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정답

에세이

by 이태민

그날도 이름 모를 문인의 작품을 보고 있었다. 어떤 문인인지 모르면서 작품을 읽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과제라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낯선 작가들의 작품을 매주 접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읽어오는 것이 과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는 성실하게 작품을 뜯고, 씹고, 맛봐야 한다.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나의 습관이자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고질병을 인지한 순간,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었다.


한글로 쓰였지만 한글이 아닌 것 같은 작품을 멍하니 읽으며 해석하던 날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철저히 분석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고군분투했다. 시를 예로 들자면, 이 단어 하나하나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고민했다. 그렇게 난, 결과적으로 작품 해석의 절대적인 정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문과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고등학생처럼 시어 하나하나의 의미와 정답을 찾아내지 않는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말이다. 중요한 건, 그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 말에, 지금껏 나의 문학을 다루는 태도는 보편적인 정답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입시를 준비하는 처지에서, 문학 작품에는 항상 정답이 있다. 틀린 선지가 있고, 올바른 선지가 있다. 그런데 정말, 문학을 해석하는 데 정답이 있을까? 마치 해석의 여지를 열린 결말처럼 무궁무진하게 남겨두는 포스트모더니즘처럼, 나는 타당한 추론이라면 정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문학 작품을 음미하면서 나만의 해석과 정답을 중심으로 나아가려 한다. 정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해한 것을 절대적 기준에 비교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문학도 예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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