관 p272
샤갈에게 파리의 미술관과 전시 그 자체가 선생이었다. 실제로 보고 싶어 했던 모네, 반 고흐, 마티스의 그림을 보며 캔버스에 자연스럽게 다채롭고 밝은 색채와 순수한 원색을 입히기 시작한다. 피카소가 주도한 입체주의를 만나 상상과 꿈의 세계를 조각내어 그리는 표현방식을 터득한다. 결정적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영원한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빛의 화가 렘브란트였다. 어둠과 밝음의 대비로 빛을 만들어낸 렘브란트와 달리 다채로운 색채로 빛을 만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였다. 파리 도착한 지 1년 만에 자신의 뿌리, 비프테스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나와 마을>이라는 걸작을 탄생시킨다.
파리와 유대인의 감성으로 자기만의 독자성을 창조하다.
누나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1차 대전의 발발로 8년 동안 비프테스크에 머물게 된다. 이때 연인 벨라와의 사랑을 담은 걸작들이 탄생한다.
나는 그냥 창문을 열어두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그녀가 하늘의 푸른 공기와 사랑과 꽃과 함께 스며들어왔다. 온통 흰색으로 혹은 온통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그녀가 내 그림을 인도하며 캔버스 위를 날아다녔다.-방구석 미술관 p275
샤갈의 대표작 <생일>. 저자의 말대로 보는 이의 마음까지 두둥실 떠오르게 만드는 그림이다."밤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라는 그림의 설명이 내 맘에 쏙 들었다. 첫사랑의 설레는 감정 그대로를 색채로 표현한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평에 나도 한 표! 아내에 대한 진심이 색채로 녹아들어 갔다는 데도 한 표! 저자는 이 작품에도 파리에서 습득한 야수주의, 입체주의가 녹아있고 샤갈만의 뿌리인 유대인 감성도 엿보인다고 했다. 샤갈의 전매특허인 '둥둥 떠다니는' 인물은 샤갈의 신앙인 유대교의 하시디즘의 오랜 이야기-사람과 천사가 길 위를 둥둥 떠다니는 묘사가 등장-에서 가져온 거란다. 파리와 유대인의 감성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만들 샤갈. 고향에서도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86세, 샤갈 미술관 개관식에서 숙원을 이루다.
유대인 차별에 정면으로 싸우는 유대인 화가의 모습, 세계 최초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인 레닌의 과감한 개혁, 1차대 전후 국가 간 이념 갈등이 심해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예술, 조국에서 따돌림당한 샤갈은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2차 대전으로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피신한다. 고향 비프테스크가 독일군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처참한 비극을 울분을 토하듯 붓으로 기록하였다. 젊은 시절의 샤갈이 사랑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주로 그렸다면 나이가 들면서 더욱 잔인해지는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비극을 작품으로 그려 고발했다.
만일 화가가 유대인이고 인생을 그리려 한다면 어떻게 그가 유대인적인 요소들을 그의 작품에 노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뛰어난 화가라면 좀 더 많은 양의 유대적인 요소를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방구석 미술관 p284
2차 대전 발발하기 전부터 샤갈의 평생의 숙원사업처럼 시작한 일, <구약성경> 삽화 작업, <구약성경>은 유대인 샤갈의 삶을 이끌어준 정신적 지주이자 예술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마침내 69세의 노인 마르크 샤갈은 105점의 동판화가 담긴 <구약 성경>을 출판해냈다. 그리고 26년간 쌓아온 영감이 떠나지 않도록 가슴에 꼭 부여잡고 인생 최후의 걸작 작업에 착수하였다. 105점으로 제작했던 <구약성경> 이야기를 단 12점의 <성서 이야기> 시리즈로 집약하는 일생일대의 작업이었다. 10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79세에 비로소 완성했다.
날이 참 좋은 1973년 7월 7일 프랑스 니스, 그곳에 86세 백발의 노인 샤갈이 있었다. 개관을 앞둔 니스 샤갈 미술관, 그곳의 주인공은 열두 점의 <성서 이야기>였다. 개관식에서 샤갈은 말했다.
성서는 자연의 메아리이며, 내가 전달하고자 한 것도 바로 그 비밀입니다 (중략) 이제 나는 그것들을 이곳에 두어 여기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평화와 분위기, 삶의 안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나는 이 작품들이 단지 한 개인의 꿈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꿈을 대표한다고 믿습니다. 이곳에 오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은 내 색채와 선이 꿈꿔왔던 사랑과 인류애의 이상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여기서 상냥하고 평화롭게 그 꿈을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방구석 미술관 p288
오페라 하우스 가르니에 천장의 그림 < 꿈의 꽃다발> 혹은 < 꽃다발 속의 거울>을 떠올려본다. 1963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위임을 받았지만 프랑스계 미술가가 아닌 러시아계 유대인에게 국립기념물 장식을 맡긴다는 시끄러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천장화 개막식에서 그는 그 시대의 가장 훌륭한 시들을 숭고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꽃다발 속의 거울 그림처럼, 세상의 모든 작곡가의 꿈과 작품들이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고. 오페라와 발레 무용수들이 끝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존경을 표하고자 한다고. 14명의 작곡가와 그의 오페라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 그림을 다시 찾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차별과 핍박에 시달려야 했던 유대인의 삶을 어둡고 슬픈 그림으로 그려낼 수도 있었을 텐데 청아한 색채들로 빛나는 그림을 선사해 준 샤갈. 그가 개관식에서 했던 말처럼 그의 그림을 보면서 평화롭게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읽고 글을 쓰는 꿈을 계속할 힘이 생겼다. 잠시 숨 고르기에 딱인 책을 고른듯하다. 모처럼 거실 구석에서 나를 위한 샤갈 미술관 투어로 확실한 기분전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