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 (2021)

왜 우리는 누군가의 무덤을 파 내려가는가?

by 투연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더 디그는 제목이 정직하게 알려주듯 땅을 파는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우울한 시기, 영국의 한 지역의 부유한 미망인 이디스는 자신의 사유지의 둔덕을 파보기로 결심한다.

지역 박물관으로 부터 훌륭한 발굴자인 배질 브라운을 소개받게 되고 둘은 힘을 합쳐 땅을 파 내려간다.

땅 속에서 배가 발견되고 이것은 배를 관으로 삼아 함께 매장한 무덤임을 알게된다.

부장품들이 함께 발견되고 놀랍게도 그것은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던 시기 'Dark Ages'의 유물인게 밝혀지면서 영국의 역사에 남을 발굴이 된다.


혹시라도 최근의 한국영화 '도굴'을 떠올리며 유물발굴과 관련된 흥미로운 오락영화 인가? 라는 기대를 품고 영화를 보셨다면,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이 영화는 자극적인 설정들로 흥미를 돋구는 지점에는 관심이 없다. 정직하게 제목 'The Dig' 에 집중한다.


이 영화는 땅을 파 내려가는 발굴이라는 행위를 통해 왜 인간들은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천천히 생각해보게 한다.


2.jpg 이디스 역의 캐리 멀리건, 기존의 영화들과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 못 알아볼지도...


안타깝게도 이디스는 죽어가고 있다. 남편은 죽고 홀로 아들을 키웠지만 아직 아들을 혼자 두고 가기엔 아들이 너무 어리다.

그런 이디스가 배질 브라운에게 부탁한다. 족히 천년은 넘었을 누군가의 무덤을 파 달라고.

고칠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무덤을 파헤쳐 그 죽음의 흔적을 직접 두 눈으로 보려고 한다. 그 가혹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던 이디스는 남편의 묘 앞에서 죽음에 대한 회한과 두려움을 안고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힘들고 지친 마음을 고백하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곱씹으며 괴로워 하지만 발굴을 멈추지는 않는다.


마침내 마주한 죽음의 실체.


발굴된 무덤속의 모습. 오래된 배의 흔적. 그것은 황량하다. 분명 권력자의 무덤이었을 그 배는 긴 세월동안 다 썩고 흩어져 그 흔적만 남았고, 몇몇의 금속 부장품들만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을 흥분시킨다.

결국 이디스는 브라운 앞에서 오열하며 인간의 삶이 유한성에서 오는 허무를 성토한다.

"우리는 죽어요, 결국에는 죽고 부패하죠 계속 살아갈 수 없어요"

이어지는 브라운의 위로

"제 생각은 다른데요, 인간의 최초로 동굴에 손자국을 남긴 이래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러니 정말로 죽는게 아니죠"


브라운의 말 처럼 우리 또한 후대에 의해 발견될 또 하나의 작은 손바닥 자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국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는 후대에 이어지고 후대는 자신들 이전에도 사람들이 있었듯이 자신들의 미래에도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당연한 이치를 깨달으며 그렇게 우리의 삶은 이어지는것이 아닐까.


즉, 필연적으로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에 인생이 허무한것은 아닐것이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빛나는 것이다. 이렇게 허무함을 극복한 사람만이 지금 이 순간에 동굴속 손바닥과 같은 흔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3.jpg 영화의 초반,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브라운에게 이디스는 그 경험에 대해 다짜고짜 물어본다. 그녀는 죽음의 불안감에사로잡혀 있다. 브라운은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디스는 브라운의 말을 이해한듯, 사람들앞에서 다시 밝은 모습으로 유적발굴 결과에 대해서 소개하고 자신의 사촌 로맥스와 새로운 사랑을 앞두고 고뇌하는 페기에게 삶의 유한성속에서 붙잡아야 할것은 지금이라는 예전의 자신이라면 하지 못했을 조언을 한다.

"인생은 덧없이 흘러요, 그렇더군요. 붙잡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이디스는 그렇게 다가오는 죽음을 저주하며 끝없는 허무의 늪에 빠져 우울해하지 않고 다시 지금의 삶을 직시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


이제 모든 행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이디스는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브라운과 함께 유적인 배에 올라 상상의 항해를 나선다.

피하고 싶었던 죽음의 공간에 올라 이디스는 편안하게 누워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은 과거의 바이킹이 바다를 항해하듯 자신은 우주를 항해할것이라 믿는다.

죽음은 멀고 꿈은 가까운 나이의 아들은 이 시간을 통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을 조금은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줄 수 있는 본인의 최선의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장담한다. 본인은 나중에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갈것이라고. 소년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이미 오래전 죽어서 흔적조차 없어져버린 사람들의 공간,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그곳에서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소년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안타깝지만 영화말미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영화를 뒤덮고 있던 불안한 죽음의 기운은 더 커질일만 남은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굴한 배를 다시 예전 모습으로 덮어두고 우리는 또 새로운 길로 나서야 한다.

브라운이 파냈던 흙으로 다시 덤덤히 유적지를 덮는다.

이 땅을 파내려가며 영화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 얻고자 했던 마음속 고민의 해답을 조금씩은 얻은것 같다.

누군가의 무덤을 파 내려가며 그 작고 은밀한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은 동시에 자신도 잊고 지내던 본인 마음속 작은 공간을 들여다보는 구도의 행위는 아니었을까.

그 유적지를 세속적인 명예를 위해 이용하고자 했던 그 위대한 고고학자들은 단 한 명도 그 순간 그곳에 없었다.

브라운의 삽만이 열심히 흙을 퍼 나른다.


[문득 떠오른 생각들]

영화는 끊임없이 죽음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전쟁의 불안감속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마지막인듯 키스하는 군인과 연인의 모습은 애틋하고 불시착한 훈련기 속 익사한 파일럿의 모습을 덤덤히 응시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괴롭다.


땅을 파 내려가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운처럼 인간의 본질을 향한 탐구를 하려는 부류와 반대로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일종의 관음증이 아닐까. 숨겨진 과거의 삶을 유물을 통해 훔쳐보고 흥분하는 부류들. 그저 사람들이 보면 놀랄만한 발견을 향한 그들의 집착 그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얻고자 하는 세속적 성취들.
페기의 남편은 그렇게 의미없이 땅만 파내려가다 껍데기만 남았고 결국 페기를 잃게 되는 것일지도...


서울에 공평도시유적관이 있다. 도시 환경을 정비하고 큰 건물을 세우다가 조선시대부터 근대 경성에 이르기까지의 골목길과 건물터들이 발견되었고 결국 그 유적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최신식 거대한 빌딩의 지하 전체가 거대한 유적지로 보존되어 있다. 그곳에 가면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것은 이름을 적어놓은 그릇들 이었다. 그릇이 귀했던 그 옛날에는 손님이 오거나 잔치가 있을때 이웃끼리 그릇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고 정확히 돌려받기 위해 먹으로 바닥에 이름을 쓰거나 부호를 표시해서 빌려 주었는데, 이것들을 '묵서백자' 라고 한다.
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발견되었는데 '막비', '은비', '덕향' 등 이름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그릇 밑바닥에 그것을 세심히 적어넣었을 모습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애지중지 아끼던 그릇들을 남기고 그들은 어디로 간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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