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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9. 2016

네 생각을 하다가 그냥 웃었다

  문득 너를 생각할 때가 있다. 너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골목길 모퉁이의 조도 낮은 가로등 아래에서 혹은 침대 시트에 떨어진 너의 긴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올리면서 나는 너를 생각하곤 했다.     

  너는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때는 너의 서툶이 염려되었고 그 서툶에서 오는 너의 호들갑스러움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우리의 첫키스는 아주 멋이 없었고 어쩌면 너와 헤어진 후에도 생각이 날만큼 얼굴이 화끈거리는 순간이었다.

  립스틱을 바꿨는지 아니면 겨울이라 얼굴이 더 희게 보여 입술이 유난히 눈에 띄는 건지 그날은 너를 만난 순간부터 줄곧 키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의 집 골목길 모퉁이에서 나는 너를 세웠다. 조도가 낮은 가로등, 날리는 눈발, 저 먼 곳의 차 소리- 너는 눈을 감았고, 나는 너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맞췄다. 내가 너의 턱 끝을 살짝 쥐고 아래로 내리자 너는 나를 밀쳐냈다. 순식간에 너의 눈에 고이던 눈물을 보며 나는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변명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뭐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하던 게 키스였다고 답하면 너의 눈에 고인 눈물이 툭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 미안해. 놀랐지?     

  너를 안아주었다. 너는 내 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계절이 오기도 전에 너는 혀를 아주 뾰족하게 세워 입을 맞추고 내 몸 구석구석을 핥았다. 너의 혀끝이 닿는 곳마다 나는 내가 34년간 가져온 내 신체의 미지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감각들이, 명명되지 않은 감정들이 혼란스러울 만큼 뒤엉켜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너에게 이제와 말하자면 나는 너의 그 무엇도 사랑한다. 너의 기억 속 온도를 가늠해본다. 너와 나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나누며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기억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

  가만히 번져오는 너와의 날들을 더듬는다. 그리고 나는 한참을 그날들에서 서성인다. 너를 다시 사랑한다거나 우리의 재회를 꿈꾼다거나- 하지 않지만 나는 아주 자주 너를 생각하다 그냥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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