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망이 성공의 원동력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성공스토리

by 꽁스땅스

19세기 파리에는 많은 러시아인이 살고 있었다. 임시 거주자, 게으른 귀족 여행자 혹은 관광객이었다. 그러나 장기 이민자, 정치적 망명자와 혁명가, 유학생, 작가와 화가도 있었다. 이런 러시아인 공동체에서 투르게네프는 중요한 중개인이었다고 1870년대 중반에 콜레주드프랑스(College de France, 1530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설립한 고등교육기관) 유학생이었던 막심 코발레프스키(Maksim Kovalevsky)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그에게 러시아 지식인의 대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문학, 미술, 음악에 종사하는 러시아 남녀 가운데 투르게네프의 덕을 보지 않은 사람을 없었다. <유러피언 p633>


책 <유러피언>의 중심에는 세 사람의 주인공이 있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 가수이자 작곡가인 폴린 비아르도(1821-1910), 언론인 겸 저술가인 루이 비아르도(1800-1883)이다.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시기에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독일, 영국 등지에서 살았고 또 여러 지역을 폭넓게 여행했다. 저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그들의 유럽에서의 활동을 추적하여 세 사람이 접촉한 인사들을 소개하고 예술가 겸 예술 촉진자로 활동했던 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폭넓은 국제적 인맥과 연락망을 통하여 세 사람은 19세기 유럽에 중요한 문화 중개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러시아 음악, 미술, 문학을 프랑스, 영국, 독일에 소개하고 또 스페인 미술과 음악을 프랑스에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 작가들을 을 러시아에 소개하는 등 유럽의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사실상 현대적 의미의 대리인이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 문학 대사로 활약한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의 만남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전쟁과 평화>가 성공하게 된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반 투르게네프


문화 전파자 투르게네프

그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면서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그 언어에 능통했다. 베를린에서 그는 카를 마르크스와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유럽 문화를 폭넓게 수용했다. 그는 고전, 철학, 독일문학의 책을 많이 읽었고 상당수 암기하는 괴테의 시는 그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사고방식, 감수성, 성격들에 있어서 투르게네프는 유럽의 국제주의자였다.


그는 유럽이 도덕적 진보, 자유, 민주주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그 자신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독일을 통하는 것이었으며 그 자신이 나중에 시인한 것처럼 독일은 제2의 조국이었다.


투르게네프는 파리에 살면서 빅토르 위고, 플로베르, 모파상, 에밀 졸라. 조르주 상드, 헨리 제임스 같은 문인들과 만나 교류했고 그들의 작품을 러시아에 소개했다. 또한 그들을 대신하여 협상해 주었고 그들의 작품이 러시아어로 번역되는 것을 감독했다. 하이네의 시, 마르코비치 단편소설, 월트 휘트먼의 시 등 그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에 적당한 번역가를 찾을 수 없으면 자신이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러시아에 소개하는 등 유럽의 서로 다른 문화의 연결망의 핵심에 있었다.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도박장에서 돈을 모두 날려 난감한 상태인 톨스토이를 구조하기 위하여 바덴 바덴으로 달려가기도 했던 투르게네프. 1861년에 톨스토이와 사이가 틀어졌다. 결국 성격차이가 그런 불화의 원인이었다. 톨스토이보다 10년 연상인 투르게네프는 그에게 아버지 같은 심정을 느꼈다. 투르게네프가 그를 아주 존중하기는 했으나 어쩌면 질투심 때문에 그의 글에서 허술한 점을 지적했던 것이 톨스토이의 신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나중에 투르게네프가 그의 작품을 비웃는 줄 알았고 그래서 공포와 수치심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했다가 다시 싸우곤 했다.


그러다가 투르게네프의 딸 폴리네트에 대하여 심한 언쟁을 벌인 끝에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나고 말았다. 톨스토이는 농노들에 대하여 자애로움 태도를 보이는 척하면서 그런 사생아 딸을 두다니 이중적인 태도가 아니냐고 모욕했다. 하지만 톨스토이 자신도 그의 영지 내에서 농노의 딸들과 관계를 맺어 여러 아이를 낳았던 일이 있었다. 그 후 17년간 두 사람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전쟁과 평화> 성공 스토리

서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러시아 작가로서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문학의 대사로 활약했다. 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과 영국에서 많은 러시아 작가의 도서출판 계약을 협상해 주었다. 투르게네프의 주선 덕분에 오스트롭스키, 곤차로프, 알렉세이 톨스토이, 살티코프 셰드린 등이 유럽의 문학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가 해준 가장 큰 서비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유럽 독자들에게 알린 일이었다.


