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할 때 아름다운 클래식

자클린의 눈물

by 꽁스땅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친구 소개로 음악을 좋아하는 동갑내기를 만난 적이 있다. 첫 만남일 때는 딱히 음악에 대한 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했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나에게는 취업 준비를 하는 그가 그냥 친구처럼 편안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대뜸 나에게

"첼로 음악 좋아해? 자클린 뒤프레라고 알아?"

"응? 첼로는 좀 슬프지 비 오는 날이나 기분이 꿀꿀할 때 가끔 들으면 애잔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러더라. 근데 자클린이란 사람 첼리스트야?"

하필 잘 모르는 연주자를 물으니 두리뭉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개의치 않고 자클린 뒤프레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뭐야 아는 척하긴'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기분이 나빠지려다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진심이 느껴져서 살짝 멋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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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

피아니스트이자 저명한 어머니가 그녀의 재능을 발견했고 5세 생일 직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소리를 듣고 첼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5세에 런던 첼로 스쿨을 거쳐 길드홀 음악학교에서 저명한 첼리스트 윌리엄 플리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천재성을 보인 그녀는 스위스에서 파블로 카잘스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 파리에서 토르틀리에의 가르침, 러시아에서 로스트로포비치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초연된 지 4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자클린 뒤프레라는 연주자에 의해 비로소 생명력을 얻고 대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단다. 피아니스트들과의 듀오작품 녹음을 하며 특유의 묵직한 음색 와 강력한 표현력을 발산하기 시작했고 예후디 메뉴힌을 비롯한 이자크 펄만, 주빈 메타, 핀커스 주커만 등 젊은 연주가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활동을 하며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데뷔 무대를 갖은 뒤 뒤프레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사랑에 빠져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린다. 바로크와 고전, 낭만, 현대에 이르는 많은 실내악과 협주곡 레퍼토리를 섭렵한 뒤프레는 남편과 함께 다른 거장들과 리코딩 스튜디오 및 연주회장을 누볐단다.

1971년 7월 뒤프레는 조금씩 아픈 증세를 호소하며 연주에 집중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리허설에서 피로감에 쓰러지거나 활을 놓치는 일이 많아졌다. 시력조차 떨어졌다. 완벽주의자였던 바렌보임은 정신력 문제를 거론하며 그녀를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결국 그녀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명을 진단받고 투병을 해야 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훨씬 더 컸던 그녀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와 리코딩을 강행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근육과 신경이 피로해짐에 따라 그녀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었다. 1973년 2월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끝으로 영국에서의 공식적인 연주회를 마감했다. 며칠 뒤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과 주커만의 연주로 브람스의 [2중 협주곡]을 연주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뒤프레는 활을 잡는 것과 운지를 하는 것 모두 힘들어했다고 전해진단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그녀의 데뷔와 마지막 연주회를 함께 한 작품으로 일종의 뒤프레에게 있어 페르소나와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미국 연주회 후 은퇴한 뒤 후학 양성을 하며 첼로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했단다. 척수신경에 손상을 입으면서 몸을 가누지 못했고 안면 신경 손상으로 얼굴을 움직이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자신이 녹음한 곡을 들으며 위안을 했고 결국 1987년 10월 런던에서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단다.


https://www.youtube.com/watch?v=mJa4C0nvPqs


그는 나에게 자클린의 첼로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어느새 우리는 혜화동인지, 종로인지 정확히 기억에 나진 않지만 대형 레코드 가게 앞에 도착해 있었다. 클래식 코너로 가서 음반을 찾더니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나와 마주 서서는 감상해 보라며 헤드셋을 건넸다. 묵직한 첼로 소리가 귓가에 가득했다. 그는 내 반응을 살피는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원래 첼로 소리가 그래서 그런가. 마음이 아플 정도로 슬프지만 아름답네."

"그지? 마음에 들어?"

"어, 첼로 선율이 좋다"

그날 그는 자클린의 눈물 CD를 사주었다. 그 뒤로 한두 번 만났고 다른 음악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각자의 사회생활이 바쁘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다. 동갑내기 중에 그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는 친구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CD를 들을 때면 진지모드로 설명해 주던 그가 떠오르곤 한다.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곡에 대해 찾아보니 작곡자 오펜바흐의 작품이었다. 전해오는 말로는 첼리스트 토마스 베르너 Werner Thomas 가 우연한 기회에 오펜바흐의 미발표 악보를 찾아냈다고 한다. 42세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유명 첼리스트이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자클린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에게 헌정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1ZMKhylTzJ4


작곡가 오펜바흐는 오페라 작곡자로 유명하지만 첼로 연주자였다고 한다. 그의 인생 중에서 슬픔이 강하게 찾아왔던 어느 순간이 있었고 그때의 감정과 회환을 실어서 이 음악을 만들었단다. 그 음악이 20세기에 들어와 유명해진 것이다.

자클린 뒤프레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다 보니 비운의 천재라기보다는 음악을 좋아한 순수함이 느껴졌다. 연주할 때 그녀의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연주자와 작품. 슬퍼서 위로가 필요할 때 저 낮은음부터 올라오는 아름다운 첼로 연주를 들으며 그녀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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