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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Mar 22. 2023

카지노에서 90달러 딴 썰

카지노 필승전략

카지노에 갔다.

같이 간 친구가 필승전략이 있다며 나를 룰렛으로 데리고갔다.

룰렛의 룰은 간단하다. 룰렛을 돌리기전, 룰렛의 말이 홀수 숫자에 놓일지, 짝수 숫자에 놓일지, 혹은 1-10숫자에 놓일지 그 밖의 숫자에 놓일지 등을 미리 정하고 그에 베팅하는 게임이다. 만약 이긴다면 베팅한만큼의 돈을 추가로 받는것이고, 지면 베팅한 돈을 잃게 되는 굉장히 일차원적이고 직관적인 게임이다.

베팅의 기준이 되는것은, 특정 숫자에 베팅하는게 아닌이상 웬만하면 반반의 확률이다. 짝수나 홀수냐, 중간값의 앞이냐 뒤냐. 

엄밀히 말하면 '0'이 나와도 나는 지는거기 때문에 50보다 살짝 더 작은 확률이다. 



매번의 배팅은 각각 독립적인 확률로 이루어진다. 내가 이번에 이겼다고 다음에도 또 이길것이란 보장은 없다. 마찬가지로 졌다고 다음에 또 질거란 보장도 없다. 그저 매 trial이 시작될때마다 나의 운은 리셋되어 다시 주사위위에 얹어진다. 

거기에 방점이 있다. 다시 처음부터 운을 시작할 수 있는것. 

그러니 전에 안좋았어도 다시 회생할 수 있고, 전에 좋았어도 계속 좋을것이라며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다. 



이 게임의 필승전략은 다음과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단위의 돈을 우선 약 50대 50확률에 해당하는 기준에 베팅한다.

가령 다음 룰렛은 짝수가 나올것이라는데에 1달러를 건다.


내게 50달러의 기본크레딧이 있다고 쳤을때 정말 짝수가 나오면, 나는 1달러를 따서 총 51달러를 보유하게 된다.

홀수가 나오거나 0이 나오면, 나는 그 1달러를 잃어서 49달러를 보유하게 된다.

50달러이던 돈이 51달러 혹은 49달러가 된상태에서 모든 베팅은 끝이 난다.

끝이 난다는데 방점이 있다. 방금 시도에 관한 모든 운도 끝이 났다.

이제 다시 베팅을 하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나의 몫이고, 베팅을 했을때의 운은 이전의 베팅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은, 다시 약 50에 살짝 못미치는 승률이 적용된다.


여기서 전략이 나온다.

내가 만약 전 베팅에서 돈을 땄으면, 직후의 베팅에 똑같은 최소 단위의 돈을 건다. 그렇게해서 이긴다면 난 다시 최소단위 만큼의 돈을 번 상태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할테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진일보하며 몸집을 키워나갈것이다. 

50에서 시작해서 1달러씩 야금야금 따면서, 추가로 50달러, 100달러로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복리는 없다. 그저 기본금만큼 더해질뿐인 카지노 치고(?) 매우 성실한 접근이다. 하여 시간이 오래걸리지만 비교적, 카지노 치고 아주 많이 안전하다.


만약 전 베팅에서 돈을 잃었으면 말이 달라진다. 전 베팅에서 잃은 만큼 회수해야하는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팅의 값을 키워야한다. 그 값은 전 베팅금의 2배이다. 

즉 전에 1달러를 걸어서 잃었다면, 그다음에는 1달러의 2배인 2달러를 배팅한다. 그렇게해서 돈을 따면 49달러에서 50달러가 된다. 원상복귀 된것이다. 만회해서 돈을 더 벌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게 중요하다. 딱 전 배팅금의 2배만, 그렇게 원금을 회수하는데만 집중한다. 

그렇게 원상복귀를 시킨 상태에서는 마찬가지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거다. 50달러가 되었으니 나는 이제 약 50에 수렴하는 승률을 가지고 깨끗하게 계속 베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만약 두번째 베팅에도 지면 어떻게 될까. 연속으로 지게 된다면? 하여 베팅금은 커져가는데 남아있는 돈도 바닥을 보인다면?

불운이 몇번 나오다가 운이 한번이라도 나와주면 다시 원상복귀 되는것이기에, 보통 불운이 길어져 가지고 있는 모든 크레딧을 소진하기 전에 금방 원상복귀 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말 만약, 기본금을 넘어서는 규모로 불운이 연속해서 나온다면?

이게 이 필승전략의 한계이며, 이 베팅의 리스크이다. 얼마나 불운이 연속으로 나오는가, 방어할수있는 기존 크레딧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얼마나 대범하게 쫄지 않는가 가 이베팅의 성공을 가로짓는다. 


1달러를 건 첫번째 베팅에 실패하면 이를 잃어서 49달러가 되고

두번째 베팅에는 그의 두배인 2달러를 걸어서 실패하면 47달러가 되고

세번째 베팅에는 2달러의 두배인 4달러를 걸어서 실패하면 43달러,

네번째는 8달러를 걸어 35달러

다섯번째는 16달러를 걸어 19달러,

그리고 여섯번째인 32달러를 걸 크레딧이 충분하지 않아 게임은 끝이 난다.

