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유럽 철도시대의 도래

by 꽁스땅스

유럽여행의 장점은 (유레일패스 등을 이용 기차로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몇 년 전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갔을 때 베니스에서 로마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었다. 기차여행은 흔들림 없이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의 풍경을 즐길 수 있어 지나가는 도시나 마을을 느끼기에 좋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책 <유러피언>의 주된 스토리 라인 중의 하나인 철도에 대해 당시 철도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 유럽에 가져온 변화에 관해 책 내용을 바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주요 국제철도 개통

앤트워프와 쾰른을 오가는 최초의 국제 철도가 개통되고 국제 무역을 획기적으로 촉진하였고 국경을 마음대로 오감으로써 국가의 국경 개념을 약화시켰다. 철도 개통을 기념하는 축제에서 앤트워프 시장은 이렇게 선언하였다. " 우리의 관습, 습관, 욕구, 이해사항은 우리 모두 똑같습니다. 사업에 대해 우리는 같은 충동을 느끼고 예술과 과학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습니다." 앤트워프와-쾰른 선이 개통돼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국가들의 국경은 어디에서나 철로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앤트워프에서 브뤼셀을 거쳐 남부의 몽스로 이어지는 두 번째 철도가 부설되자 벨기에는 곧 두 개의 주요 간선-하나는 동서선, 다른 하나는 북남선-이 교차하면서 주요 도시, 항구, 산업지대가 서로 연결되었다. 이 철도 연결망은 곧 벨기에를 네 개의 인근 국가-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개의 독립 소국들로 이루어진 독일-로 연결되었다.


1846년 프랑스의 북부 철도회사가 릴까지 가는 프랑스 구간을 완공하자 파리-브뤼셀 철도 노선은 완공되었다. 북부 철도회사는 곧 수도 파리를 해협의 항구도시들인 불로뉴, 됭케르크, 칼레와 연결하였고 이 도시들에서 증기선을 타면 영국까지 세 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1848년에 이르러 프랑스-스위스, 스위스-바덴/헤세, 바바리아-색스니/프로이센, 브런즈윅-하노버/홀란드 등의 연결 철도가 완공되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도 빈에서 프라하로 가는 철도를 완공하였다. 러시아 제국도 바르샤바-오스트리아 국경을 연결하는 철도를 부설했고 국경에서 빈으로 가는 철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철도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

철도는 산업 발전과 근대성(모더니티)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마차 운송을 '구세계'의 것으로 격하하면서 '근대'를 규정했다. 철도는 유럽의 시간과 공간 감각의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철도의 위력은 즉각 인식되었고 민주주의의 힘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사학자 쥘 미슐레는 베르사유-파리행 기차를 타고 그 소감을 " 왕궁은 왕의 변덕이 통하는 곳이지만 철도는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서 리옹과 파리를 연결하는 등 프랑스를 하나로 묶는다"라고 적었다.


괴테는 철도가 독일을 통합하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괴테의 비전에 동감했고 철도가 국가의 발전을 촉진하는 힘이고 무역과 산업을 성장하게 만들고 공동의 문화를 진작시키고. 지역의 고립과 편협성을 타파한다고 주장했다. 철도가 유럽 전역의 경제를 촉진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보수 반동 세력은 철도의 민주적 영향력을 두려워했다.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교황령 국가들 내에서 철도의 부설을 금지했다. 또한 하노버 왕가의 왕세자는 '구두 장수든 양복장이든 모두가 왕세자처럼 빠르게 여행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철도 부설을 반대했다.



철도가 유럽에 가져온 변화 1 - 상품의 유통

마르크스 자신도 철도가 상품의 유통에 미치는 영향을 예민하게 의식했다. <그룬트 리세>(기본 원칙)(1857~1858)에서 철도, 증기선, 전신들이 공간을 파괴하여 상업을 글로벌화시킨다고 분석했다. 철도는 운송비를 절감함으로써 모든 분야의 상품을 새로운 시장에 제공했다. 신선한 물고기는 이제 내륙의 도시로 들어갈 수 있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은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철도 이전의 300년 동안에 세계 무역량은 서서히 상승하면서 상승 폭이 연간 1%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1820~1870년의 교역량은 해마다 4.18%가 상승했다.



철도가 유럽에 가져온 변화 2 - 문화. 연예산업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철도는 유럽의 음악, 문학, 예술을 국제적으로 유통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철도는 문화 시장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창작품 시장은 18세기에 이미 존재했다. 그 시기에 등의 형태로 공공영역이 개발되어서 작가, 화가, 음악가들은 예전에 권력을 가진 후원자들에게 의존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더 넓은 사회를 상대로 그들의 작품을 팔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여전히 소규모였고 일정 지역을 따라 형성되었다. 회화와 음악시장은 소수의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조직된 네트워크(미술 아카데미나 오페라하우스)가 장악하고 있었고 예술가들은 사업을 하려면 이들과의 개인적 인맥에 의존하여야만 했다.


