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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Feb 09. 2020

말잘하는 사람은 하려는 말이 있다

전국토론대회 수상자가 전하는 말잘하는 법04

말잘하는 사람은 하려는 말이 있다(말의 생산성 결정짓기)


말을 잘하는 사람은 결국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쭉 풀어내고 나서 청자의 머릿속에 딱 하나의 메시지가 남게하는 것. 그것이 말을 하는 유일무이한 목적이 되어야한다고 여러 번 말한 적 있다.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히 있어야하고 그것을 한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지만이 결론을 향하는 방향이 담긴 말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개의 글

결혼을 한 지인들을 볼 때 그 만족도가 기대한 것을 웃도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이유가 있겠지만 ‘남’과 가족이 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가장 많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살을 부대끼며 같이 사는 것보다도 더한 의미를 갖는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함께 내리고 결정에 따라 오랜기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밀레니얼 세대가 도래함에 따라 혼자 결정하고 혼자 생활하는게 익숙한 이들에겐 여간 어려운일이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많은 이들은 결혼을 행복해지기 위해 한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결혼하고 행복한가? 지금까지 일구어온 삶의 반경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경험을 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있는 이들이 많을까? 이럴바에야 결혼은 안하느니만 못할 수 있다     



결혼하고나서 여러 상황에 처하게 된다. 취미생활을 포기해야하는 문제, 더 이상 나로 살아가지 못하는 문제 등이 그 예이다. 이는 결코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이 행복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다면, 결혼을 할 필요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위 두 글을 보고 어떤 차이를 느꼈는지 살펴보자. 둘다 결론은 같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근거 역시 ‘결혼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 같다.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에 얼만큼의 비중을 뒀는지에 따라 결론의 전달력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글은 왜 결혼생활이 마냥 행복하지 않은지, 즉 글 전체의 '근거에 대한 근거'를 이야기하느라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오히려 결론은 맨 마지막에야 달랑 한줄이 나오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은 결혼을 왜 하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막무가내로 결론을 도출해낸 느낌마저 난다. 이정도면 차라리 글의 초점을 ‘왜 결혼은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가’로 맞추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무리하게 기존에 설정한 결론까지 끌고가려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반면 둘째 글은 일단 짧다. 필요한 말만 담백하게 들어가 있다. 물론 짧은 말이 언제나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한 성분들이 적절한 분량으로 언급되었기에 글 전반에 균형감이 생겼고, 결정적으로 도출하고자 하는 결론이 더 돋보이게 되었다. 왜 결혼하고 나서 행복하지 않은지, 그 근거는 짧게 두개 정도의 예시로 쳐냈고 행복감을 주지 않는 결혼을 왜 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충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것

위에서 글을 하나씩 분석하며 각각의 이야기가 구조의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 밝히는 작업을 잠깐 했다. 이렇게 내가 지금 논증의 결론을 이야기하는지, 근거를 이야기하는지, 근거와 결론을 이어주는 전제를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사건의 원인을 이야기하는지, 현상을 이야기하는지, 당위적인 주장을 이야기하는지, 사실 자체를 이야기하는지, 해석을 이야기하는지 등등 스스로 인지가능해야한다. 이를 각각의 말꾸러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에 이렇게 정체성을 스스로 그리고 빠르게 부여할 수 있다. 이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구조와 맥락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관련이 있다.

    


현상과 인과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던 많은 일을 대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빠른 정보처리능력을 지녔고, 주어진 데이터에서 가설을 도출해내는 연역적 추론까지 가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능력이 있기에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는 일의 성과를 보일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단순 연산을 필요로하는 회계 분야에서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이 처리하고 있다. 고차원의 연역을 필요로하는 의학, 법학의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의 대체가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     



위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맨 앞에 나와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를 도출하기위해 어떤 설명을 덧붙였는지 살펴보겠다. 먼저 첫번째 단락에서는 인공지능의 어떠한 특성이 근거가 되어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결론을 내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인공지능은 이러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뺴앗는 형태로 나타나게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대표적인 인과적 설명이다. 즉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 문단은 실제로 인공지능의 일자리가 대체되고 있는 사례를 나열하고 있다. 별다른 설명 필요없이, 실제로 그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는 대표적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런식으로 지금 말하는 글이 인과적 측면인지, 현상적 측면인지 나눌 수 있어야한다. 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몇가지 예시를 통해 연습을 하면 충분히 늘릴 수 있다.



