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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Jul 22. 2021

바다에 왔다

의식과 일몰의 흐름으로 써진 글

6:25pm

해가 질락말락. 구름에 걸렸다

모래 위로 발을 올린다

좀 걷다 뒤를 보니 나연은 안 들어오겠다고 한다

혼자 걸음을 계속한다

모레를 만지고 싶다

샌들을 벗고 미지근한 모레를 발로 느낀다


6:30pm

바닷물 근처에 왔다

파도가 살랑 살랑 넘실 넘실 놀고있다

그러다 밀려온 물이 발에 닿을락 말락한다

조금만 더!

발가락 앞까지만 오고 힘을 잃어 모레로 들어가버인다

보다못해 두걸음 앞으로가 박력있게 발을 담군다



6:35pm

바닷물에 발목위까지 담근채  방향을 틀어 해안선을 따라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걷는다

그러다 물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지평선을 바라보는 사람을 지난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까?

사실 아무 생각 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풍경을 보며 멍때리는 취미가 있던 스물세살때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겉멋이었다

발을 계속 어기적 어기적 옮긴다



6:40pm

좀 더 걷다보니 바다 안에서 유일하게 놀고있는 두 남녀가 보인다

작은 보드를 들고 있다

서핑족인가?

서핑이 갑자기 너무 멋있어보여서

서핑을 꼭 하러가야지, 여름마다/ 겨울마다 서핑을 하러 떠나야지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물론 아직 한번도 못해봤다


커플에 눈을 다시 돌려본다

가슴까지 오는 깊이에서 큰 파도를 기다린다

이번 것은 패스

이번 것도 아닌가보다

이번 거는? 역시 아니다

뭘 그렇게 뜸을 들이나 했더니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파도가 오자 드디어 등을 돌리고 보드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파도에 밀려 약 삼초간 떠밀려온다

엄청 재밌어 보이진 않는데

둘이 함께해 즐거워보인다

저들에게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거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6:45pm

발을 더 옮기다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모래로 올라왔다가 바다로 돌아가는 파도와

새롭게 모래로 올라오는 파도가 같은 힘으로 중간에서 만나면

힘의 균형을 이루는 자기장처럼 하나의 선을 만들고 그자리 잠시 멈춘다

파도가 잠시 정지한것같다

아니면 파도가 치기 직전의 사진을 보고 있는것 같다

타이밍은 못하는게 없다

이런 기이한 광경을 만들어낼줄도 안다니 말이다


6:50pm

드디어 해가 구름을 빠져나왔다

그러다 수평선에 닿는다

이상하게 갑자기 바람과 파도가 거세진다

해가 질때면 지구와 달의 힘이 달라지나?

아무생각이다

그때 나연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디야?'

어디긴어디야 바다겠지

대충 이제 돌아가겠단 얘기를 하고 끊는다

일몰을 채 못보고 발을 돌린다

이제 해를 등져서 더이상 일몰은 못본다

아쉽진 않다



6:55pm

돌아오는 길에 방금 봤던 이들을 다시 만난다

여전히 재미없는 보드를 타고 있는 남녀를 지나고

여전히 멍때리는 남자를 지난다

그때 파도가, 잘 지켜오던 치마 밑단을 덥석 문다

옷이 젖어버렸다

갑자기 완벽했던 혼자만의 여정이 꿉꿉해져버렸다

해는 지금쯤 완전히 졌을거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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