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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9. 2016

너랑 나

너랑 마저하면 될 것 같은데

여자  맥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그러는 거야. 키스해도 되냐고?

남자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여자  뭐라고 하긴. 그런 건 대환영이니까 좋다고 답을 했지.

남자  그랬더니? 바로 했어?

여자  아니, 가만히 있더라. 그래서 내가 졸린 것 같은데 가서 자라고 했어.

남자  밤에, 남자 집에서, 젊은 남녀가, 단 둘이 술을 마시는데 왜 그래?

여자  육하원칙으로 그렇게 분석하지 말아줄래?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남자  그래서 그 다음은?

여자  안 그래도 자기 잘 시간이 지났대. 그래서 자야겠다는 거야.

남자  뭐야? 너는 어떡하고?

여자  나는 그래서 맥주를 한 캔 더 땄지. 너도 알거야. 생맥주, 병맥주 그리고 캔맥주. 맛은 제일 떨어지는 캔 맥주를 마시고 있고, 나는 술에 취하지도 않고, 남잔 자야겠다고 하고. 내가 그냥 하는 거라고 답해서 자존심 상해서 잔다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남자  야, 거기에서 자존심이 왜 상하냐. 그 지점에서 자존심 상할 거였으면 물어보지도 않았어.

여자  왜 네가 열을 내고 그래. 그 다음이 있으니까 들어봐.

남자  다음? 거기에서 끝난 거 아냐? 남잔 자고, 넌 새벽에 쓸쓸하게 할증 택시 타고 집에 오고?

여자  아니야. 그래서 내가 말했어. 한 캔만 더 마시고 자요.

남자  진도 빼고 싶던 거 아니었어? 왜 전개가 그래?

여자  나도 몰라. 내가 그렇게 말해버렸어. 나도 왜 그랬는지 몰라. 그때의 난 내가 아니라니까?

남자  그래서. 한 캔 더 마셨어?

여자  응,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 마시고 있던 맥주가 라오스에서 마셨던 비어라오였어. 얼음 두세 개 넣어서 마셨던 그 비어라오. 기억나?

남자  기억나지. 처음에는 싱겁게 왜 얼음 넣어서 마시냐고 하다가 돌아오던 날에는 너 아침부터 비어라오로 반주했잖아.

여자  응, 그 비어라오. 이마트에서 판대.

남자  그건 또 언제 알아봤어?

여자  검색해봤지. 아무튼 우리는 마지막 캔을 땄어. 캔맥주가 맛은 제일 없는데, 난 그 캔 따는 소리가 너무 좋아.

남자  논점이 흐려지는 건 내 기분 탓인 거야?

여자  음, 아무튼 둘이 마지막 캔을 땄어.

남자  뭐야, 마지막 캔이었던 거야?

여자  그러게. 아무튼 나는 그 원샷을 했어. 그 남자는 내가 빈 캔을 내려놓으니까 눈을 동그라게 뜨고 날 보더라.

남자  그 남자 무서웠겠다. 자기 잡아먹히는 줄 알았겠는데?

여자  응, 그래서 그 다음은 내가 그 남자 손에 들린 맥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아주 바짝 다가서서 키스를 했어.

남자  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그런 장면인데?

여자  좀 흔하지? 클리셰라고 해둘까?

남자  근데 보통 남녀가 반대긴 하니까. 그래서 그 다음엔?

여자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남자  솔직히 말해도 돼?

여자  물론.

남자  입에 키스하다가 목덜미에 하다가 남자 손을 잡아 당겨서 네-

여자  잠깐 거기까지. 너 지금 내 패턴 비슷하다고 타박하는 거야?

남자  아닌데? 그 남자랑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지 맞춰보라며?

여자  맞아. 근데 그렇게 디테일 살려서 말하지 말아줘. 부끄러우니까.

남자  지금까지 말한 건 안 부끄럽고?

여자  음, 부끄러우니까 이제 말 안 할래.

남자  뭐야, 말해봐. 그 다음은 뭔데?

여자  뭐긴 뭐야. 네가 아침부터 전화하는 바람에 깼지. 그런 꿈 처음 꿔보는데 너 때문에 잠이 다 깨버렸어.

남자  지금 남자친구보다 꿈 속의 그 남자가 더 중요하다는 거지, 너?

여자  그런 건 아니고.

남자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여자  그럼 꿈속에서 못한 거 너랑 마저 하면 될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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