서먹한 관계였지만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로 거둔 놀라운 성취를 인정했다. 그는 그 책이 나온 해인 1868년에 처음 읽었고 그 후 10년에 걸쳐서 여섯 번을 읽었다. 그는 그 걸작을 유럽 독자들에게 알렸고 19세기에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선언하면서 그 작품이 유럽 각국 번역되는 일에 진력했다.


그 작품이 너무나 긴 소설이었으므로 투르게네프는 먼저 그보다 휠씬 짧은 <두 명의 경기병> 을 먼저 번역하여 1875년에 <르 탕>지에 발표했고 이 작품의 앞에 서언을 집필하여 <전쟁과 평화>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그 중편소설은 프랑스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했고 프랑스어든 다른 언어든 <전쟁과 평화>를 번역하자는 요청도 즉각 나오지 않았다. 영국의 독자들도 <유년시절과 청년 시절>의 번역본에 별 감명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투르게네프는 영국인들이 이런 멋진 심리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톨스토이를 '디킨스의 모방 작가' 정도로 여긴다고 불평했다.


그러다가 1878년 4월. 사정이 일변했다. 당시 투르게네프는 파리에 있었는데 톨스토이의 편지를 한 통 받았다. 톨스토이는 편지로 예전에 우정을 회고하면서 이제 더 이상 투르게네프에게 적개심이 없으니 상대방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전해왔다. 톨스토이는 그의 좋은 점을 기억하면서 사실 자신의'문학적 성곡'은 투르게네프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당신이 나를 용서해 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우정을 바치겠다"라고 말했다. 투르게네프도 즐거운 마음으로 답신을 보내며 호의를 표시했다. "우리들 사이의 오해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을 아주 좋아하며 작가로서 당신의 문단 진출을 그 누구보다 환영했으며 당신의 새로운 작품들에 대하여 언제나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두 달 뒤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방문길에 일부러 톨스토이를 만나러 갔다.


다음 해에 <전쟁과 평화>의 프랑스어 번역본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간되었다. 투르게네프는 그 책을 파리의 영향력 높은 문학계 인사, 출판사, 비평가 등에게 나누어 주면서 원문에서 많은 부분을 삭제한 번역본이 원본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는 그 책이 유럽 독자들에게 어필할 것인지 불확실했다. 그는 야회, 저녁식가, 살롱등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책 얘기를 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투르게네프를 통하여 그 책 얘기를 처음 들었다. 언론인 V.P. 세메노프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그전에는 톨스토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투르게네프는 오로지 톨스토이 얘기만 했습니다." 투르게네프의 영향력은 그 책이 승리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연결망이 성공의 원동력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톨스토이의 문학적 재능이 우선 되었지만 결정적인 역할은 투르게네프와의 만남이었다. 크림전쟁 이후 만난 두 사람. 도박에 심취한 대가 톨스토이의 모습도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 투르게네프의 행동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는 17년간 서먹해진 관계임에도 톨스토이의 < 전쟁과 평화>를 알아보고 유럽 독자들에게 알리는데 기여했다.


<성공의 공식 포뮬러>의 저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는 어느 분야든 성공하려면 연결망을 이용하는 데 통달해야 한다고 했다. <전쟁과 평화>의 성공 스토리도 결국 투르게네프와의 연결망이 결정적인 요인임을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연결망의 강력한 힘과 그 안에 기회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 책의 막바지 부분을 읽고 있다. 긴호흡을 요하는 책이고 방대한 유럽의 역사를 소화하기에도 숨이 차다. 하지만 그만큼 얻어지는 지적인 쾌감도 있다. 19세기 음악, 미술, 문학 분야에 우리에게 친숙한 거장들의 얘기가 많이 소개되니 계속 읽어나가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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