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베르크 변주곡
주말에 시간 되세요? 음악회 표가 생겼는데 함께 가실래요?" 회사 동료의 피아노 연주회 초대문자다. 남편, 아이들한테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토요일 오전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이른 저녁을 챙겨주고 여유롭게 전철을 탔다. 휴, 한숨 돌린 후 그제서야 동료가 보내준 연주회 내용을 살펴보았다. 연주자도 바흐의 곡도 생소했다.
예술의 전당. 음악회나 다른 공연, 전시를 보지 않아도 그 공간이 좋다. 우면산의 공기도, 공연 관련 리플릿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여름이면 형형색색의 분수쇼에 신이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운치있는 가을 커피 한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게 얼마 만이야!'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리니 날이 벌써 어둑해졌다. 입구에서부터 공연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차가운 겨울바람이 시원하다.
공연장 건물로 들어가니 아직 공연시작 두 시간 전이라 인적이 없다. 연주회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혼자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동료를 기다렸다. "일찍 오셨어요? 간단히 요기해요 우리" 식사후 표를 교환하고는 연주홀 안으로 들어갔다.
"지용-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
처음 들어보는 곡들이었고 낯선 젊은 연주자였다. 막연히 바흐의 곡은 피아노 연주자들의 테크닉을 기르기 위한 연습곡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변주곡의 향연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연주 시작 전 완주할 때까지 박수를 자제해 달라는 안내 멘트에 오히려 끝날 때까지 집중하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I4TukJeRM4
찾아보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긴 길이를 갖는 작품으로 반복하지 않고 전곡 연주에 걸리는 시간은 약 50분 정도란다.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단일 작품으로는 긴 연주시간과 큰 형식을 가지고 있단다. 바흐가 창작한 마지막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으로 자신의 모든 작곡 기교를 이곳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바흐라고 하면 내가 아는 거라고는 바흐 평균율이라는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한 곡이 있다는 정도다. 30개의 변주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떤 한 변주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하나의 작품으로 논리적으로 연결된단다.
이 곡의 창작 과정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독일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 링크 백작은 바흐가 작센 공장의 궁정 음악가가 되도록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1741년 경에 카이저 링크 백작은 업무를 보기 위해 라이프치히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백작은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단다. 백작은 유명한 음악 애호가였고 고트리프 골드 베르크라는 클라비어(건반이 달린 현악기. 쳄발로, 클라비코드, 피아노 등) 연주자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매일 밤 골드 베르크에게 음악을 연주시켜 잠을 자보려고 해 보았단다.
그러나 불면증은 좀처럼 낫질 않았다. 카이저 링크 백작은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면제 대용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을 바흐에게 의뢰했고 바흐는 자신이 궁정음악가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백작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작곡해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카이저 링크 백작은 이 작품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보였고 "나의 변주곡"이라고 부르며 골드 베르크에게 자주 연주를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거금의 작곡료를 지불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작품 제목의 유래는 골드 베르크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1742년 바흐가 이 작품을 최초로 출판했을 때에는 [클라비어 연습곡]의 4부로, 곡의 제목은 [2단의 손 건반을 가진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변주]라고 출판했다. 이후 카이저 링크 백작이 기용했던 젊은 연주자 고트리프 골드 베르크의 이름에서 제목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한다. 완벽한 형식과 아름다운 선율미 모두를 지니고 있어서 서양 음악사의 그 어떤 변주곡과도 구별되는 경이로운 독창성과 개성을 가진 곡이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음악적 지시가 명확하지 않아 뛰어난 테크닉은 물론 연주자의 뛰어난 음악적 해석 능력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I4TukJeRM4
그날 연주회가 끝나고 나오면서 초대해 준 동료에게 선물하려고 지용의 골드 베르크 CD를 샀다. 집까지 함께 오는 차안에서 동료와 연주회 얘기를 나눴다. 둘다 연주회의 여운이 강하게 남은 듯했다. CD 포장을 풀고 안에 들어있는 책자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수 세기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바흐는 우리 모두를 합한 것보다도 더 위대한 음악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지금 20대의 삶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제가, 음표 너머의 이면을 해석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공감입니다. 거기에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곤 하지만 저는 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나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깨워 마음을 여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미 300여 년 전 이 땅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우리의 영혼을 연결해 주는 위대한 음악을 남겨놓은 사람에게까지도.
<지용의 골드 베르크 CD 중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지용의 글을 읽으면서 음악을 사랑하는 그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음악과 음악이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력. 그것이 클래식 음악이 계속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그 뒤로 나는 그 옛날의 카이저 링크 백작처럼 불면증 해소를 위해 이 음악을 듣기보다 집중하고 싶을 때 이 CD를 꺼낸다.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할 때 혹은 공부등 집중이 필요할 때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는 젊은 연주가 지용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추천한다.
덧. 2016년 지용은 그래미 시상식 중 처음으로 선보인 안드로이드 광고에 출연했는데 거기서 그는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속사포 같은 3악장을 두 대의 피아노로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그중 한 피아노는 건반 전체가 같은 음으로 조율한(모노 튠) 피아노였다고 한다. "서로 함께, 그러나 똑같이 않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이 광고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 강한 클래식 업계에서 확고부동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26살의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지용의 행보에 기대가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_1Wv6CAr4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