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옮음의 기준을 '반복되어도 무탈한 것','널리 권장되는 것'이라 정의한다면
홍길동의 행동은 옳지 않다.
홍길동은 탐관오리의 재산을 무력으로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백성은 굶어죽기 일보직전의 상태였고 탐관오리의 수많은 재산은 백성으로부터 무자비하게 수탈된 자산이었다.
백성들은 탐관오리의 재산 수탈 방식의 부조리함을 알리고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했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이때 무력을 사용해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준 홍길동의 행동은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옳음의 기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고 본다.
먼저 백성의 안위가 옳음의 기준이 된다면 홍길동의 행동은 일부 옳다. 즉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홍길동의 행동은 백성에게 일부 도움이 되었다.
당장에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그들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재산을 원래의 주인으로 돌려준 나름의 정의구현도 이루어냈고 말이다.
헌데 앞으로도 백성들이 배를 곯지않기 위해 전적으로 홍길동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백성들에게 곡물을 가져올 수 있는 건 적법한 제도도, 선한 관리도 아닌 홍길동 오직 한 사람 뿐이다.
홍길동이 없으면 백성들의 배고픔은 계속된다는 것.
즉 백성 스스로 자구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홍길동의 방식은 장기적으로는 백성들의 의존도만 높여 독이 될 수 있다.
옳음의 기준이 절차적 정당성 여부에 있다고 해보자.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관점이다.
그래도 홍길동의 행동은 옳지 않다.
홍길동의 행위는 사회를 이루는 규율과 규칙에 부합하는 면이 하나도 없다.
남의 재산을 , 무력으로 빼앗았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홍길동 본인, 오직 한사람이 결정했다.
물론 오늘날의 법치주의 관점에서 당시 상황을 그대로 가져와 판단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당시는 부모의 원수를 찾아가 죽인 자식에게 상을 내리는, 이른바 '이열치열' 문화가 장려되던 사회다.
설령 법이 있다해도 주먹구구에 그쳤고, 인권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 처럼 절대적이고 체계가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필요시되는 최소한의 절차를 따져보았을 때 그의 행동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어떻게 얻게된 재산이던지 간에 당시 탐관오리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무력으로 가져오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사회의 소유권 개념을 흐리게 한다.
이를 정당화하게 되면, 다른 의도로 같은 행위를 한 다른 케이스 역시 정당화 할 수 있는 말초를 제공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곧 사회의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한편 의도가 좋으면 무력이 조금 쓰여도 괜찮지 않냐는 사람들의 말에는 어패가 많다.
우선 좋은 의도란게 무엇인지에 대함이다.
같은 의도라도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효를 위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또한 좋은 의도라는 것을 판단할 주체의 부재다.
특히 혼자서 모든 행동을 자처한 홍길동의 경우, '좋음'을 정의한 것은 오직 자신 한명이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상황에서든 견제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의도가 좋을지라도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고,
의도가 앞으로도 계속 좋을지는 한사람의 의중이기에 견제가 어렵다.
그래서 홍길동의 행동은 절차적인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그럼 홍길동의 행동이 옳을 수 있는 옳음의 정의가 있기는 할까?
오직 의도 하나의 측면에서는 가능해보인다.
백성을 위하고 나쁜 자를 벌하고자 한 권선징악의 의도.
안타깝지만 이 또한 언제나 옳지는 못하겠다.
백성을 위하는 것은 좋은 마음이다.
허나 나쁜 자를 벌하고자 한 것은 언제나 좋은 마음일지 잘 모르겠다.
인간에게 인간을 벌할 권리가 있을까?
우리 사회는 그 권리를 오직 법에만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홍길동은 결국 제3의 대안을 찾아낸다.
부정부패가 없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의 국가를 건설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가 건설한 국가가 과연 백년천년 이상적이었을지는 모를일이다.
허나 기존의 체계에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을 결국 찾아냈다는 점에서 그가 한 일 중 가장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체계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 체계가 썩어있다면 그런식의 접근은 무의미할 수 있다.
마치 홍길동이 썩을대로 썩어빠진 탐관오리로부터 적법하게 곡식을 되찾아와 백성들에게 나눠줄 방법이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 글의 생각들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체계를 뒤집는 방식이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폭동으로 오늘날의 시각에서 '정의'된다는 점에서
사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스운게 없다. 결국 힘의 논리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에서, 시조의 이전 나라에서의 행위들이 높이 칭송되면서도
국가 내의 무력사용과 도적질을 철저히 금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