현상과 당위


원인과 현상을 구분하는 것 만큼이나, 현상과 당위를 구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현상은 일어나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면, 당위는 주장과 같은 당위적인 이야기이다.


보드마카는 내가 싫어하는 색이야. 갖다버리고 새로운 걸 사야해.

몰티져스 품절대란이 일어났어. 외국에서 물량을 공급해와야해.

이 마스크팩 정말 좋아. 너희도 모두 써야해.     


일상에서 흔히 쓰는 문장들이다. 그리고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붙여서 많이 썼던 문장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크게 현상적 측면과 당위적 측면으로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영역이었다는 것을 오늘부터 알도록 하자. 앞문장이 현상에 대한 이야기, 뒷문장이 당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자유자재로 구분이 되기 시작하면 글과 말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성숙해질 것임을 확신한다.



사실과 해석


현상에 대한 말 역시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누가들어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적 측면이거나 나의 가치가 개입된 해석적 측면이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좋다 싫다 와 같은 감정이 들어갔다면 해석, 그렇지 않다면 사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보드마카는 검은색이다. 내가 싫어하는 색이다.

칠판에 글을 쓸 때 사용된다. 길이가 짧아 글씨 쓰는데 불편하다.

이 마스크팩을 사용했더니 뾰루지가 사라졌다. 마스크팩은 너무 효능이 좋다/어느정도 뾰루지는 있는게 좋아서 엄청 만족스럽진 않다.

몰티져스 품절대란이 일어났다. 큰일이다/더 이상 몰티져스를 사먹을 수 없으니 다이어트를 위해 좋은일이다.      

이처럼 같은 사실을 보고도 좋다 나쁘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보통은 사실자체만을 이야기해야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사실을 토대로 그에 대한 나의 해석을 말에 담기 마련이다. 이 모든것은 현상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 자체로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분하는 것이 좋다. 일례로, 의견을 말해야하는 자리에서 사실만 나열하고 있으면 듣고있던 상대는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 지표들이 좋다고 나쁘다고?”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매우 좋은 지표가 된다.      



선험과 후험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하려는 말의 선험적 이야기인지 후험적 이야기인지 구분하는 것 역시 중요한 포인트가된다.


(주장)인공지능은 인간소외현상을 가지고 온다.

(근거)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기 떄문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고유영역을 잃으면 소외된다.     


위의 주장과 근거가 담긴 논증(첫째줄, 둘째줄)을 보고, 그 바로 아래 두 문장(셋째줄, 넷째줄)을 살펴보자. 근거(둘째줄)를 기준으로 했을 떄 무엇이 선험적 이야기이고 후험적 이야기인가? 쉽게 말해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가?     

 

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데?

인간의 일자리 대체되는게 왜 인간소외현상을 가져오는데?


위의 두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왜는 근거를 묻는 질문이고 근거에는 현상적 근거와 원인적 근거 두가지가 포함된다. 여기 언급된 것은 원인적 근거이다. 그렇다면 전체 논증의 근거(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에 대한 원인을 물었을 때 나오는 답은 바로 첫번 째 질문(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이유)에 대한 답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근거와 주장사이의 관계를 묻는 두번째 질문은, 근거로 쓰인 문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길래 주장을 도출해내는지를 묻는, 즉 결과를 묻는 질문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첫번째 질문은 근거의 원인에 해당하는 선험적 이야기, 두번째 질문은 근거의 결과에 해당하는 후험적 이야기가 된다.

