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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Jul 28. 2021

매번 마감 요정을 차지하는 이유

2n년 지각의 역사

매번 마감 요정을 차지하는 이유


한달 간 매일 글을 쓰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있다.

매일 그들과의 단톡방에는 가지각색의 인증 글들이 올라온다.

오늘도 글을 부지런히 낳는 성실한 사람들.

한달의 절반이 지나고 부터 각 구성원들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로 아침에 글을 쓰고 인증하는 분, 퇴근 후 인증하는 분 그리고 느즈막히 마감 직전에 인증하는 분.


그 중 항상 마감 직전 1분 전에 인증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가끔 마지막 마감요정을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가끔 있는 일이다.


왜 나는 매번 이렇게 늦는 걸까?




2n년을 살아오며 기억하는 가장 오래 그리고 꾸준하게 가져온 습관이 있는데 

바로 지각이다.

초등학교 때도 지각을 가끔했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밥먹듯이 했다.

본가에서 나와 홀로 타지생활을 해야했던 대학교 때는 아주 가관이었다.

이 지각인생이 무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지각을 하는데 있어 큰 문제의식이 없었다.

지각을 하지만 다른 걸 충분히 잘하니 나에 대한 평가를 상쇄할 수 있던 탓이 크다.

'지각을 함에도 무언가를 잘 하는 애', 혹은 '무언가를 잘 하기에 지각 쯤은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애'라는 평판에 나름 자부심을 느꼈던거 같기도 하다.

이상한 심리다.



대학교부터 슬슬 문제다 싶었다.

지각을 하니 출석 점수가 엉망이고 수업을 놓치니까 성적에도 영향이 갔다.

뿐만 아니라 과제 제출도 일이분 씩 늦어서 감점을 받기 일쑤였다.

이제 지각에 대한 불이익이 슬슬 크리티컬 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나를 '지각 하지만 다른건 잘하는 애'로 봐주는 이들이 소수 있었지만

큰 의미는 없어졌다. 대학부터는 남의 사정에 큰 관심이 없다. 



더 문제라고 여긴 것은 이제 고치고 싶어도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미 습관이 고질적으로 자리한 탓에 수십년간 살아온 삶의 방식이 쉬이 바뀌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일시작하면 안늦겠지.

충격적이게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늦었다.

첫번째 직장, 두번째 직장 그리고 잘 버티는가 하더니 세번째 직장까지

지각습관으로 인해 상사에게 안들어도 될 꾸중을 듣기에 이른다.

특히 세번째 직장은 지각이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첫 일년은 잘 버텨오는가 하더니, 긴장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큰 곤혹을 겪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더이상 '그럼에도 괜찮은 애'가 통하지 않는다.

대단한 성취로 지각쯤은 눈감아 줄 수 있는 쿨한 상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분위기에 따라 가능한 곳이 있을 수도 있다고 아직 믿고 있지만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선 거의 대부분 불가능해 보인다.

나에게 그만한 '대단한 성취'를 가능케할 기회가 자주 오는것도 아니고 말이다.


지각으로 생각보다 훨씬 큰 불이익을 받게 됐을 때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보게 되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걸까?

여전히 지각이 그렇게 잘못한 걸까 하는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결코 얕봐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나의 지각습관을 타파하기에 충분한지는 논외지만 말이다. 




매일 자정까지 그날의 글을 인증하는 이 모임에서는, 엄밀히 말하면 딱 하루, 첫날을 제외하고 지각은 없었다.

다만 마감시간에 가깝게 글을 인증할 뿐이다(그게 그거같지만 아주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쫗기듯 마지막에 인증하느냐?



우선 게으름을 물리치고 미리미리 할 수 있는 성실함 및 에너지의 부재다.


다음은 의지를 믿지 않고 행동을 틀에 가둘 글쓰기 루틴의 부재다.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달이면 아침글쓰기 루틴을 만들기에 충분할 줄 알았건만, 글쎄 한달 내내 마감 직전 글을 쓰는 루틴을 갖게 되어버렸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국과의 시차다.


사실 나는 매일 자정에 가까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밤 11시까지 글을 쓰고 있던 것이다! 

한국은 밤12시지만, 이곳 대만은 밤 11시다.

한국보다 한시간을 일찍 지내고 있는 이곳에서 나는 남들보다 한시간이 더 부족한 환경에 처해있었음을, 

사실 나는 마감보다 한시간이나 빨리 글을 써내고 있었음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히는 바이다.



11시나 12시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대단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밤 11시 이후는 하루의 모든 일과가 마무리되기에 안전한 시간이다. 즉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난 후 온전한 평화가 찾아온다는 점에서 11시 이후는 그 전과 질적으로 다르다. 

글을 써내기에 가장 적합한 이 시간대를 활용하지 못하고 

일과의 영향을 받을 법한 시간대에 글을 써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 아무도 관심없겠지만 적어본 마감요정의 처절한 변명이었다. 

아마 이번 한달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이 모임의 마감요정은 쭉 내가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지각의 두번째 이유였던 '글쓰기 루틴의 부재' 해결을 원한다면 아마 다음번 모임에서 시도해봐야지 싶다.

그저 매일 글을 써내는 장벽을 낮추는 것만으로 이번달 모임의 의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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