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마음>을 읽는 중에.
언제부터인지 영화관에 가는 게 나에게는 힘든 일이 되었다. 캄캄한 공간에 두 시간가량 앉아 있는 게 숨이 막힌다. 뒤 쪽 출입구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중간에 몇 번씩 시원한 공기를 마시러 밖으로 여러 번 나오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영화가 개봉할 때면 첫째가 나를 대신해 아빠와 함께 한다. 학창 시절 극장에서 두 편을 연달아 보기도 했던 내가 이제는 집에서 편안하게 넷플리스를 애용하게 될 줄이야.
책 < 일하는 마음>에서 작년 말에 집에서 남편과 함께 본 <콘택트 Arrival> 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SF 영화를 즐겨하는 남편이 강추해서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몰입하고 봤던 기억이 났다. 찾아보니 대만계 미국인 테드 창의 단편 소설 [당신의 이야기 Story of youe life and others]인 원작에 각색이 더해졌다고 했다. 외계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언어학자의 모습이 그려졌고 외계인들에게 언어를 알려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 물체가 외계인을 태우고 지구 곳곳에 당도한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그 외계인들과 소통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여섯 새의 촉수가 달렸으며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생긴 외계인들에게 루이스의 팀은 헵타 포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헵타 포드의 언어는 그들의 생김새와 비슷하다. 헵타 포드는 텅 빈 스크린에 문자를 띄우는 방식으로 말을 거는데 그 문자는 어느 방향으로 읽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다. 헵타 포드는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문자를 한 번에 스크린 위에 띄운다. 근데 순서에 따라 한 글자씩 적어가는 것이 아니다. 헵타 포드의 언어에는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다. 외계인들에게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곧 언어로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이기에 헵타 포드의 언어를 익힌 루이스는 헵타 포드처럼 인식하게 된다. 현재를 인식하는 동시에 미래까지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현재의 행위 안에 이미 미래의 결과가 내포되어 있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현재의 사건이 발생함과 동시에 미래의 사건도 발생한다는 의미다
루이스가 헵타 포드의 언어를 통해 갖게 된 인식능력을 지구인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겠지만 헵타 포드의 세계관에서 보자면 현재와 미래는 시간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므로 현재에 대한 인식은 그 자체로 곧 미래에 대한 인식이다. 루이스는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연결되어 일어나는 한 사건의 일부로서 아는 것이다.
헵타 포드의 언어를 통해 미래를 알게 된 루이스는 오늘의 어떤 선택이 미래에 어떤 고통과 상실로 연결되는지 알게 된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그 선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그리고 그 끝이 원치 않는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 길을 선택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루이스는 '예스'라고 대답한다.
누구나 인생의 끝에는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한다. 설령 그 사실을 알지만 하루에도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리며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저자의 말대로 오늘 좋은 것은 그냥 오늘만으로 이미 좋다고 하기에 충분하다. 언제일지 모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매 순간에 충실할 수 있길 바란다.
끝이 원치 않는 모습이라고 해서 과정도 그런 것은 아니며, 끝을 안다고 해서 거기에 이르는 길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삶이 끝을 확인하기 위해 동원되는 절차인 것도 아니다. <일하는 마음> p49
영화에서 루이스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UFO 안으로 처음 발을 들인 그때, 지구와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는 외계인들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벽을 향해 뭄을 날리던 장면이 나온다. 본능적인 공포를 누르고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 루이스. 그 순간 차원이 바뀌며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진입한다. 조금 전까지 벽처럼 보였던 것은 단단한 지면으로 변하고 그 벽을 발로 딛고 일어서자 헵타 포드의 언어가 떠오르는 스크린이 눈앞에 펼쳐진다.
<일하는 마음>의 저자는 루이스가 몸을 날릴 수 있었던 이유를 벽을 바닥처럼 밟고 선 동료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료들이 저곳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자신도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경계를 넘어서는 모서리를 뛰어넘는 도약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냐는 거다.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본능적 공포를 이기게 하는 호기심이었을 거라 했다. 경계 너머의 삶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어느덧 한 달을 한 지 19일째다. 리더님과 멤버들과의 믿음이 있었기에 꾸역꾸역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마지막까지 서로 응원하며 각자의 임계점을 넘어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번 경계를 넘어본 사람은 두 세계, 두 차원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그는 경계를 넘기 전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일하는 마음> p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