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ing 신호등
비가 내리는 차분한 아침. 거실 불을 켜면 환하니 좋겠지만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거실 책상에 새 스탠드를 켰다. 백열등 불빛이 은근 분위기가 있다. 며칠 전 사용하던 거실 스탠드가 고장이 나서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남편이 새로 주문해 준 것이다. 문득 어제 <더 해빙> 이란 책에서 읽은 "있음을 느끼려 노력하라"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그게 Having의 첫걸음이에요". 오랜만에 예전에 정지용 연주회에서 산 바흐의 골든 베르크 변주곡 CD를 틀었다. 몇 모금 커피를 음미하며 노트북을 열었다. 오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른 느낌이다.
퇴사 전 열심히 일한 대가로 월급이 통장에 들어와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교육비, 보험료, 카드값, 공과금으로 나가면 며칠 후 텅 빈 잔고를 확인하게 되니까. 그래도 가끔은 사회생활을 열심히한 나에게 뭐라도 보상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 때면 좋아하는 브랜드를 방문했다. 돈을 쓰고 나면 '비슷한 옷이 집에 있는데. 또 사는 건 낭비가 아닐까.' 카드를 긁고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자주 손이 가지 않고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을 볼 때면 찜찜한 마음이었다.
맞벌이를 하다 남편 혼자 외벌이로 바뀌고 나서 장 보거나 아이들이 필요한 걸 살 때를 제외하고 나를 위한 소비는 자제했다. 남편과 그동안 저축한 것과 남편의 얇아진 월급을 가지고 자금계획을 세우고 보니 자연스레 소비패턴이 바뀌었다. 유일하게 내가 하는 소비라고는 읽고 싶은 책을 주문하는 것이다. 작년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10권 넘는 책을 한 번에 주문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도서관에서 빌리기보다 소장하고픈 욕심이 더 컸다. 한 달에서 멤버들의 서평을 읽고 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결제할 때면 배송되어 읽을 생각에 즐겁다.
진짜 부자는 돈을 쓰면서 그것을 기쁨을 누릴 줄 알죠. 지금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Having은 단돈 1달러라도 지금 나에게 돈이 있다는 것에 집중하는 데서 시작해요. <더 해빙> p95
책 < 더 해빙>에서는 그동안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이성의 힘을 맹신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속품이 되지 않으면서 주체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는 비밀은 바로 '느낌'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느낌으로 부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 바로 Having이라는 것이다. 일부 양자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물질이란 견고한 것이 아니라 파동이나 입자로 존재하는 것이란다. 물질이란 해당 위치에 그것이 있을 확률일 뿐, 그 자리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결정하는 것도 관찰자인 우리 자신이라는 거다. 우리가 인식하는 대로 물질이 빚어지고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눈앞의 세상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구루, 서윤은 위로하듯 말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끌어줄 열쇠는 사실 우리 안에 있어요. 그 답은 감정이에요. 감정이란 우리가 태어날 때 우주에게 선물 받은 에너지죠. 우리의 미래는 밀가루 반죽 같아요. 다양한 가능성으로 존재하죠. 우리가 관찰하고 인식하고 느끼는 에너지가 반죽의 모양을 형성하는 거예요. 그리고 완성된 반죽이 굳으면 우리 앞의 현실이 되죠. 다시 말해 쿠키를 어떤 모양으로 빚고 구워낼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스스로 바꿔갈 수 있어요,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존재이니까요. <더 해빙> p158-159
책에서는 Having의 신호등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초록불에 길을 건너고 빨간불에 멈추는 신호등과 비슷한 원리란다. 소비할 때 Having 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방법인데 초록불을 느끼면 그대로 돈을 쓰고 빨간불을 발견하면 행동을 멈추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와 다르게 행동하면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데 이때는 빨간불이란다. 빨간불이란 긴장, 불편함, 불안과 걱정이다. 초록불은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니 물 흐르듯 편안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서윤은 Having 신호등은 내면의 목소리를 나에게 알려주는 거라고 했다. 마음속 작은 편안함, 작은 온기가 점점 더 분명한 느낌으로 커질 거라고. 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새롭게 좋아하게 된 책을 주문할 때면 행복하다. 배송된 책이 책꽂이에 자리 잡은것을 보면 가족들은 관심을 보인다. 읽고 나서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만한 것들은 권하기도 한다. 읽는 책이 어렵다고 느껴지거나 서평이 안 써지는 날에는 책꽂이를 들여다보고 고른 책으로 기분전환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당분간 이 느낌이 주는 기쁨이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