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Sep 29. 2016

이기적인 연애

  네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던 날들이 모두 지나가고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너와의 시간을 돌아보면, 다시 돌이키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감정도 이제는 사라지고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슬픔도 없다. 다만 너의 작은 몸을 내 품에 끌어안고 있던 새벽, 우리의 몸 위로 천천히 드리워지던 하루의 시작과 그 분위기를 꼭 한 번 다시 꺼내보고 싶을 만큼 그립다는 말로 너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전한다.

  윤,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언제나 혼자였다. 서로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서로에 대해 배려를 하며 그렇게 나는 너를, 너를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감정이 커져가는 내면을 마주할 때마다 당황했던 것 같다. 이유를 찾을 수 없었겠지. 그래.

  감정은 선명한데, 얼굴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결국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모르고 있던 것처럼 서로를 안고 엉엉 울며 견딜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너의 젖은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나는 일부러 차갑게 말했지.

  - 우리는 끝까지 사랑할 수 없을 거야.

  - 알고 있어.     

  끝을 알고 있는 사랑이란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나는 나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감정을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너무 거대해서 네가 달아나버릴 것만 같았다. 그 감정이 조금씩 낡아가는 것을 느꼈을 때야 겨우, 네가 그 감정이 먼지처럼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겨우- 나는 그것들을 잡는 것은 이미 늦어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인 줄 알았건만, 서로가 있는 길인 줄 알고 전혀 다른 숲 속으로 걸어들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지나온 길 조차 사라진 숲 가운데서 가만히 눈을 감고 너를 생각한다. 저 멀리 낮은 물소리, 햇살이 나무 위로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냄새,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불어오는 잔상 같은 바람.

  생각해보면 사랑은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기적이지 않아서 그냥, 이렇게 헤어졌다.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아주 오래된 기억이 되어버리겠지. 하지만 다시,라던가 한 번 더,라는 게 허락된다면 아주 이기적으로 너를 안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사랑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소심한 스토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