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큐레이터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를 읽고

by 꽁스땅스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한참 싸이월드에 열광할 때도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었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딱 그만큼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은행 업무나 회사 업무처리, 이메일을 통한 의사소통 등과 같은 필수적인 용도로만 활용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비공개로 일상을 기록했지만 어느 순간 접속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의 경우 호기심에 개설만 하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독서모임을 하게 되면서 블로그에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솔직히 디지털상에 내가 쓴 글을 공개한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온라인 활동이 부자연스러워서 글을 쓰면서도 어느 정도까지 개인적인 생각들을 내보여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신경 쓰게 되었다. 온라인을 통해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접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라클 모닝, 운동, 독서 등 일상에 대한 기록들을 남기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당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데 집중하기 바란다.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기 바란다. '아무도 이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이 활동이 금전적 이득이나 명성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해도 이 일은 여전히 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이 일은 나나 다른 누군가에게 여전히 좋은 일인가?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 p422>


최근에야 블로그에 글을 쓰는 부분이 좀 편해졌고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며 소통하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자연스레 인스타 그램 계정을 만들었고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했으며 온라인상의 느슨한 유대로 인한 끈끈함으로 일상이 풍성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책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를 읽으면서 디지털 기록에 대해 막 재미를 느끼던 나는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선택이나 충동에 의해서든 강요에 의해서든 살아있는 동안 온라인 세상에 많이 참여하면 할수록 죽은 뒤 남긴 디지털 발자국이 지니게 될 역기능에 대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저자 일레인 카스켓은 사후에도 계속 보존되는 페이스북 프로필 같은 디지털 유물은 어떤 이에게는 엄청난 위안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고문과 같은 정서적 고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디지털 유산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 인지 물어보는 건 좋지만 '그렇다' 나 ‘아니다' 같은 단순한 답변을 기대하지 말라는 저자의 말에 꾸역꾸역 읽어나갈 수 있었다.


책을 통해 페이스북에 기념 계정 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다는 것과 구글 이메일에 휴면계정 관리인 기능을 도입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나의 경우 둘 다 자주 사용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 내용은 이러하다. 구글의 휴면계정 관리인은 죽은 사람이 미리 허락을 해 놓았을 경우 그의 이메일도 볼 수 있지만 페이스북의 기념 계정 관리자는 사적인 메시지에는 접근하지 못한단다. 생전에 고인이 설정해 둔 프라이버시 세팅에 따라 접근 범위가 결정되는 식이다


어제 신박사님을 통해 불후의 명곡에 가수 김진호 씨가 가족사진을 부른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노랫말도 전달하는 가수의 목소리도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어 눈물을 흘리게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전해졌다. 영상을 본 많은 분들의 댓글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박사님의 말씀처럼 디지털 시대가 아니라면 연령과 장소를 초월한 추모, 애도의 장이 가능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2018년 시행된 유럽연합의 개인 정보보호 규정법대상에 개인의 인종 정보와 정치적 견해, 종교 및 철학적 신념, 노조 가입 여부, 유전 및 생체 정보, 건강 정보, 성생활 및 성 취향과 관련된 정보들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정보보호법과 마찬가지로 자연인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방식에 대한 지침은 점점 더 분명하게 규정되고 있지만 죽은 사람의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개인의 결정 능력과 연관된 개념인 자율성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개인은 그런 기록에 대한 결정권을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아무런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면 가족들도 그 기록에 대한 접근을 제한받아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 p214>


프라이버시 개념에는 죽은 개인과 온라인상으로 의사소통을 나눈 모든 사람들의 정보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페이스 북 마크 저커버그는 연구결과로 블로그 사용자(페이스북 같은 플랫폼도 포함됨)의 47퍼센트가 마음에 안 드는 포스트나 댓글을 삭제하는 '블로그 세척'을 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롭고 한없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전 프라이버시와 사후 프라이버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위험과 혜택, 이해득실을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아 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 p233>


영원한 것은 없다. 나의 디지털 먼지가 오래도록 유지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해도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기술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노후화된다. 예전에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호로비츠같이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부족한 재능 탓에 변두리 피아노 학원을 하는 여주인공. 절대음감의 천재소년을 알아보고 제자를 도와준다는 줄거리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라는 피아니스트가 궁금해서 유튜브에 검색하고 그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곡에 대한 해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피아니스트. 과거 거장의 실제 공연 영상을 통해 현장에 있는 듯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가 남긴 디지털 흔적이 나에게 잠시나마 기쁨과 여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책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는 우리가 남기는 디지털의 흔적들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주었다. 특히 디지털 추모, 애도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알게 되었고 디지털 원주민을 가장한 디지털 이민자로서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꾸역꾸역 읽고난 후 나는 삶에서 가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을 기록해서 내가 느끼는 바를 주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당당한 큐레이터가 되어야겠다는 긍정의 모드로 바뀌었다.


가능한 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라. 많이 사랑하라. 살아가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라. 세상의 선을 위해 힘쓰라. 이런 삶에 헌신하다 보면, 그 삶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 유산의 형식과 지속기간은 당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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