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새로운 음악산업

전지 악보 산업과 피아노

by 꽁스땅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부모님의 배려로 음악을 가까이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거부감 없이 즐겨 듣기도 하고 어렵지 않은 악보를 사서 쳐보기도 했다. 방학 때면 드라마 삽입곡이나 즐겨 듣던 곡의 악보를 찾느라 종종 서점을 들리곤 했다. 요즘은 둘째가 가끔 악보를 사겠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사거나 아예 책으로 주문해 주는 경우도 있다.


책 <유러피언>의 저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전지 악보 판매를 통한 새로운 음악산업으로 변화한 작곡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악보 산업의 번창한 데는 일반 가정의 피아노에 대한 인기가 한몫했던 당시 상황이 흥미롭다. 오늘은 인상 깊게 읽은 악보 산업 부분에 대해 책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하이든과 에스테르하지 귀족 - 18세기 작곡가들

18세기에 작곡자들은 고용주의 노예였고, 그들이 작고한 음악은 고용주의 소유가 되었다. 1769년 하이든이 안톤 에스테르 하지 귀족을 위해 일하러 갔을 때 계약서는 그가 "에스테르하지의 명령에 따라 필요한 곡을 작곡해야 하고 그 신규 작곡한 곡을 남에게 알리거나 복제해서는 안 되며 그 곡은 오로지 에스테르하지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파리에서 하이든 곡의 해적판 악보가 출간되자 1779년 이 계약이 다시 갱신되면서 그런 제한 규정은 삭제되었다. 그 덕분에 하이든은 빈, 독일, 프랑스, 영국의 출판사들과 사업 관계를 트게 되었다. 특히 하이든은 1790년대에 런던으로 건너갔는데 그의 작품은 그 도시에 아주 잘 알려져 있었다.



모차르트(1719-1787) vs 베토벤 (1770-1827)-19세기 작곡가들

악보 출판업이 발전하면서 작곡가는 새로운 소득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작곡가는 악보의 소유자가 되었고 그것을 출판하는 데 따르는 수수료나 인세를 받았다. 19세기 초 몇십 년 동안에 악보 출판으로 벌어들일 스 있는 돈은 별거 아니었다. 시장은 너무 작았고 새롭게 출판된 악보의 해적판이 너무 많이 나돌았다. 모차르트는 출판 악보에서 아주 소액의 돈을 벌었을 뿐인데 그가 고용한 복제자들이 해적판을 내서 그 수입을 대부분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는 복제자들을 자기 집에서 일하게 하고 철저하게 감사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썼다.


베토벤은 좀 더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그는 자기 음악만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자 상당히 노력했다. 그는 프리랜서 작곡가로서 다양한 방법(강의, 콘서트, 주문받아 작곡하기, 부유한 남녀에게 곡을 헌정하는 조건으로 기부금 받기, 악보를 출판사에 팔기 등)을 시도하였으나 근근이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정도였다. 그는 유능하면서도 때로는 영리한 사업가이기도 했는데 출판사들로부터 더 높은 보수를 받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궁리를 했다. 그러나 악보 출판에서 베토벤이 얻은 수입은 소액이었다. 5번 교향곡과 6번 교향곡, 작품 번호 69의 첼로 소나타, 작품 번호 70의 피아노 트리오 등의 악보에 대하여 브라이트 앤 헤르텔 사는 딱 400굴덴(1,050프랑)을 지불했는데 베토벤의 석 달 생활비에 불과했다. 그는 손쉬운 피아노곡 <바가텔>과 편곡(그가 에든버러 출판사인 조지 톰슨을 위해 편곡해 준 영국 민요들)으로 고수입을 올렸다.


베토벤은 자기 작품을 팔 수 있는 좀 더 간단하고 품위 있는 방식을 원했다. 그는 출판사 프란츠 호프 마이스터에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 일을 피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좀 다르게 처리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술시장이라는 게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 시장이 있어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내놓고 필요한 만큼의 돈을 받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 못해 예술가는 어느 정도 사업가 노릇도 겸해야 합니다."



칼 체르니


전지 악보를 통한 새로운 음악산업 형성

1830년대부터 악보 출판에 일대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가정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는 일이 점점 더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이런 출판 붐을 더욱 촉진시켰다. 석판 인쇄술의 발명인 전지 악보를 값싸게 대규모로 출판하는 현상을 더욱 부추겼다. 악보로 발간된 오페라 아리아는 극장으로부터 가정의 거실, 살롱, 무도장, 뮤직홀, 술집 등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아리아는 공원의 악대, 거리의 음악가 등이 연주하였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 아리아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곡조를 알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고 싶어 했다. 이렇게 하여 오페라 제작과 전지 악보(sheet music:한 장 짜리 전지에 인쇄한 악보) 판매를 통한 그 음악의 재생산 사이에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오페라를 중간에 두고 제작자든 출판사든 둘 다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이 순간은 음악산업이 자본주의 경제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이어 베이는 오페라의 부산물로부터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악보는 여러 편곡의 형태로 수만 부가 팔려나갔고 그는 각각의 편곡 악보에서 로열티(인세)를 받았다.


