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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Jul 07. 2021

다름을 물을 때 조심해야하는 이유

이십대 후반의 내가, 이십대 중반의 내게 건네는 인간관계론

다른건 잘못이 없다.다름을 문제삼지 않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게 잘못이다.



2.다름의 첫인상은 왜?가 아니라, 그렇구나! 여야한다.


-왜 매트를 사달라고 해놓고 한번을 하지를 않니? 

-할거야. 요즘 단지 여건이 안됐을 뿐이야. 매트는 당장 엊그제 도착했고 이틀안한건데 왜그래. 그렇게 나를 재단하지 말아줄래?

-재단한 적 없어. 나 피곤해.


-왜 식재료를 이렇게 낭비하니?

-낭비라니. 딱 필요한 만큼만 샀고 아직 안썼을 뿐이야. 단지 요 며칠 요리를 안했을 뿐이야.

-내가 말 안했으면 요리 안했을거잖아. 됐어.


너무 다르다.

그렇게도 잘 맞는다고 생각하던 이와도 안맞는 부분은 분명 있다. 그리고 이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모든걸 계획하고 그에 딱 걸맞는 재화만을 선택해 소비와 노력을 최소화하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빡빡한 계획에 답답함을 느끼고, 크게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 러프한 선택을 하는 유형이 있다.

둘다 틀린게 아니다. 


습관이란 우리의 생활에 참으로 긴밀하게 스며들었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잠깐 만나서 밥먹고 차마시고 헤어지는 사이에서는 그차이를 인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알게되더라도 이것이 어떤 갈등을 만들지 상상하기 힘들다.


최근 R과 긴밀하게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둘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정도는 아니지만 , 사소하게 다른 몇몇 부분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관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에어컨의 온도와 시간, 소등시간, 소비패턴 등 참으로 사소해보이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부분에서 자꾸 잡음이 생긴다. 특징은 무언가를 함께 결정해야하는 공동의 사안이 조율되지 못하고 있는 형세다. 


다름에서 생기는 문제의 첫번째 접근은 너무도 당연하다. 바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너는 왜그래? 라는 물음표가 찍히는 그 순간부터 딜레마는 시작된다. 


왜?가 아니라 그렇구나!로 모든 인식을 시작해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습관에는 이유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생긴일일 뿐이다.

현상의 문제에 당위로 접근을 하는 것은 참으로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해당 습관이 타당한 논증을 거쳐 합리적으로 도출된 것이라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헌데 우리가 하나의 습관을 갖게 된데에는, '이렇게 하는게 이런면에서 훨씬 좋더라'하는 논증이 매개가 된 것보다도 그저 어렸을 때 부터 보고자란 영향이 더 클터이다. 



왜?가 안좋은 이유가 또 한가지 있다. 왜라는 질문이 갖는 필연적인 반론의 성격때문이다.

물론 정말 순수한 물음의 '왜'도 있겠지만, (대체) 왜? 라는 뉘앙스가 빈번하게 쓰인다.

나에겐 맞는데, 너에겐 왜 아니야? 

이는 듣는이로 하여금 '왜 그런지 증명하라'는 하나의 숙제를 갖게 하는 셈인데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수 있다. 

단지 순수한 의도에서 나의 근거를 설명해야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번거로운 일이다.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면 더 문젠데, 부정당하는 느낌에 기분이 팍 상해버리기 일쑤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퓨어한 논증이 가능한 이들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활동을 즐긴다. 

헌데 R이 왜라고 묻는 것은 참으로 불쾌하다. 그가 던지는 왜?는 대부분 나를 부정하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 그에게 '잘못된 것'임으로 낙인 찍힌 이상, 어떠한 합리적 논증도 그에게 먹히지 않을 것임 역시 안다. 물론 시도도 해봤고 말이다.

그래서 항상 대화가 난장판으로 가버린다. 


다른건 잘못이 없다. 다름을 문제삼지 않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게 잘못이다.

존중만 있다면 그다음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을 시도해볼 수 있다. 

맞지 않는 습관의 충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다거나, 영역을 나누어 각자 서로 양보하는 방법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존중이 없으면 파국이 된다.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은 참으로 불쾌하다. 다름에 대한 인내심 또한 참으로 갉아먹는다.

그래서 나 또한 상대를 존중할 여유를 잃게 된다. 

존중이 부재한 대화가 이렇게나 위험하다.  


답답하고 지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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