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2년의 학교생활을 하며 항상 받던 종이에 있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난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적는다.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문장을 앨범에 꽂혀있는 과거의 사진처럼 간직하며 살아갔다. 자연스럽게 나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이왕이면 나의 신념을 반영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과학자였다. 아마 나의 또래 대부분이 비슷하게 선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초등학교 때 희망했던 직업을 모두가 이룬다고 가정한다면, 그때 찍은 반 단체 사진은 절반 이상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5차 솔베이 회의’의 모습과 비슷하진 않았을까 상상하곤 한다. 다른 친구들이 과학자를 꿈꾸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작고 귀여운 생각은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 나의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직업은 검사였다. 나쁜 사람들에게 감옥이라는 장소를 선물해 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정의로운 직업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다만, 그저 권선징악을 실천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투영되었을 뿐, 다소 경박한 태도를 가졌던 직업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꿈꾸던 직업은 방송 PD였다. 나의 얇은 나이테가 한 층씩 새겨질 무렵, 미디어가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PD가 되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3년 동안 PD를 향해 나아가고자 노력했다. 내가 PD가 된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상상하던 시기였다.
결국 지금,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라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찬란하게 빛날 때라는 이 시기를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마치, 할 일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 같았다.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많은 배움을 얻으려 고군분투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성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통찰을 듣기도 하였다. 20살에게도 무척이나 버거운 여름을 보내며 문득 조금 일찍 시작한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얻는 나의 답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내가 간직한 한 문장은 여전히 앨범에 꽂혀 있었다.
자연스럽게, 작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 작가라는 직업은 글을 다루기에 참 매력적이라 느껴졌다. 글의 힘은 무척 강하다. 예를 들어,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며 잔소리를 하는 것보단, 흥부전의 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재밌는 재주가 있다.
글의 재주가 하나만은 아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성장하곤 하는데, 글은 보통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다른 말로 외부 세계와 단절될 때 읽게 된다. 글을 읽으며 나와의 대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개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재주가 하나 더 있다고 느낀다.
나는 누군가의 혼자인 시간, 타들어 가는 자신과 싸움하는 시간, 새벽의 감성이 충만해진 시간에 침투하고 싶어졌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위로하고, 도움을 주길 바란다는 파란 마음이 흰 나를 물들였다. 그렇게 나만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하나둘 적어 가며 ‘브런치스토리’에 살금살금 작가 신청을 했다.
나의 글을 읽으며 공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간직한 한 문장이 생각나며 헤실헤실 웃게 된다. 다만, 글이 가진 힘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하기에 최대한 좋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떠오르곤 한다. 앞으로 난 ‘우리는 좋은 글이 가지는 힘을 믿습니다.’라는 문장을 품고 있는 브런치스토리와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내가 전하는 글이 누군가의 브런치에 함께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