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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Dec 31. 2020

나에게 중국어란

퇴사 후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며

12/18


퇴사한지 사일차 되는날이다. 어제부터 시작한 중국어공부에 한창 열을 올리는 중이다. 한달만에 hsk 5급을 끝내도록 해주는 커리큘럼이라 상당히 빡쎄다. 작년 가을 초반부정도 들었던 수업임에도 만만치가 않다. 그때보다 더 한자에 까막눈이 되었을테니 소화해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거 같다. 그래 그게 당연한거지. 곧 익숙해지면 하루 8시간 걸리던 소화시간이 좀 짧아질거야. 



중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가 싫어 선택한 이 언어가 인생을 바꿔놓을 줄이야


중국어 공부는 내게 나름 의미가 있다. 영어 다음으로 배운 외국어이고, 학창시절 스스로 선택한 제2외국어이다. 선택한 이유는 다른 선택지였던 일본어보다 훨씬 쓰임이 많을것이라 확신했고 일본과는 웬지 팔자에 연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학창시절의 선택은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이어오고있다. 당시 중국어 성적이 잘나와 스스로 '소질있다'는 감상에 빠진 것도 한 몫 하겠지. 한 우물을 파야한다는 가성비강박도 작용했을거다. 지금 생각하면 겉핥기 중에서도 초입부분 정도 깔딱 대던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4수강 해봤어? 

이왕 시작한게 아까워서 대학에 와서 중국어를 놓지 못했다. 그렇게 초급중국어1 교양강의를 4수강을 했다. 갑자기 띠용? 한 언어에 대한 열의를 놓지 못하는 것과 한 수업을 사수강한 것은 전혀 관계 없는데 말이다. 그냥 타협이 안됐나 보다. 양민학살하러 초급중국어 들으러온 중국어 쌉고수들과 겨뤄서 이길 형편이 안된다는 걸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같다. 노력하면 되겠지, 다 외워버리면 가능하겠지, 노력이 재능을 이기겠지, 이번엔 다르겠지 하며 안되는걸 되게끔 하는 명분을 계속 만들어냈다. 결국 마지막 사수강째 강의마저 c+로 마무리 지었다. 네번한거면 할만큼 했다고 생각해 그만한것일 거라 여기면 오산이다. 막학기인지라 더이상 들을 기회가 없어서 그게 마지막이었을 확률이 크다. 오기가 붙어서 오수강, 육수강을 이어나갔을지도.. 하여간 현실과 타협이 잘 안되는 이상한 고집이 가끔 보인다. 



고집 고집 똥고집

이런걸 이젠 메타인지지능이 부족한 것으로 표현할 줄 알게 됐다. 메타인지는 내가 아는것과 모르는것, 할수 있는것과 못하는 것을 꽤 잘 인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말해 내 분수를 아는 것. 난 확실히 그게 떨어졌던 것 같다. 보통 평가절상 하는 쪽이었다. 생각해보면 수험생 시절 그런 습관이 날 많이 힘들게 했다. 결과의 측면에서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좋은 동기와 자극을 줬을지 모르겠다. 다만 과정에서는 참 많이 괴로웠다. 절대 못할 양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법도 한데 무리한 스케줄링이 반복된 점, 감당가능한 적당량을 파악하지 못한 점 등. 결국 지속가능한 무언가는 평생 못하는 인간인갑다 오해하게 만들었다. 이를 오해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게 더이상 사실이 아니라는 뜻인데, 아직은 조심스럽다. 사실이 아니게끔 만들어가고 있고, 그러고 싶다. 이는 계속해서 등장해는 '루틴'에 대한 나의 강박과도 이어진다. 



국제연애의 씨앗

다시 중국어 얘기로 돌아와서, 사수강을 씨쁠로 마무리지었으면 환멸을 느껴 더이상 안쳐다볼법도 한데 여전히 중국어는 목마름의 대상이었다. 어쩌다 중국어를 쓸 수 있는 애인을 만나 그 열의를 이어나갈 꽤 그럴듯한 명분을 얻었다. 장거리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마침 자원이 허락해 그가 있는 곳에 가서 중국어를 삼개월 공부했다. 가기전에는 애인찬스가 있으니 삼개월정도면 말은 어느정도 트이고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영어 스피킹 또한 두달만에 뗀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그럴듯해 보였다. 무엇보다 앞으로 중국어를 마스터할 커다란 동기와 족쇄(가성비강박)를 마련해줄 것이 확실해보였다. 어지간히 중국어를 삼켜버리고 싶었나보다. 결과는 예상과 얼추 맞아떨어졌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중국어 공부에 대한 끈을 놓지못한 채 2년이 흘러 지금까지 오게되었다. 



중국어, 네 덕에 살았다!

또 중국어는 내게 재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취업준비에만 몰두하던 시절, 약 한달 반 가량을 집에서 나오지 않고 은둔하던 때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몇안되는 무기력한 시간이었다. 매일 자소서는 찍어내듯 쏟아내는데 이렇다할 소식은 없고 점점 기력은 쇠해가는 와중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우선 매일 밖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복습과 숙제라는 꾸준한 루틴을 만들어 갔다.  며칠 지나자 안읽히던 중국어가 보이고, 문제가 풀리는 성취감을 맛보았다. 숨통이 트이고 몸의 기력이 다시 채워지는 것 같았다. 말그대로 활력이 돋아 그를 동력삼아 다시 취업준비에 열을 올리고 결국 취뽀까지 닿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은 앞으로도 어둠을 헤매게 될 때, 혹은 애초에 헤매지 않게 방향을 제시해줄 좋은 경험이 될 것같다. 생산강박으로 인해 퇴사 후 불안을 느끼는 내게 중국어공부가 잘맞는 처방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퇴사 후 워홀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어를 잘하느냐? 어학연수 시절 보다 못한다. 그이후로 제대로 공부해 본적이 취준때 이후로 손에 꼽는다. 중국어를 잘해야 좋을만한 상황이 없던 탓이 크다. 하지만 가성비강박은 역시나 강력했다. 여차저차 적절한 환경에 힘입어 대만에 가기로 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하는 문제라 반년 넘게 고민을 했고 내년 초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퇴사도 이 계획의 일환이었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데에는 많은 생각들이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단연 사람이었고, 그외에 커리어에 도움이 될거라는 얄팍한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더 얹어서 그곳에서 삶을 그려보면 어떨까하는 꿈까지, 희미하지만 그려보게 되었다.

인생 전반에 중국어가 이렇게나 녹아있을 줄은 또 몰랐다. 새삼스럽지만 신기하다. 중국어는 내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이제는 이렇게 답해볼까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고 갈구하는 욕망이며 아둔한 오기이면서 사랑을 연명하는 촉매이자 나를 구하는 무기이고 미래를 그려보는 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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