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 관광산업
해외여행을 처음 가본 게 언제였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당시 유행하던 패키지여행으로 홍콩을 간 게 처음이다. 나름 이름 있는 여행사를 통해 20명 정도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룹을 이뤄 여행사에서 짜인 일정에 따라 3박 4일 동안 신기한 외국여행을 경험했다. 기억에 남는 건 3박 4일 중 하루 가이드 없이 우리끼리 자유여행이었다. 친구와 나는 미리 같은 그룹의 젊은 부부와 가고 싶은 곳을 고르고 함께 이동하며 구경하고 쇼핑도 하며 맛집까지 찾아다녔다. 우리들 스스로 계획해서 모르는 길을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뒤로는 패키지여행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계획해서 자유여행을 주로 다녔다. 패키지여행이 가격 대비 알차긴 하지만 충분히 들러볼 시간적 여유를 즐기는 걸 선호해서다. 더군다나 요즘에 각종 여행정보가 인터넷으로 조회 가능하고 이미 여행한 사람들의 블로그 정보도 많은 것 또한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편견의 장벽을 허물게 되고 악의적인 열정과 우울한 기질이 진정되고 지성이 확대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하게 되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 지고 사람들의 상황과 고통을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더욱더 자애로운 마음을 지니게 된다. <유러피언> p424
19세기 당시 해외여행의 이점과 혜택에 대한 설명 토마스 쿡의 설명은 지금 읽어도 전반적인 여행 관련 공감 가는 이야기다. 여행이라는 건 준비할 때부터 미소 짓게 하고 우리를 말랑말랑하게 해서 변화시키는 도구다. 책 <유러피언>에서는 철도에 의해 국제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데 오늘은 유럽의 관광산업에 대한 내용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철도 부설로 장거리 여행 가능
철도의 덕분에 온천도시와 해변도시를 직접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바덴 바덴, 비스바덴, 바트엠스 같은 도시들은 철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번성한 관광도시로 발전했다. 이 도시들은 귀족과 심지어 왕족들이 때때로 들리는 여름 리조트로서 명성이 높아서 고급 호텔, 레스토랑, 카지노, 연주 홀, 산책공원 등을 조성하여 유럽 전역의 부유한 고객들을 끌어들였다. 벨기에의 오스 텐트, 오스트리아의 바트이슐, 프랑스의 비시, 엑스레벵노르그레지, 플롱비에르레벵 등지의 해변도시도 황제와 국왕들이 방문하면서 유명해졌고 철도에 의해 민주화되었다.
철도는 외국여행을 손쉽게 감당할 만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전보다 더 자주 더 멀리 나가도록 권장했다. 이런 관광산업 활성화에는 영국이 앞장섰다. 그들은 성장하는 관광산업을 유럽으로까지 확대했다. 영국의 중산층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유럽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살고 있기에 그들은 다른 유럽인들보다 여행 욕구가 더 강했다.
그랜드 투어 vs 스몰 투어
그랜드 투어(grand tour :유럽 일주 여행)는 영국의 귀족들이 거의 주름잡고 있었다. 자신의 지적 성장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여행 모델이 되었다. 부유한 청년들은 이탈리아로 직행하여 고전 지식을 보충하고 대륙의 패션을 발견하고 성적 모험을 추구했다. 19세기 초 몇십 년간 여행자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여행객들은 각양각색이었고 전문가 계급이 많았으며 저지 국가를 둘러보고 라인강에서 스위스에 이르는 지역을 관광하는 스몰 투어(small tour)를 더 즐기는 경행이 있었다. 스몰 투어는 증기선이 운항하면서 한결 다녀오기 쉬은 여행이 되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영국해협양안의 항구들로 연결된 철도가 완성되면서 해협을 건너가는 여행객 숫자는 1850년 16만 5천 명에서 1860년의 23만 7천 명 그리고 1869년 34만 5천 명으로 늘어났다. 이 시기의 끝 무렵에 여행객들은 런던에서 파리까지 반나절이면 여행할 수 있었다.
Tourist 관광객이란 용어
관광업은 철도시대가 만들어낸 산업이었다. 심지어 투어리스트(tourist: 관광객)라는 단어도 비교적 최근에 생긴 용어였다. 이 용어는 1810년대부터 프랑스와 영어에 들어왔고 철도,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여행 안내서 등이 내륙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던 1840년대부터 폭넓게 사용되었다. 전에는 해외여행이 극소수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 철도 덕분에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유적에 대한 단체관광
문화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가장 큰 힘이었다. 유럽의 위대한 예술작품을 관람하고 유명한 역사적 장소나 건물을 방문함으로써 관광객들은 자신의 교양을 높이려 했다. 여행 계획을 잡는 관광객들의 주요 기준점은 국립 미술관과 박물관이었다. 유럽 전역에 국립 미술관이 개장된 것과 거의 동시에 유럽 관광업이 발달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작가의 생가와 문화 유적지도 주요 관광명소가 되었다. 문화 유적에 대한 단체관광도 관광업 초창기에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영국의 경우 브론테 자매의 페나인, 워즈워스의 호수 지역, 셰익스피어의 스트랫퍼드 생가 등이 유명한다. 1840년대에 철도가 개통되면서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다.