철도의 영향은 기존의 시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특히 운송비용이 크게 절감된 도서 출판업에서는 그 변모가 더욱 뚜렷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도서 수출은 1841년에서 1860년 사이에 그 물량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사상 처음으로 프랑스 서적 시장은 글로벌 규모로 확대되었다. 1860년에 이르러 프랑스 도서의 해외 수출 물량 중 3분의 1이 유럽 외의 지역으로 건너갔다. 증기선이 도래하여 프랑스어가 통하는 캐나다까지 도서를 값싸게 수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어권의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의 출판사들은 철도의 탁월한 운송능력 덕분에 프랑스와 유사한 수출 붐을 누리게 되었다. 철도는 1845~1855년에 수송비를 4분의 3이나 절감하게 해 주었다.


전에 마차로 여행하던 시절에 극장은 한 도시와 그 일원의 사람들에게 의존했고 매니저들은 극장 내에 개인 박스 석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즌 티켓을 판매하여 수익을 올렸다. 이러한 현지 대중들을 계속 즐겁게 하려면 그들은 새로운 오페라를 꾸준히 선보여야 했다. 오페라 작품은 한 시즌-혹은 그보다 짧은 시간-을 버티다가 그다음에는 무대에서 내려져 잊혔다. 1년 이상 혹은 나중에 리바이벌된 정도로 소구력이 있는 작품은 드물었으므로 대부분의 오페라는 그냥 사라져 버렸다. 예를 들어 라 스칼라 극장의 경우 극장이 문을 연 이후 첫 40년간 (1778~1826) 298편의 오페라가 공연되었는데 그중 다섯 시즌을 버틴 오페라는 파이셀로의 <세비야의 이발사>(1782)가 유일했다.


그러나 철도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타입의 시장이 발달했다. 예전보다 저 넓은 인근 지역, 시골 소도시, 국외 등지에서 극장 팬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단발 공연 티켓의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이제 극장 매니저들은 시즌 티켓을 팔아야 하는 제약에서 벗어나 성공작들을 장기 공연하거나 예전의 작품을 두 번째로 공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안정적인 레퍼토리 혹은 카논(canon:정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철도는 순회 극단이나 악단이 더 많은 청중을 찾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여러 해 동안 마차와 배를 타고 공연 여행을 해야 했던 이 책의 주인공 폴린 비아르도에게 철도는 멋진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독일이나 영국의 시즌 중이나 공연 중에도 프랑스로 일시 귀국할 수 있었고 지방 공연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영국 여행 말미에 지휘자 아돌프 뮐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 나는 날마다 다른 도시에 들리게 되었다네. 뛰어난 말과 탁월한 철도 덕분에 여기에서 아주 빠르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 특히 철도는 여행자에게 아주 편리하다네, 나는 그 운송수단을 리버풀, 맨체스터, 버밍엄 등지에서 많이 이용했다네"



철도가 유럽에 가져온 변화 3 -사람 이동

파리-브뤼셀 구간의 철도 개통은 1843~1853년 애 2만 명의 해외이주자(대부분 프랑스인)를 브뤼셀에 유입시켰다. 프랑스인들은 그 도시의 문화 엘리트로 등장하여 극장과 미술관을 경영하고 언론에 글을 쓰고 작가 난 화가로 그곳에서 일했다. 브뤼셀은 프랑스어권과 독일어권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프랑스에 독일 예술을 전달하는 중요한 채널이 되었다. 예를 들어 바그너의 오페라는 상당수가 프랑스에 수입되기 전에 벨기에에서 먼저 공연되었다.


철도는 또한 시골 사람들을 새롭게 도시에 유입시켰다. 호텔, 레스토랑, 가게, 카페 등이 철도역 주위에 생겨났다.


철도가 도래하기 전에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한평생을 살다가 삶을 마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철도의 도래는 하룻밤 사이에 여행시간을 바꾸어 놓지는 않았지만 빠른 스피드는 하나의 혁명으로 인식되었다. 1843년 이전에 조르주 상드는 우편마차를 이용하여 파리에서 노앙의 별장(280km)까지 이틀에 걸려서 갔으나 오를레앙까지 가는 철도가 개통되자 여행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5년 뒤 1848년 쇼팽은 열차로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650km 가는데 1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로시니 vs 마이어베어

철도는 19세기에 시공간 개념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이해,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냈다. 음악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던 로시니는 기차를 무서워했다. 기차 타는 것을 거부하고 마차로 여행을 했다. 시대의 흐름을 적응하지 못했고 나중에 자신의 은퇴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 다른 예술 형식과 마찬가지로 오페라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의 예술을 뒷받침했던 '이상과 감성'은 '증기'와 '바리케이드'(시위대)'의 현대에서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철도 시대의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형태 그랜드 오페라의 첫 번째 위대한 작곡가 마이어베어. 로시니의 총애받는 후배였던 그는 기차로 여행했고 기차 안에서 작곡했다. 청중은 그의 음악에서 그런 맥박을 들을 수 있었다. 동시대인이고 친구, 동료였지만 그들의 음악은 완전히 다른 두 세계의 목소리였다.



새로운 변화, 철도 개통을 할 때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움직였기에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철도시대의 도래가 그랬듯 현재 우리의 삶 역시 변화의 연속이다. 지금 여기에 대한 인식을 잘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복잡계는 계속될 것이다. 그 어디쯤엔가 내가 자리매김할 곳이 있도록 책을 읽고 글쓰기에 충분히 담금질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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