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역사를 되돌아보다

맥락을 살피자

by 꽁스땅스
앞길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기 위해서 지나 온 길을 살펴봐야 한다.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 p19


책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의 저자 타밈 안사리는 역사 초기부터 우리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왔는지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풀어간다. 초반에는 세계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읽는 속도가 더디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고 역사적 시기, 사람, 문화 등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그중에서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에 은에 얽힌 유럽, 중국 그리고 미국의 탄생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모든 세계사적 서사는 획기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시간을 구성한다. 역사를 증가일로의 상호 연계성에 관한 드라마로 본다면 콜럼버스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모든 것을 바꿔놓은 -사건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때부터 동반구와 서반구가 연결되었고 지구의 모든 곳이 상호 연계적인 단일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 p345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수많은 배가 떼를 지어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다. 서쪽으로 향한 사람들은 식민지를 건설했고 광산을 개발했고 대규모 농장을 조성했다. 동쪽으로 향한 사람들은 아시아에 요새와 교역 거점을 구축했고 진귀한 아시아산 물건을 사들여 모국에서 굉장히 비싼 값으로 되팔았다. 그 두 가지 활동 무대는 귀금속에 의해 연결되었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과 은을 대량으로 채굴했고 은은 최고의 통화 즉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화폐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침투하는 유럽인의 대열은 전사들과 선교사들이 이끌었고 특정 작물을 산업적 규모로 생산해 한몫 단단히 잡을 기회를 포착한 사업가들이 뒤이었다. 금, 은, 면화 그리고 세 가지 마약인 담배, 설탕, 럼주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는 과정을 촉진하는 연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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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 유입

은은 상품과 화폐의 경계선에 있을 만큼 풍부한 귀금속이다. 스페인 정부는 페루와 멕시코에서 은을 채굴해 배편으로 본국까지 운반했다-이래저래 확보한 금도 함께 운반했다. 스페인은 마치 자유 화폐를 마구 뱉어내는 현금 자동입출기를 발견한 태평스러운 바보 같았다.

스페인은 이제 유럽의 우두머리가 될 법한 고지에 올랐다. 스페인 왕실은 전함 선단을 건조했고 최신 무기를 갖춘 군대를 편성했다. 스페인 상류층은 멋진 성을 지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갖가지 사치품으로 성을 채웠다. 그들은 스페인의 생산력 강화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그냥 밖에 나가 사 올 수 있는데 굳이 물건을 만들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직물과 가구, 양모와 선박 같은 각종 상품을 대량으로 사들였고 그 상품들은 대부분 영국, 프랑스, 그리고 저지대 국가들(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서 생산된 것이다. 그 뒤 은은 믿음을 저버렸다. 은은 상품이었다. 그러므로 스페인 전역에 흘러넘친 은은 수요와 공급의 철칙을 작동시켰다. 은의 가치가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그러난 은은 법정 화폐이기도 했다. 은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이제 상품을 살 때 더 많은 화폐가 필요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물가가 오르고 또 올랐다. 당시의 사회제도에서는 은이 공평하게 분배될 수 없었다. 오히려 부자들이 더 부유해졌다. 부자들의 수는 일정한데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신발과 의자, 안장의 개수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출은 변함없고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상대적 하류층은 더 가난해졌다. 물가는 오르고 수입이 늘어나지 않자 사업에 실패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그러는 동안에도 물가는 계속 올랐다.

결론적으로 은이 무한히 공급되었지만 스페인은 이웃나라들보다 더 부유해지거나 더 강력해지지 못했다. 은이 생산력을 증강하는데 투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는 은이 생산력 증강에 투자되었다. 생산되어 교환되는 물품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만 인플레이션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은의 유입으로 생산과 상거래가 더 활발하게 촉진된 사회에서는 은이 흡수되었고 해당 사회는 더 튼튼해졌다. 아메리카 대륙을 앞장서 약탈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마치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일시적으로 부유해졌지만 나중에는 서유럽의 양대 빈국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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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차

청 왕조는 세금은 은으로 거두면서 조정의 비용은 지폐로 치르기 시작했다. 세금으로 낼 은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물론 좋은 해결책이 있었다. 바다를 건너온 서양 상인들에게 물건을 더 많이 팔면 되었다. 서양 상인들이 가장 눈독을 들인 제품은 차였다. 영국인들은 그 음료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했다. 1720년 영국인들은 약 90톤의 중국산 차를 수입했다. 1790년에는 약 4,050톤까지 치솟았다. 유럽 각국의 정부는 중국과의 그런 교역을 몹시 불안하게 여겼다. 유럽인들이 차를 수입하려고 지출하는 은이 중국을 영원히 살찌울 것으로 보였다.

영국 정부는 수입 관세를 통해 막대한 세입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의 수입을 금지할 수 없었다. 당시 영국의 전체 수입품 가운데 10%가 차였다. 차 수입이 중단되면 정부 세입이 급락할 것이다. 그 무렵 영국은 식민지를 두고 세계 도처에서 벌인 전쟁에서 프랑스를 무찌르느라 엄청난 자금을 지출했다. 돈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영국정부는 차 관세를 100%로 올렸고 그 결과 차의 판매가 위축되고 차의 수입이 감소했지만 정부의 세입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는 따로 있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운명은 차 판매에 달려있었다. 회사 관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정부는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네덜란드의 밀수업자들-영국 왕에게 세금을 내지 않았다-이 들여오는 값싼 차 대신에 동인도 회사의 비싼 차를 사도록 강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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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조정의 정책이 미국 탄생에 기여

널리 알려졌다시피 차법[Tea Act]은 반체제 성향의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을 자극했고 어느 날 밤 익명의 급진 분자들이 항구에 정박한 동인도회사 소속의 선박에 몰래 올라타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100만 달러쯤 되는 양의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후 영국정부가 징벌적 성격의 법률로 응수하자 저항의 물결이 더 거세졌고 마침내 미국 혁명이 발발했다. 결과적으로 청 조정의 정책은 미국의 탄생에 기여했다. 청 조정의 정책과 미국의 탄생은 사슬로 기다랗게 연결된 인과관계의 양쪽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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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았다. 오늘날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거의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서 살 수 있다. 같은 그림을 보거나 같은 음악을 듣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진실을 경험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림의 형태나 색채와 음악소리가 서로 다른 기억과 관념과 신념의 별자리를 즉 서로 다른 의미망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맥락을 살펴보지 않은 채 표면적 유사성에 너무 빨리 반응하면 양쪽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지금 이 세상은 결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공유하는 세상이 아니지만 우리가 만들어가지 않으면 그런 세상을 찾아오지 않을 거라 한다.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관계를 맺으려면 맥락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타자의 시각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는 것은 힘든 도전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세계의 그림을 그리려면 많은 지적 관심과 힘겨운 탐구과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결국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역사초보라면 읽을 만한 깊으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며 곳곳에 시대적인 사건들을 묘사한 단어,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그리 길지 않는 책의 끝에서 보니 계속해서 머릿속에 '맥락'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는다. 역사를 이해하는데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세상을 알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면 맥락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우리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지도로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모든 논의가 타당성을 띨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모든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관계를 맺으려면 맥락을 중시해야 한다.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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