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and the Backbeat

Stuart Sutcliff

by 서태원 Taewon Suh

팝 아트 계열의 시조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Eduardo Paulozzi는 1940년대 후반 팝 아트의 전형을 정의해냅니다. 1950년대 이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쉬타인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거장입니다. 파울로찌는 영국과 미국 등 많은 지역에서 대학에서 가르쳤는데요, 특별히 독일에 많은 애착을 갖고 오랜 기간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60년에서 1962년까지 독일 함부르크에 머물면서 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Hamburg에서 조각과 도예를 가르쳤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리버풀 출신 영국 학생 한 명을 만나게 됩니다.

Living ina materialist world (1949), Eduardo Paulozzi

리버풀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열의 칠팔은 축구팀일 것이요 둘셋은 비틀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파울로찌는 비틀스의 멤버 하나를 학생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 멤버는 Stuart Sutcliff입니다. 리버풀 아트 컬리지의 학생이었던 스튜어트 혹은 스튜는 존 레넌의 동급생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존의 밴드였던 비틀스와 자주 어울리게 되고 급기야는 베이스를 배워서 팀에 합류하라는 제의까지 받게 됩니다. 그의 아티스트다운 분위기와 핸섬한 외모 그리고 무난한 성격은 초보적인 연주 능력을 덮고도 남았지요.


그는 자신의 그림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곤 했는데 하루는 그 당시로 큰 액수의 돈인 60 파운드를 단 번에 벌게 되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그것으로 베이스를 사라고 꼬셨지요. 큰 지출에 주저하던 스튜는 마침내 꼬임에 넘어가 연주할 줄도 모르는 베이스를 덜컥 사버립니다. 그리고 1960년 5월경 비틀스에 가입하게 됩니다.

미대 오빠 스튜

당시 비틀스는 함부르크를 자주 방문하여 공연하곤 했습니다. 당시 리버풀 밴드들의 한 트렌드였지요. 스튜도 다른 비틀스 멤버들과 대개 잘 어울리며 함부르크를 드나들곤 했습니다. (참고로 이 시기에는 다른 비운의 멤버인 드러머 Pete Best도 비틀스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티스트 스튜는 끝내 미술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합니다. 당시 이미 거장에 반열에 올라있었던 파울로찌가 함부르크로 온 것을 알고 그의 밑에서 수학하기 위해 1961년 7월에 비틀스를 탈퇴합니다. 워낙 그 의지가 확고했던지라 어떤 멤버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른 마이너한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함부르크의 예쁜 여자 친구 Astrid Kirchherr로 인해 폴 매카트니와 종종 다툼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폴이 스튜를 질투했다는군요.) 참고로, 아스트리드란 아가씨는 이른바 Beatle cut으로 알려지게 되는, 양송이 모양 헤어스타일을 비틀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아가씨가 직접 만진 스튜의 머리를 처음 보는 순간, 모든 비틀스 멤버들은 배꼽을 잡았다는군요. 그러나 그들은 곧 이 아가씨에게 머리를 맡기게 됩니다.

1960년 8월의 비틀스: 선글라스 낀 친구가 Stu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튜는 1962년 4월 대뇌출혈로 21살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비틀스 활동 당시 공연 중에 난입한 팬에게 벽돌로 맞아 얻은 상처가 원인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이 비극의 꼬투리가 됩니다.


거장 파울로찌는 스튜가 가징 뛰어난 학생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절친했던 존 레넌은 alter ego를 잃었습니다. 폴과 조지도 스튜의 강렬했던 아티스틱 아우라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곤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1994년 Backbeat이란 인디 영화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의 성과와 인식이 어떤 판단의 전부라면 이 세상은 극도로 불평등한 곳입니다. 스튜의 요절은 엄청났던 그의 예술적 잠재력을 그대로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오직 몇몇 진지한 예술 애호가와 비틀스의 팬만이 아직까지 그를 기억합니다.


큰 성공에는 formula가 없습니다. 작은 성공 만이 포뮬라를 통해 큰 성공을 복제할 뿐입니다. 브랜드의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좋은 부분들을 가져온다고 해서 그 총합이 가장 멋진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움은 균형에 대한 것이고 그 전체는 항상 부분의 합보다 큰 것입니다. 스튜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연민이 있지만 비틀스는 그 없이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그 균형은 덜어도 깨지며 더해도 깨지는 것입니다.



Love me tender (Elivs Presley cover) by Stuart Sutcliff, The only known recording of Stu


*Title Image: Untitled 1961-1962 (oil on canvas) by Stuart Sutcli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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