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ing 이란 지금 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
책 <The Having>에서 저자는 현재를 희생하며 평생을 절약하며 사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행복을 놓치지 않는 부자로 살라는 당부를 듣는다. 문득 고향에 계신 친정 부모님이 떠오른다.
남편과 같은 고향 출신이라 명절 때면 시댁에서 차례를 지낸 뒤 친정에 간다. 자식들을 출가하고 두 분만 지내는 친정 부모님은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 막내 딸네의 방문을 반가이 맞아주신다. 아들은 외국에 나가 있고 큰딸은 서울에서 명절을 지내니 명절 때면 언제 올 거냐며 전화를 하신다. 오랜만에 방문한 우리를 위해 미리 장만한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상을 차리고 식사를 하며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 후에 엄마는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나는 설거지를 한다. 한 번은 설거지를 하다 닳고 닳은 수세미를 보고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 "엄마 수세미 좀 바꿔. 이게 뭐유. 내가 가서 사다 드릴까?" " 얘는 인제 길들어서 잘 닦이는 구만. 그냥 놔둬. 엄마가 나중에 바꿀게" 친정엄마는 절약이 몸에 밴 분이시다. 공무원인 친정아버지의 월급만으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라 내가 자라는 동안 집에 계신 적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엄마 하면 떠오르는 게 바깥일 하는 사람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오고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같은 과 친구들 대여섯 명이 갔는데 친구 엄마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과일이랑 간식을 챙겨주셔서 친구 방에서 한참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친구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집에 있을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바깥일을 하는 엄마가 짠해졌다.
주말이면 새벽같이 도시락을 싸고 두 분은 과수원으로 가셨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을 하고 과수원 일을 처음 해보셨다고 했다. 손도 빠르고 일을 보면 다해 치우는 엄마의 부지런함으로 과수원은 잡초 없이 늘 깔끔히 정돈되었다. 친할아버지는 일머리가 뛰어나고 성실한 엄마를 아끼셨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도 늘 바쁘게 움직이셨다. 친정 아빠가 퇴직을 하시고 팔순을 바라보던 작년까지도 두 분은 과수원 일을 하셨다. 아담한 몸집에 과수원 일을 하느라 엄마는 천식이 생기셨다. 느긋한 아빠는 과수원 일을 즐기시지만 엄마에게는 과수원 일이 말 그대로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지신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면 과수원 일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서 사무 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늘 나에게 엄마라는 사람도 자기 일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고 하셨다. 작년에야 아빠도 무릎에 이상이 생겨 과수원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셨다. 요즘 두 분은 성당에 다니시며 그 어느 때보다 느리게 여유를 즐기시고 계시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
저자 홍주연은 기자로 일할 때 인터뷰한 적이 있는 부자들의 구루를 만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그 답이 이 책의 제목 바로 Having - 지금 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구루의 길을 가게 된 이서윤이란 인물에 대해 궁금해졌다.
서윤은 모든 면에서 비범한 아이였다. 일곱 살에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인생에서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간 주인공의 삶에서 섬뜩함을 이 느껴졌단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른들의 사는 모습도 가족과 사회의 잣대에 얽매여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인생에서 주인으로 사는 것과 존재에서 오는 불안을 다스리는 것, 그녀가 책을 읽고 깊이 천착하게 된 주제였다.
그녀의 뛰어난 면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아픔을 치유해 주는 능력이었다. 자신을 완전히 지운 채 상대의 고통을 함께 느낀 뒤 그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던 엄마에게 위로하기 위해 신데렐라가 왕비와 맞서는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서윤은 사주와 관상에 능했던 할머니의 발견으로 일곱 살에 운명학에 입문했다. 할머니가 본 어린 손녀의 삶은 행운을 불러오는 운명이었다. 다른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운명이라니 몸이 약한 딸에게 과한 짐 같아 엄마는 반대했다. 하지만 서윤은 할머니에게 배우는 공부가 재미있었다. 수천 년 전에 쓰인 한자로 된 고전을 탐독하면서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하나식 깨우쳐 나갔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불행과 복이 있다' 이런 글귀들이 서윤의 가슴을 올리곤 했다. 명상을 시작한 것도 일곱 살 무렵이었다. 할머니와 절에 갔을 때 그것이 마음공부에 좋다는 소리를 듣고 100일 동안 실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밤새 고열에 시달렸던 날이 있었다. 아침에 되어 열이 내리며 심한 갈증이 찾아와 머리맡에 차가운 보리차를 단숨에 들이켠 찰나 서윤의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차가 지닌 맛과 향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보리차를 수없이 마셔봤지만 제대로 음미하는 건 그날이 처음 같았다. 곧이어 깨달음도 찾아왔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면 세상 모든 것이 바뀌게 된다.! 다음날, 아침 명상을 마친 서윤이 천천히 눈을 뜨고 고요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모든 것이 어제와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완벽하게 '지금, 여기 here and now'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그녀가 구루의 운명으로 살게 된 첫날이었다.
Having 이란 무엇이지요?라는 저자의 질문에 서윤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느끼고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에요. Having은 지금 여기에서 출발해야 해요. 미래형이 아닌 현재 진행인 셈이죠. Having 은 우리의 렌즈를 '없음'에서 '있음'으로 바꾸는 방법이에요. '있음'에 주의를 기울일 때 당신을 둘러싼 세계는 다르게 인식될 거예요. '없음'의 세상에서 '있음'의 세상으로. - 더 해빙 p55
돈에 관한 책이라고 하기에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문장들이 신선하다. 삶에 대한 세련된 고찰. 뭐 그런 느낌이다. 한 글자씩 눌러 읽으며 그 의미를 곱씹어 본다. 서윤은 Having 이란 돈이 있는 걸 느끼고 그 감정에 머무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읽고픈 책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을 갖고 있는 이 순간. 그게 지금 막 Having을 한 거란다. 세상의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고 그저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따라 세상을 인식한다고 했다. 하얀색 운동화를 원할 때 온 세상이 하얀 운동화 투성이다.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다른 게 인식된다는 거다. 매일 돈을 쓸 때마다 Having을 하고 그 느낌을 바라보고 그 감정을 조금씩 키워가라 조언한다.
친정엄마는 늘 현재에 감사하라고 하셨다. 오랜 기간 일할 수 있었던 것. 퇴사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었던 것. 코로나 사태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것 등등.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구루 서윤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오늘을 살고 매일 그날의 기쁨에 충실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돈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에 집중하고 그것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 그게 '있음'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Having 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