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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Jul 19. 2021

연애와 직장내 가스라이팅의 차이점

출처 : 머니투데이 [나도 모르게 당했다?…'가스라이팅' 자가 진단법]



내가 귀엽다고?

응 그런데 안경벗으면 더 귀여워



오랜만에 S가 또 본인은 모르는 실언을 한다. 2년째이다.



지금도 예쁘지만 화장을 하면 더 예쁠거야. 안경을 벗으면 눈이 더 빛날거야. 장발이 좋으니 머리 자르지 마. 피부관리를 받아봐. 턱 밑에 살이 생겼어 



이런 말도 안되는 말들이 귀여운 어조로 대화에 시나브로 흘러들어온다고 해서 갑자기 분위기가 쨍그랑 깨지진 않는다. 어쩌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끼는데 일년이 조금 넘게 걸릴 수도 있다. 다행히 알아차려서 주의를 줄지라도, 되려 예민하다는 소리가 되돌아 올 수 있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인지하고 경계하고 있음에도 가장 무해하다 믿는 사람에 의해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굴레에 갇히게 되었다는 걸 별안간 깨닫게 되면 어디서 부터 잘못된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 내가 그러하다.


정도와 빈도가 지나쳐 여러번 주의를 주어도 사과는 그때뿐이다. 알았어, 미안해. 상투적인 대답이 애교섞인 말에 가려져 돌아오면 더이상 말을 덧붙이기 애매하다. 그렇게 넘어가면 얼마지나지 않아 똑같은 래퍼토리가 다시 시작된다. 



낯이 익다. 너무도 낯이 익다.






출처 How to Be Successful Without Hurting Men’s Feelings 


사에 문제가 있었다. 사소하고 결정적인 문제들이 분명히 있었다. 계속해서 지적되고 크고 작게 또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하지만 모두가 쉬쉬했다. 지적될 때면 이때뿐이다 하고 무사히 넘어가기에 바빴다. 불려가 깨질 때면 세상에서 가장 잘못한 죄인 마냥 몸을 한껏 움추리며 상사의 화가 조금이라도 사그라들 수 있도록, 하여 빨리 이 상황이 끝날 수 있도록 처세했다. 



문제를 명확히 하는게 어려웠다. 여차저차 알아내도 해결하는 건 더 어려웠다. 무엇보다 개선할 필요성과 의지를 잃기도 했다. 

처음 회사의 분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나서서 무언가 해야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나서면 안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다 알텐데 다들 약속이라도 한듯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왜 이런거죠?'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나지막히 사수에게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답은 '그냥 조용히 있어' 였다. 얼마나 조용히 있기를 바랬는지 손을 아래로 휘휘 젓기까지 했다. 이보다 더 조용히? 그게 나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문제를 보고도 못본척 하고 그를 지적하는 이를 되려 민망하게 하는 것, 가스라이팅이다. 



제대로된 첫 직장이었으니 그런가보다 하는게 많았다. '조용히 있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겠지. 달이 몇번 바뀌고 깨닫게 되었다. 저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게 아니라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못하는 이유는 애초에 해결하기 어려운 더 고차원의 문제(고층부[우두머리]의 문제라고 하는게 맞겠다. 회사 따위에 더 고귀한 가치가 있을리 만무하다)이거나 그만한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신기한건 나도 그 가스라이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를 알고도 잠잠히 있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상사에게 불려가 지적받기 시작했다. 그 빈도가 잦아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적의 원인을 고칠 자신이 없었다. 고치기 힘든 문제기도 했고 동기도 없었다. 오래 있을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탓도 크다. 무엇보다 남들이 다 그러고 있었다. 그저 깨지는 상황을 당해내는 그 순간, 최소한의 스트레스를 받는데 집중했다. 한번은 상사도 혼내다 현타가 왔는지 물었다. '대체 내가 뭘로 보이냐? 왜 고쳐지지가 않는거야?'


제 안중에도 없는 분이시라 뭘로 보이지는 않고, 힘 안빼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했다면 난 더 회사를 일찍 나와야했겠지. 죄송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오히려 변명을 붙였다간 훈계가 고조될 뿐이라는 지혜를 학습해서 항상 담백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반복. 



한번은 사수에게 부탁을 받았다. 언제는 뭘 하지 말라던 분이, 본인도 안하면서 내로남불을 시전하셨다. 요지는 나의 행동을 교정해보라는 것. 사람을 봐서라도 고쳐보기로 약속했다. 그럴듯한 동기가 생겼는데 끝내 이뤄내진 못했다. 오직 신뢰를 져버린데에 속상할 뿐이었다.







길에 돌맹이가 있다. 길을 걷다 돌에 걸려 넘어진다. 욕을 하며 일어서 가던길을 마저 간다. 돌이 그대로 있는 바람에 돌아오는길에도 걸려 넘어진다. 또 욕을 하지만 역시나 치우지 않고 가던길을 간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마을사람 모두가 그런다. 돌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 못해 마을은 점점 힘을 잃어가지만 아무도 돌을 치우지 않는다.


돌을 치우지 않는 심리는 다음 보기로 설명되겠다. 

넘어지는 고통이 참을만 하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을 치울 능력이 없다. 

돌을 치워야된다는 생각에 닿지 못한다.








회사사람들과 나는 문제를 여러번 지적당해도 돌을 치우지 않았다. 치울능력이 없고 본인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고통이 참을만 하다고 느꼈을런지도 모르겠다. 

S도 여러번 지적당했지만 역시 돌을 치우지 않고 있다. 허나 그에겐 위 보기의 전부가 연유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넘어지는게 하나도 안아픈거 같다. 오늘 다른날에 비해 더 높은 강도의 주의를 줬는데 스트레스가 됐는지 내게 그만하라고 했다. 니가 그만하면 되는데 왜 나를 멈추려하는건지 모르겠다. 전형적인 선의의 가스라이팅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 S에게 완벽히 떳떳할 순 없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른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나는 나의 행동을 문제로 인지했다. 본의아니게 특정인에게 폐를 끼치게 된데에 미안한 마음도 조금이지만 가졌다. 그리고 대상에 애정이 없었다

S는 아무리 말해줘도 문제라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미안하다고는 하는데 그게 진심인지는 잘 모르겠다. 노력을 안하는 것으로 봐서 아닐 확률이 높아보인다. 무엇보다 대상에 애정이 있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정말 정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나는 문제를 고치지 못한데 대한, 즉 가스라이팅에 대한 패널티를 받게 되었다. 나로써 물들일 수 없는 대상이 있다는 교훈을 얻은 계기였다.

 S도 내가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하지 않을까. 

복잡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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