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유치원을 다닐 무렵,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있다. 내가 아주 못했던 종이접기다. 유치원에서 종이접기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잘 하곤 하지만, 유독 나는 종이접기를 잘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 몸을 접어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을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
종이접기를 잘하지 못한다고, 유치원 선생님께 혼난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그 일이 너무나도 스트레스였다. 집에 가서도 색종이와 책(종이접기 도안)을 사서 종이접기를 연습했을 정도이다. 혼나지 않으려고 말이다. 부모님은 종이접기 하나 못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 당시 어렸던 나의 세상은 유치원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위로가 되지 못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의 부모님처럼 종이접기 하나가 뭐라고 그리 유난을 떨었나 싶다. 종이접기 못한다고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면 과거의 나에게 아주 나쁜 짓을 하는 거라 믿는다. 나는 사람마다, 그 순간순간마다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그 어려움을 넘겼다고 해서, 경시해선 안 된다. 지금은 힘듦의 무게가 가벼울 수 있겠지만, 과거의 나에게는 무척 무거웠을 것이다.
인간은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듯,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간다. 아령의 무게를 올려가며 근육을 점점 더 만들지만, 과거의 아령이 그 당시 나에게 가벼웠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과거의 가벼운 아령을 들던 나를 예찬한다. 정말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다. 과거의 아령을 힘차게 들었던 당신들도 멋지다. 그렇지 않은가?
+ 여담으로, 나는 아직 종이접기를 잘하지 못한다고 혼을 냈던 유치원 선생이 옳았던 일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혼을 낼 필요까지 있었을까? 유치원 선생이 가진 책임을 잘 알고 있었을까? 지금 그 선생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의 자녀가 종이접기를 잘하지 못해도, 혼을 낼 것이냐고. 당신이 한 그 말이 누군가를 아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아냐고. 그리고 이 말도 해주고 싶다. 종이접기를 더럽게 못하는 난, 아주 잘 살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