유럽 대륙을 여행하는 영국 관광객들은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바이런의 작품을 길 안내로 삼았다. 라인강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바이런의 시를 많이 참고했다. 그의 시들은 그런 명소에서 어떤 느낌이 들어야 하는지 미리 알려주었다. 머리의 여행 안내서는 가능한 바이런 시가 많이 인용될 수 있도록 여행 대상지를 선정했다. 존 머리는 바이런의 시를 펴내는 출판사였는데 심지어 여행객용 바이런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존 머리의 여행안내서
그 어떤 책 보다 머리의 여행안내서는 영국인 관광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가야 할 곳, 불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만한 곳, 그런 명소를 감상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유럽에 모든 여행안내서의 모범이 되었고 크르게 네프를 포함한 유럽 여행객들이 독일이나 프랑스의 동종 책자들보다 더 선호하였다. 최초의 존 머리 안내서인 <대륙 여행자를 위한 핸드북>은 1836년에 출판되어 처음 5년간 1만 부가 팔렸고 1871년까지 17쇄를 인쇄했다. 그 무렵 머리 출판사는 유럽 국가별 안내서를 발간하고 있었고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라인강 일대, 스위스, 이탈리아를 다룬 책이었다.
머리의 가장 획기적인 부분은 여행 일정을 제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머리 안내서는 다른 핸드북보다 간결하면서도 사용하기가 편리했다. 머리의 책은 편리하게 여행 노선에 따라 구성되어 있어서 지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그 노선은 각 명소 사이의 여행속도와 접근 편의성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은 그에 해당하는 철도, 도로, 증기선 등을 이용하면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유럽의 문화지도가 다시 작성되었다.
지적인 영국 여행객을 위해 마련된 이 책은 먼저 가능한 여행 일정을 제시한다. 지나치게 많은 연대기적 세부사항은 피하면서 유적지와 관광지에 대한 에피소드를 간결하게 제시한다. 그런 다음 그런 명소를 이미 돌아아보고 관련 글을 쓴 스콧, 바이런, 기타 문학가들의 핵심적인 말만 간단하게 인용한다. 잘 알려진 길로 관광객들을 안내함으로써 해외여행의 체험을 표준화하였다.
유럽의 미술 박물관 안내하는 책자
비아르도 부부는 새로 개장한 박물관의 예술작품들을 일반에 알린 최초의 인사였다. 1852년 와 1855년 사이에 다섯 군데 미술관 안내서를 아셰트 출판사의 포켓 여행 문고로 발간되었는데 <예술가와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겸 메모>라는 시리즈로 제목을 달았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루이의 책들은 유럽의 주요 아트 컬렉션을 재조직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루이의 책은 현대적인 큐레이터 원칙을 확립했다. 그의 안내 책자들은 예술가의 시기와 학파에 따라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교육적 체계는 19세기 말엽의 몇십 년간 대부분의 갤러리(화랑)가 채택하였다.
여행사의 유럽 단체 투어
여행사들도 여행 노선을 표준화하는 데 기여했다. 19세기 중반에 생긴 철도 덕분에 많은 여행사가 대륙 여행 붐에 적절히 반응했다. 토머스 앤 선 Tomas and Son처럼 크게 성공을 거둔 여행사는 없었다. 쿡은 1840년대 초반에 장인, 기계공, 노동자 등을 상대로 미들랜드 기차를 타고서 당일치기 단체여행 상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1851년 특별기차 단체여행으로 런던의 대박람회를 관람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16만 5천 장에 달하는 왕복 기차표를 팔았다. 1855년에 그는 파리 세계 대박람회를 관람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최초의 유럽 단체여행 상품을 팔았다.
쿡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유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을 회사의 사명으로 삼았다. 쿡은 단체 투어를 직접 여러 번 따라다니면서 적절한 호텔과 식당을 추천했다. 쿡은 1868년부터 몇몇 호텔에 투숙하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사전 쿠폰제도 룰 도입했는데 이것은 현대 패키지여행의 밑바탕이 되었다.
여행자 vs 관광객
투르게네프는 관광객들이 도시의 외관만 보았고 그들이 방문한 도시의 객관적 사실들만 수집할 뿐 그 도시의 사람들이나 문화와는 소통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생활 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여행하는 것은 가치가 없는 일이다. 다양한 호텔에 묵으면서 평범한 방의 평범한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광업 비판의 근거에는 여행이란 더 높은 수준의 해외 문물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상이 깃들어 있다. 여행자들은 그들이 방문하는 외국 도시들의 생활과 문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한다고 주장하면서 천박한 관광객들과 자기들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광객들은 단체로 움직이면서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지 않고 또 어느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는다. 이에 비해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해외 도시의 발견되지 않은 부분을 탐구하는 정신을 풍부하게 함양하는 방식으로 현지의 실제적인 진정한 문화를 체험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인이라는 정체성
유럽인의 존재감은 해외여행에서 얻은 외향성과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철도 덕분에 유럽 전역의 사람들은 전과는 다르게 자신들을 유럽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해당 국가의 역사와 지리에 따라서 어떤 나라는 그런 존재감이 강하게 나타났고 또 어떤 나라는 약하게 나타났다. 이처럼 유럽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은 유럽의 어느 지역이든 기차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단단히 연결되었다. 지선 기차역을 가진 작은 도시조차도 그 자신을 유럽 대륙 전역을 퍼져 나가는 철도망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철도의 개방으로 유럽 사람들도 날씨에 대한 얘기에서 여행에 대한 얘기를 나눴단다. '이번 여름에는 어디에 다녀오셨습까?' '내년 여름에는 어디로 갈 겁니까?'라며. 많은 사람들이 12번째 달(여행하는 달)을 기다리며 나머지 열 달을 보냈다는 걸 읽으며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여행책자, 단체관광, 여행객과 관광객에 대한 우려에 대한 이야기도 지금 우리의 일상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과거 이런 사연이 있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은 사람들의 마음을 넓혀준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던 당시 사람들. 유럽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모태가 철도, 기차라는 것이 새삼 놀랍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기회가 된다면 기차 타고 유러피언의 내용들을 떠올리며 유럽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