즉 50달러의 크레딧을 가지고 시작할때, 첫시작부터 다섯번연속으로 불운이 찾아온다면 더이상 게임을 하지 못하는, 패배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연속해서 질수록 베팅하는 금액이 두배로 불어나니까, 처음 1달러 2달러 잃던때보다 훨씬 압박감은 심하게 다가온다. 

배팅금이 32달러, 64달러, 128달러까지 가게되면 '와 내가 지금 한 베팅에 12만원 가까이 걸고 있다고?'며 살짝 현타가 올법도 하다.


사실 거짓말이다. 그런 해석적인 생각이 파고들 틈새가 없이, 이 전략을 사용하면 매우 기계적으로 배팅하게된다. 그렇게 해야하고 말이다. 

카지노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가장 크리티컬한 것이 심리적 패닉, 즉 심리적 패배로 인한 과도한 배팅 및 회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직 확률에 의거해 철저히 계산된 이런 기계적 베팅은 최악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최고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50달러에서 시작해, 별 어려움없이 몸집을 130까지 키웠다. 그저 기계적으로 베팅금을 조정하고, 베팅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몇번이고 시간을 들이는 노가다를 하니 어느새 80달러의 순이익을 손에 쥐게 된것이다. 한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다가 불운이 7번 연속으로 찾아오게 된다. 2,4,8,16,32,64,128. 베팅금이 높아져갔지만 크게 심리적 타격은 없었다. 곧 운이 올것을 알기에, 하여 다시 만회될것을 알기에. 기계적으로 베팅금을 올리는 버튼을 눌러댔다. 

마지막 128의 배팅금을 넣을 당시, 이것이 마지막 베팅이라는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급 불안감이 엄습했다. 128을 베팅에 넣으니 남아있는 크레딧이 3인것을 확인하니, 이것이 일장춘몽ㅇ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사실 별로 힘들진 않았다) 모은 80에 내 원금 50까지 홀라당 다 날아가게 생겼구나. 카지노가 그럼 그렇지. 

그러면서 설마 이번에도 불운이 나오겠어, 근데 나올수도 있지, 이전에 불운이 계속됐다고 이번에도 안나올거란 보장이 없는 반반싸움이잖아! 

짧은 찰나지만 생각이 소용돌이 쳤다. 

결과적으로 내개는 8번쨰 불운이 찾아오지 않았다. 딱 마지막이 될뻔한 베팅에 다행히 짝수가 나와줘서, 나는 그자리에서 베팅금을 포함한 256달러를 획득하게 된다. 그렇게 다시 내 기본금은 원상복귀 되었다. 한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3초안에 모두 경험한듯했다. 


화면 가득히 win!이라고 뜨며 대문짝만하게 256이라는 숫자가 번득였다. 팡팡 터지는 화면 효과처럼, 내 뇌에서도 엄청난 도파민이 터지고 있었으리라. 다들 이 도파민에 중독되는 거겠지. 천당과 지옥을 1초만에 왔다갔다하는 심정에서 그리도 끊을 수 없는 쾌감을 느껴 자꾸 이곳으로 향하는 거겠지. 마치 흐리멍텅한 눈으로 기계를 쳐대며 돈을 계속 날라오는 내 옆자리 인도인 처럼. 돈이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의 문제겠지.


이를 느끼니 급 기분이 안좋아졌다. 

먼저 돈을 잃을뻔 했다는데서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놀이구나 새삼스럽지만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운이 7번 연속으로 안나올수있다면 8번,9번, 나중에 기본금이 더 커져도 그를 능가할 수준으로 안나올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내 뇌가 걱정되었다. 안그래도 도파민 중독에 대해 우려가 많고, 실제로 스마트폰중독이 의심되어 각종 소셜네트워크를 다 지우고 생활한지 몇주차인 나였다. 내가 그토록 도파민으로부터 내 뇌를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놈의 도박이 또 내게 도파민 자극을 뿌려? 괘씸했다. 내 소중한 몸, 육체가 영향을 받는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영역 탑랭킹이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만에하나, 내가 이런 좋은 경험과 기분과 도파민의 히스토리로 인해 카지노를 자꾸 떠올리며 오게되면 어떡하지 걱정되었다. 스스로 disciplined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매우 싫어하는데, 그렇게 취약해지면 어떡하지 . 돈을 이렇게 쉽게 벌었는데 자꾸 돈이 돈으로 안보이면 어떡하지. 

며칠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에서 말해보면, 결과적으로 해당 경험이 영향을 아예 안미친것은 아니나 걱정하는 만큼은 아닌듯하다. 

하지만 비싸보이는 식당에 조금더 대범하게 들어가게 되고, 원하는것을 턱턱사게되는데는 영향이 있다. 브런치가 4만원이야? 카지노에서 10분이면 버는돈인데, 하는류의 생각들 말이다. 

