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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9. 2016

바게트를 먹다가 너는 말했지

  사랑이 도착한 후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무엇이든 고작 반 뼘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반 뼘은 모든 것을 어긋나게 만들어버린다. 긴 바게트의 양 끝의 딱딱한 부분처럼.
     
  내가 화를 낸 이유,
  우리가 다투게 된 계기,
  그리고
  결국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그 밤 모두 바게트의 끝처럼 딱딱했다. 단단했지만 쉽게 부서졌고 우리는 결국 우리를 감싸고 있던 것이 우리를 망가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바게트를 좋아하는 그녀는 평소에도 카페에 가는 것보다 파리바게트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트레이 밖으로 삐죽 튀어나올 정도로 긴 바게트를 사서 잘라달라고 하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로 들고와 손으로 조금씩 떼어먹었다. 그리고 바게트 끝부분을 오도독 오도독 먹었다. 김밥의 끝부분이나 식빵의 껍질 등 끝부분을 좋아했다. 더 오래 입안에 넣고 있어야하는 것들, 침이 고이고 턱이 위 아래로 오래 저작운동을 해야하는 부분들. 그녀는 내가 과거에 만났던 여자들과 달리 오럴섹스를 좋아했다. 바게트의 끝부분을 입에 물 듯 페니스를 작은 두 손으로 애무하다가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오로지 혀를 이용해서 깊이 빨아들였다. 입안에 빨판이라도 달린 듯 그녀의 빨간 입술 속으로 들어간 내 페니스는 더 어둡고 축축한 곳으로 빨려들어갔다. 바게트의 끝부분을 오물오물 씹어먹던 그녀의 어금니들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해서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지만, 페니스만큼은 그녀의 입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 입 안에 해도 돼.
     
  그녀가 입에서 페니스를 살짝 빼며 말했다. 나중에도 그녀처럼 섹스를 나누던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도 파리바게트에서 바게트를 샀다. 같이 마실 레몬에이드를 주문하는 사이, 직원은 무심코 바게트를 잘라서 내왔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남은 바게트가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냥 먹자고 말했다. 그녀는 바게트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얇게 썰린 바게트를 하나 내밀었지만 레몬에이드의 얼음만 뒤적거릴 뿐이었다.
     
  - 그냥 먹자. 바게트에 뭘 그렇게 집착해. 어차피 그냥 바게트잖아.
  - 자기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 무슨 바게트 하나에 이해하고 못하고의 얘기가 나와?
     
  그녀의 표정은 냉담했다. 
  
  - 바게트 때문이 아니야.
  - 그러면? 갑자기 표정은 왜 그렇게 굳었는데?
  - 헤어지자.
  - 야, 이연희! 갑자기 무슨 말이야?
  - 헤어지자는 말 하려고 만나자고 한거야. 
  - 왜? 바게트 때문에?
  - 아니, 네 페니스 빠는 것도 지겹고 네가 딱딱한 바게트 끝부분 나한테 주는 것도 싫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날 그렇게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오럴섹스 때문에 혹은 바게트 때문에라고 말 할 수 없었다. 그냥 연애가 끝났다고 말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반년쯤 지났을까, 집 근처에 바게트만을 구워서 파는 빵집이 생겨 바게트를 하나 사러 들어갔다. 꼴도보기 싫었던 바게트를 먹고 싶어진 건 아니었지만 바게트만 죽- 늘어서있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 썰어드릴까요, 그냥 드릴까요?
     
  그냥 달라는 내 대답에 그는 긴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 바게트는요, 손가락으로 꾹 눌렀을 때 겉 부분에 바사삭 금이 가면서 손가락이 들어가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아요. 
     
  집에 돌아와 바게트를 손끝으로 꾹 눌러보았다. 단단한 표면에 실금이 가며 부서져들어갔다. 손을 떼자 다시 도톰하게 부풀어올랐다. 손으로 끝부분을 반 뼘 정도 잘라 먹었다. 속이 아주 촉촉한 바게트였지만 나는 목이 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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