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의 주관성과 의미화
대중음악 가사의 진부함이 싫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대중음악에 판에 박은듯한 진부한 가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 유행하는 대중적 표현을 짜깁기 하는 C급 가사는 물론이요, 은유와 직유를 빈번히 사용하면서 감정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유사 시적인 표현도 진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대중음악에 진부함은 필수적입니다. 시장은 진부함을 원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에 호감을 갖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나와야 공감이 되겠지요. 사실 진부하지 않은 가사마저 인지적 노력의 반복을 통해 주관적으로 진부해질 때 그 효과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어떤 노래를 좋아하게 되는 것에는 친숙성을 증가시킴으로써 호감을 생성하는 과정이 관련됩니다. 그 과정에는 특히 가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유형은, 대중적 표현의 단순한 나열입니다. 대부분의 대중음악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대중적 표현이라기 하기는 어렵지만 하위문화의 독특한 표현을 해냄으로써 특수 계층의 친숙성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형과 첫째 유형과의 차이는 단순히 타깃과 그 크기의 차이일 것입니다.
보다 차별적인 세 번째 유형은 아방가르드적 성향 혹은 브랜드에 대한 강렬한 유착을 기초로 창작자 맘대로 자유로운 창작을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인디 밴드의 묘한 매력은 많은 부분 이러한 자유로움에서 나옵니다. 작가의 주관성을 마구 표출하는 것이지요.
먼저 그 차별적인 신기함이 좋을 수 있습니다. 혹은 그 밴드가 좋다면 모든 것이 다 좋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꾸 듣다 보면 인지적 처리를 통해 친숙감의 증가하게 됩니다. 이러한 친숙함의 강도는 그 인지적 자원의 투여량에 비례합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더 좋아지는 것이지요. 가사의 자유로운 주관성이 효과를 갖게 되는 이유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로 주관적 체험이 높은 퀄리티의 영감을 가져온다는 점에 있습니다. 많은 명곡이 주관적 체험의 순간에 탄생합니다.
독특한 주관적 체험에서 쓰여진 곡을 하나 소개합니다. 거의 반 세기째 인디 밴드인 The Wire의 2016년작 [Nocturnal Koreans]란 넘버가 있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가 될수도 있지만, 일단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가는 곡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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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cturnal Koreans
Are walking the halls
They missed their connection
They’re climbing the walls
Cracker barrel kids
And their cracker barrel folks
Beavis and Butthead...
Thro’ their cracker barrel jokes!
가사 전체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잠을 안 잔다는 건지 그들이 좀비란 건지 도저히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작가의 설명 없이는 말이지요.) 사실 이 노래는 밴드가 투어 여행 중 매사추세츠 주의 한 호텔에서의 그들의 경험에 대한 것입니다. 작가는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었던, 기독교 관련 행사에 참여하려고 한국서 날아온 투숙객들이 시차로 고생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지요. 시차를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행사 일정으로 인해 헤매시는 한국분들을 보고 계속 시차를 바꿔가며 여행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동일시한 것입니다... 이제 그 장면이 눈에 그려지지 않습니까?
어쨌든 인디 밴드는 대개 진부함에서 자유롭습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이전에 이러한 주관성이 짙은 가사가 거의 전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음악산업의 취약성과 동시에 인디 밴드가 존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겠지요. 80년대가 되고 제5공화국 당시 대중문화에 대한 탈규제가 시행된 이후에야 예외적인 사례가 나타납니다. 창작자와 제작자가 조금씩 자기검열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어머니와 고등어] by 김창완 (1983)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 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
[이층에서 본 거리] by 다섯손가락 (1988)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듯
세상은 평화롭게 갈길을 가고
분주히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온종일 구경하는 아이도 있고
시간이 숨을 쉬는 그 길가에는
낯설은 그리움이 나를 감싸네
이층에서 본 거리 평온한 거리였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제3공화국이었다면 고등어를 먹고 싶어하는 것이 반정부적인 행동이고 친구가 외면하는 것은 정부를 외면하는 것이요 안개가 자욱한 것은 최류탄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한국적 가사의 주관성은 대개 정서적입니다. 주관적임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쉽게 일으킵니다. 이러한 정서적 연결이 시적인 감동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공감한다면 당신은 나이가 좀 많겠군요...)
*Title Image: The Smiths,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디 밴드
[(Don't you) forget about me] by Simple Minds in 1985: 사회비판적인 정서의 밴드였던 심플마인즈는 "넌 날 잊었나"하는 진부한 가사의 트렌디 무비 사운드트랙을 불러 메인스트림 밴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