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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9. 2016

3인칭 관찰자시점의 사랑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하는 거죠. 안경을 더듬어 찾기도 전에 눈에 힘을 주고 휴대폰을 확인해요. 밤새 온 메시지나 이메일, 오늘의 날씨 따위를 확인하는 게 아니에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블로그, 텀블러, 링크드 인- 등을 확인해요. 제게 보낸 다이렉트 메시지나 제 피드에 남긴 글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사람을 훔쳐봐요.
  
  밤새 그녀는
  유니세프와 국경없는의사회의 트윗을 몇 개 리트윗했고,
  딩고 트래블에서 올린 캐리어 관리법 동영상에 좋아요를 눌렀죠. 친구를 태깅하기도 했더군요. 트렁크가 망가졌다며, 라고 써놨어요.
  블로그에는 예약으로 업로드 한 게 확실해 보이는 수국으로 꽃다발 만들기 포스트가 새로 올라와있었어요.
  인스타그램에는 새벽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더군요. 태그에는 혼자, 편의점, 캔맥주, 지친다 등이 붙어있었는데, 밤에 혼자 술을 마신다거나 피곤하다는 의미의 게시물이 아니었죠, 캔맥주를 쥐고 있는 손에는 새로 한 게 분명해보이는 네일컬러가 칠해져있었거든요.
  링크드인에는 지난주에 이직한 회사를 업데이트 했더군요.
     
  참 이상하죠.
  카카오톡은 차단하고, 전화도 수신거부로 돌려놓았으면서 왜 자신의 일상을 모조리 그렇게 공개하는 걸까요. 심지어 전체공개로요.
  그래서 자꾸 훔쳐봐요. 요즘에는 뭐에 관심이 있는지, 사진 동호회는 꾸준히 나가고 있는지,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 자격증은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주말에 친구를 만나서 무엇을 먹었는지, 어제 회식하면서 과음했는데 오늘 야근을 하는 건 아닌지,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없는지, 나를 벌써 잊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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