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랑 아-주 오랜 기간 친구인 녀석이 하나가 있다. 나는 이 친구가 조금 힘든데, 나를 너무 좋아한다. 나 말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사랑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난 가깝고도 먼 이 친구에게 짝사랑을 당한다. 근데 자주 개명을 해서 해가 지나면 이름을 바꿔 부를 때가 많다. 그 친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지금 이름은 ‘과제’다. 옷차림은 매번 바꿔서 온다. 아, 이름을 옛날에는 ‘숙제’로 부르거나 ‘수행평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름이 뭐든 나를 귀찮게 만들곤 한다.
장난식으로 말했지만, 지금은 과제를 즐겁게 처리하는 편이다. 과제를 낸 의도를 파악하게 된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과제를 하는 순간이 되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돌아보면, 과제는 나를 성장시키는 영양분이 된다. 많은 이점이 있지만 특히, 과제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큰 장점이라고 본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진 못했다. 그런 이유에서 과거에는 숙제를 엄청나게 싫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숙제를 안 한 날은 없었지만. 아무튼, 숙제라는 친구를 잘 떠올려보니, 어떤 시절이 딱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숙제는 일기를 써오는 것이었다. 그 시절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지 의구심을 품으며 끄적끄적 일기를 적어 제출했다. 여기에 분량 제한이라는 끔찍한 조건이 붙기 시작하면, 나는 스트레스를 마구마구 받기 시작했다. 쓸 이야기를 열심히 적었는데 맙소사, 내가 쓴 이야기의 2배만큼을 더 써야 했다. 그때 나의 세상은 무너졌다. 글씨 쓰기도 힘들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숙제를 하지 않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있을 수 없었던 나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낸다. 어린 시절에 손글씨를 쓰면 가지는 특징인 큰 글씨를 더욱 크게 만들어서 몇 글자만으로 줄노트 한 줄을 꽉 채우려고 했다. 꽤 똑똑하지 않은가? 그런 노력을 했는데도 아직도 남아있는 줄노트 빈칸에 나는 눈에서 레이저를 쐈다. 줄노트를 축소시키고 싶었다. 그러다가 최후의 수단, ‘~’이 물결 표시로 억지로 내용을 늘렸다. 웃기게도, 물결 표시를 남발해서 물결 표시만으로 2줄을 채우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자면, ‘너~~~~~(물결 곱하기 백)무 즐거웠다.’ 이런 식이다. 그때 그 일기를 보신 선생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하다. 소신 발언을 하자면, 최소 분량을 제한하는 건 너무 나빴다. 짧지만 인상적인 일기를 쓸 수도 있는건데... 치사하다.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아래는 나의 초등학교 일기 사진이다.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여 쓴 일기가 분명 있었는데,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다. 나의 어릴 적 물건들은 발이 다 달렸다. 젠장. 겨우 도망가다 붙잡힌 이 일기 사진은 큰 글씨를 이용해서 겨우겨우 채우는 나의 모습이다. 지금 보니 참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