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오랜 헤어스타일과 굴삭기

우리의 외면 관찰기

by 이주인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부터가 아닐까 싶다. 당시만 해도 ‘단정하게’라는 교칙에 맞게 학생의 머리 디폴트 값은 소위 말하는 스포츠머리였다.


여기서 학생들의 머리를 검사하는 선생님들의 눈이 최대한 미덕을 베풀어 주어도 결국 그 근처 어디쯤이었다. 뭐 이런 상황에서 사춘기 고등학생의 최대 한도의 멋 부림은 왁스나 스프레이를 이용해 짧은 머리에 힘을 줘 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전까지 머리를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저 방학을 맞아 일탈 혹은 귀찮음으로 인한 머리 기르기가 관심 없는 나에게 하나의 스타일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드라이어나 제품을 이용해 머리를 만지는 것에는 전혀 무지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올 무렵, 머리를 감은 후 화장실에서 왁스를 한껏 떠서 멋은 부리되 너무 튀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만진다. 이쪽으로 만져보고 잘 안되면 저쪽으로, 손질이 잘 안 되기 시작하면 왁스를 조금 더 추가한다.


갈 곳을 모르는 손가락과 머리칼이 어느 시점에서 내 눈에는 이상적인 모양을 보여준다. 거울을 보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다다를 무렵 길거리 매장 유리에 비친 내 머리는 언뜻 보면 한 사흘은 감지 않은 떡진 머리처럼 보였다. 외모에 관심이 많던 친구가 추천해 준 제품을 써봐도 별 다른 효과는 없었다.

Artboard 1-100.jpg 멋진 모습을 기대하며 구매하던 왁스는 언제나 반도 못 쓰고 버려지기 십상이었다


돌이켜보면 스타일링에만 무지했을 뿐 머리 스타일의 형태에 대해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꽤나 관심이 있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드문드문 나는 기억과 그 시절 찍은 사진 때문인데, 그 시절이라는 것이 무려 6살 때다. 사진을 보면 어린 시절 내 머리는 항상 꽤 긴 편이었다.


언젠가 무슨 이유에서 인가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깎았는데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게 사진에도 여실히 드러나있다. 물론 머리스타일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인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편함인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내 머리는 그렇게 짧지는 않은 편이다. 커트를 할 때도 어느 미용실을 가든 짧은 게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 손질에 시간을 꽤 들이기 전 내 머리 스타일은 항상 일관적이었다.


모양새는 단정하게, 길이는 너무 짧지 않게,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가끔 과하지 않은 펌으로. 언제나 소위 말하는 ‘댄디 컷’이었는데 이마저도 자주 미용실을 가지 않은 귀찮음과 왠지 모를 ‘쉽지 않음’에 커트를 한 뒤 몇 주 정도 그 느낌이 유지됐을 뿐이었다.


한창 외모에 신경 썼던 20대 때도 관심에 비해 헤어에 들이는 노력은 적었다. 그 당시에 나는 뭔가 사람들에게 별로 기억될 만한 인상이나 특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는 옷에 꽤나 신경을 썼는데, 정작 인상에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머리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무튼, 삽심대가 한창인 나이가 와서는 머리 손질에 꽤 시간을 들이고 스타일 변화도 꽤 주고 있다. 한때는 이마를 드러내는 것조차 큰 도전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마를 드러내는 것이 보통의 상황이며 장발도 한번 해볼만큼 헤어스타일에 대한 폭이 넓어졌다. 또한 그 흔한 빗조차 없다가 지금은 헤어 스타일링 제품만 몇 가지가 된다. 물론, 지금도 매일 손질은 하지 않는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라면 적당히 드라이만 하는 정도다.

헤어_250221-03.jpg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나이가 들어서야 새로운 도전을 한다


반대로 언제나 ‘헤어스타일’ 만은 언제나 신경 쓰고 나오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 친해져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사실 같은 중학교를 다녔으며 친구는 몰랐지만 난 이 친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에는 ‘두발단속’이 있었다. 외모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그저 자유 침해에 대한 반발로 머리를 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학생 주임 선생님은 보통 뒷머리나 ‘구레나룻’이라고 하는 옆머리를 보통 집중 공략했다. 그래서 이 기준을 교묘히 피해 의도한 건지 모를 본인들의 개성을 어필하는 친구들이 왕왕 있었다. 3학년 당시 어느 날 복도를 지나다가 한 친구를 보게 되었다. 이 친구는 스포츠머리에 앞머리만 눈썹을 덮을 정도로 길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에 앞서 왠지 모르게 굴삭기가 연상되었다.

Artboard 2-100.jpg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 후 앞자리에 앉은 내 친한 친구의 짝꿍이 바로 굴삭기 친구였고 그 후로 지금까지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시 친구는 딱히 의도한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머리스타일은 근 이십여 년을 넘도록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힌 ‘개성적인’ 모습이었다. 그때는 웃기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밋밋하다 생각했던 내가 원하던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런 인상으로 말이다.

Artboard 5-100.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밝은 귀와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