체르니는 또한 열심히 편곡했다. 1848년 그의 악보를 출판하는 영국 출판사인 로버트 콕스 Robert Cocks 회사는 그때까지 발표된 체르니 작품의 총 리스트를 발간했다. 그가 발표한 798개의 피아노곡 중에서 304개가 87편의 오페라 작품의 멜로디를 편곡한 것이었다. 그보다 3년 전 런던의 콘서트 매니저인 존 엘라는 체르니가 빈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는 네 개의 책상 위에 각각 다른 오선지를 올려놓고서 한 책상 위에서 곡을 쓰다가 그전에 곡을 쓴 페이지 위의 잉크가 마르면 다시 그 책상으로 옮겨가는 식으로 작곡하고 있었다.




악보 산업 번창한 이유

이처럼 악보 산업이 번창하게 된 것은 19세기 초 몇십 년 동안에 가정 내 피아노 소유가 급격하게 증가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18세기에 피아노-포르테는 값비싼 신제품이었다. 하프시코드처럼 약하게 생긴 이 악기는 대규모 곡을 연주하는 데 필요한 음폭과 음량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파리의 세바스티앵 에라르 Sebastien Erard나 영국의 존 브로드 우드 John Broadwood 같은 제작자들이 기술 개선에 성공함으로써 피아노를 훨씬 더 단단한 악기로 제작하였다. 건의 움직임을 현에 전달하는 연동 장치가 강화되었고 또 피아노에 페달이 달리게 되었다. 그 결과 전보다 더 풍부한 음폭과 음량을 갖추게 되었고 이런 기술 발전 덕분에 베토벤은 원숙한 피아노곡들을 쓸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1813)에서 피아노는 캐서린 드 버그 부인 같은 상류층 지주 계급의 집에서도 발견될 뿐만 아니라 베넷 가정이나 루카스 집, 병리의 임차 가옥 등, 농번 마을의 중류 집안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1840년대에 이르러 피아노 소유는 영국 내에서 아주 폭넓게 자리 잡은 현상이 되었다. 영국에서 200개 회사가 연간 2만 3천 대의 피아노를 제작했고 이 중 10%가 브로드 우드 회사의 제품이었다. 영국은 전 세계 피아노 제작 분야에서 선두였다. 1845년 파리에 약 6만 대의 피아노가 있었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은 10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당시 파리의 인구는 1백만 명 정도였다.


피아노가 인기 있었던 이유

유럽 전역에서 피아노는 양반 계급의 핵심 가구로 인식되었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것은 젊은 처녀의 '재주'중 하나였고 결혼 가능성을 높여주는 자질이었다. 피아노는 하프와 함께 여성 신체에 가장 적합한 악기로 인식되었다. 목관악기는 입술을 찌그러뜨려야 했고 바이올린은 몸을 비틀어야 했으며 첼로는 두 다리를 벌려야 했기 때문에 여성에게 부적절했다. 반면에 피아노는 두 다리를 다소곳이 모으고 얌전하고 예의 바르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연주자가 직접 다루어서 소리를 내야 하는 목관악기나 현악기 와는 다르게 피아노는 건반만 칠 수 있으면 되므로 여자가 다루기 '쉬운 것'으로 인식되었다.


피아노가 연주하기 쉽기 때문에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오페라와 콘서트 표는 중산층 가정이 주기적으로 사들이기에는 너무 비싸지만 전지 악보는 쉽게 사들일 수 있었고 또 주간 피아노 레슨도 부유한 중산층 가정의 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시장을 겨냥하여 피아노 앨범과 편곡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이 하나의 산업을 형성할 정도롤 많이 생겨났다.


악보 산업으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 대가들의 삶의 방식이 귀족들의 노예에서 실력 있는 프리랜서로 변화했다는 사실과 당시 피아노에 대한 대중들 사이의 인기에 대해 재미있게 읽었다. 특별히 악보 산업의 발달로 시대를 잘 만난 체르니의 편곡에 대한 열정적인 작업 모습, 베토벤의 사업가적인 기질, 음악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거장다운 품위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하는 악보 산업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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