물론 사업으로 돈을 벌기시작했을 때부터, 즉 내 시간과 돈을 일대일로 교환하는 체계에서 벗어났을 때부터 이런 류의 생각은 시작되었고 

그로인해 씀씀이가 더 커진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너무 과도하게 되지 않으려, 소비습관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려한다. 


셋째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흘긋보니 그들은 내가 돈을 땄을때 보다 더 많은 돈을 기본금으로 쓰며 베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것이 거의 다 소진되었고, 어디갔다오더니 현금을 기게에 마구 넣더랬다. 그리고는 또 얼마지나지 않아 기계를 막 치길래 봤더니 크레딧은 일의 자리 숫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많던 돈이 다 어디갔단 말인가! ㅜㅜ 

남의 불운에 내가 공감하고,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머리로 너무나 알지만. 내게는 운이 찾아왔다고 마냥 좋아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돈을 땄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랐으면 했다. 한편으로는 내 운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여기 돈벌러 온거 아니고, 그냥 경험하러 온건데. 그냥 운이 좋아서 돈을 땄던건데. 

그 속도 모르고 같이 온 친구는 큰소리로 자기는 200달러를 벌었다며 , 맛있는거 사먹자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어휴 못난놈. 너랑은 관계가 더 깊어질거 같지 않구나. 



7번의 불운이 다녀간 이후, 나는 얼마가지 않아 게임을 그만뒀다. 운이 3,4번 정도 계속 될때마다 자꾸 이전의 7번연속 불운이 겹쳐떠오르며 불안감이 커졌다. 무엇보다 돈을 다시 따게되었을떄 화면에 팍팍 터지는 효과애니메이션이 불쾌했다. 그것이 내 뇌에 터지는 도파민을 보여주는것 같아서 였나보다. 즉 나는 내 머릿속에 일어나고 있을 도파민 파티에 불편함을 느낀것, 나도 모르게 중독되고 취약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느낀것으로 해석된다. 

그렇게 100달러의 목표를 채우지 못하고, 90달러의 추가 수익이 확정되는 순간 자리를 떴다. 


이러한 불쾌한 감정이 묻은 돈을 들고 집에 가기가 망설여졌다. 이 돈을 행복하게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주변에서 카지노에서 300만원을 홀라당 태워버린 이의 얘기를 들은 이후로 이곳 카지노와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다. 하여 이곳에서 좋은 기억, 감정을 만든게 찝찝했다. 

모든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이지만 이번 경험은.. 없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다. 

쉽게 돈을 딴 경험도 싫었다. 로비를 걸어나오며 친구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기서 약 이틀만 그 노가다를 하면 저기 보이는 구찌 가방을 하나 가질수도 있다고 했다. 말이 되는거 같아서 더 싫었다. 거기에 솔깃하는 나는 더더더. 돈을 환급받으며 내손에 쥐어진 추가 90달러가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돈에도 온도와 감정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돈에서 느끼는, 그돈을 얻는 과정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이겠지. 

내가 카지노에서 환급받던 90달러는 뭔가 미지근한데 잿빛이었다. 환희로 가득찬 황금빛도 아니었고, 발랄한 시원한 온도도 아니었다. 

하여 그돈을 쓰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쉽게 벌었으니 여기서 다른 게임을 하며 홀라당 다 써버리고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쉽게 얻고 또 쉽게 잃은것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 것이니, 마음을 달래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쉽게 돈이 벌리는 방법-카지노'에 대한 인식을 지우는 소위의 목적도 달성하고 말이다. 아니면 차라리 기부를 하거나 말이다. 혹은 그 돈을 잃은듯한 옆자리 인도인에게 줄까도 잠깐이지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돌아왔다. 다른 게임을 할 기분도 아니었다. 

내 기분을 티를 내고(특히 안좋을수록) 남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것을 싫어하고 유의하는 편인데, 이번 카지노행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친구가 카지노에서 돈을 따고도 해피하지 않은 사람은 너밖에 없을거라며, 자기는 가난하니 그돈을 자기에게 기부해도 된다며 농담을 건넸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친구에게도 미안해서 심심한 사과가 담긴 감사인사를 남겼다. 내게 이런 멋진 경험을 선사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너무 빠지진 말자고 ㅎㅎ 


앞으로 카지노를 갈것 같냐는 질문에는, 잘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불쾌한 감정은 잠잠해졌고, 여기에 내가 attached 할거라는 걱정도 기우라는걸 확인한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돈은 쓰지 않았다. 꺼내서 보지도 않았다. 아직도 나는 화가 나있나보다. 

그치만 재밌는 경험이었다는데에는 변함이 없기에, 

그리고 이 카지노를 통해 되새기고 확신을 얻은 인생의 진리('불운이 있으면 얼마나 걸리든 결국 운이 온다')가 있기에

(또 돈도 벌었기에)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이 진리가 내 현상황(좋은 조건의 집을 놓치고 다시 집을 알아봐 이사나가야하는 굉장한 불운)에 적용되어 더 마음에 남는 경험이 될듯하다. 


-다음편 : 카지노에서 인생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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