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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13. 2017

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슬프지만 한 가지 믿고 싶은 건

  그때 그 사람은 어둠을 찾아간 것 같아요. 마음의 소란스러움까지 잠잠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무게감말이에요. 그래서 그곳으로 갔나봐요. 기온이 아무리 높아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의 기온을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여름은 아주 짧고, 겨울은 아주 긴. 그 사람과 닮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기분이 좋은 시간은 아주 짧고, 우울한 시간은 아주 긴 사람이었거든요. 


  유난히 지친 여름이 지났을 때, 그 사람에게서 엽서를 받았어요. 읽을 수 없는 언어였죠. 가만히 들여다보다 코끝에 대보았어요. 잉크냄새, 종이냄새- 어쩌면 그 사람의 스킨냄새. 답장을 보내지 못한 건 읽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주소가 적혀있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불쑥 그 사람에게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메일도, 휴대전화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떠난 지 육개 월만에 내게 보내온 엽서는 읽을 수도 없는데- 우리 아직 연애하고 있는 게 맞느냐고. 실은 그가 떠난 건, 한국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어요.


  슬프지만 한 가지 믿고 싶은 건, 그 엽서가 마지막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에요. 지금 나를 사랑해달라거나 영원히 나를 사랑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만은 하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이제 세 시간쯤 후면 도착하겠네요, 이 비행기.

  참, 그런데 당신은 왜 노르웨이로 떠나는지 물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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