이 두개를 구분하는 것이 쉬워보이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낯선 이야기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수강생분들이 이 두개의 구분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는 결코 정복하지 못하는 산이 아니다. 충분한 노출과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 기를수 있는 체력에 불과하다. 더 다행인 것은 정복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다소 쉬운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구분하는게 익숙해졌을 때 생기는 효용은 이루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만 형용해보자면, 눈이 트이고 말을 갖고 놀 수 있게 된다.      



문제해결의 말하기 툴

말꾸러미의 정체성을 비교를 통해 밝히는 작업을 마쳤으니 조금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하나 풀고자 한다. 아마 많은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도구가 될 것이다. 바로 말의 생산성을 결정짓는 문제해결의 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음과 같다.


현상(사실/해석) - 원인 – 당위 - 근거 – 방법


이 순서대로 사건을 분석하고 이야기하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생산적인 말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단 이때 말하고자 하는 사건이 분명하게 있고 해결하고자하는 이슈가 있을 때 그 효과는 배가 된다.     


미세먼지 농도가 10mg을 찍었다.(현상-사실) 기상청에서 제공한 기준표에 따르면 매우 심각한 수치이다.(현상-사실) 이는 심각한 문제다.(현상-해석) 중국의 대기오염이 주요 원인이다.(원인) 이를 꼭 해결해야지 된다.(당위) 왜냐하면 우리 몸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근거)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는 크게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이 있다.(방법) …      



꼭 모든 성분을 다 우겨넣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 적절하게 취사선택 할 수 있다. 순서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상황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된다. 하지만 각각의 구성을 모두 기억했다가 적용해서 이것이 말해볼만한지 생각해내는 것은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내말의 생산성을 키워주고 여러차원에서 생각해본 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의 생산성이 무에냐는 질문에 이렇다할 딱 떨어지는 대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생산성이란 진부하지 않음의 정도이다. 필자가 말하기를 한창 배우던 시절 가장 많이 한 것은 말잘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발화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말에는 사람의 귀를 쫑긋세우는 탁월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처럼 통찰력있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들으며 굉장히 생산적이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에서 통찰력있는 해석을 뽑아내고 그럴듯한 원인을 도출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갖추어야하는 말하기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말을 여러 번 하는 식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스스로 의식하고 노력해야지 가능한 영역이다.

다시한번 다행인 것은 오르지 못할 나무는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하여 필자는 어느정도 발화능력이 확보되고 난 후에는, 통찰력있는 말하기를 마련하는 노력과 함께 훈련하곤 했다.


문제해결의 툴에 적용해서 생산적인 말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얼마나 진전된 이야기를 하느냐와 진부하지 않은 나만의 이야기를 하느냐가 핵심이다. 사실나열에만 그치는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닌 그래서 좋다 나쁘다 까지 말할 수 있는 것. 좋다 나쁘다 와 같은 단순 기호표시에만 그친 말이 아닌 그래서 뭔가를 해야한다는 당위를 제시하는 말하기.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말하기를 조금씩 더 지향하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이렇게 뽑아낸 것들은 전부 무에서 창조된 유일 것이다. 즉 어디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머리를 굴려서 뽑아낸 통찰들로 말을 구성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사고력, 논리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문제해결의 툴 활용법


사설을 하나 준비하고 그 사설을 이 툴을 이용해 분석해보라. 모든 성분이 다 들어있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의 논리구조를 설명하는 글이기에 꼭 한두가지는 들어갈 것이다. 글쓴이는 어떤 구조로 논지를 풀어내는지 파악하고, 그 구조를 그대로 (혹은 순서를 바꾸는 등 변형을 시켜서) 사용해 요약하는 스피치를 구성해본다. 그리고 마치 이것이 나의 의견인 것 마냥 말해본다. 몇번이나? 내 입에 붙어서 안보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런 활동을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한다면 말의 전개 구조는 물론이고 말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연습, 더 나아가 발화능력까지 갖출 수 있게 된다. 전개 구조에 대한 여러 경우의 수를 접하기에 본인만의 최적화된 구조를 갖게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말을 늘려간다면 지루하지 않으면서 빠른 시간내에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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