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실패

에세이

by 이태민

에어컨이 없다면 삶의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는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이 있었다. 1학기의 막바지를 달려가는 시기는 대부분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다가오기에 즐겁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수시로 대학을 지원하는 이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성적과 생활기록부 내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대부분의 수시러*들은 이 시기에 자신의 부족한 생활기록부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나는 정시로 입시를 준비하였기 때문에(쉽게 말하자면 생활기록부가 필요 없기에), 2학년까지 해왔던 생활기록부 꾸미기를 그만둔 지 오래였다. 정시러*와 다르게 수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온갖 발표와 보고서를 준비해서 생활기록부를 완성하기 위해 정신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진로와 관련지어 인생을 설계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의 발표 내용을 기억하기란 에어컨 없이 여름을 버티는 것과 비슷하지만, 한 친구의 발표가 나를 경청하게 만들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인생 계획을 멋지게 세웠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제시하여 앞으로의 비전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친구의 발표를 기억하게 된 한 지점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자신의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실패를 계획했다.


나의 인생을 설계할 때, 실패를 가정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보통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만 가득 채워도 모자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실패를 암시한다는 건 무슨 의도일까? 누구나 언제든 평범하게 실패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혹은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양분이 되는 실패는 필수 불가결하다는 뜻일까?


난 과거에 실패를 무척 두려워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는데도 말이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말이다. 실패하면 위축되고 무척 슬픈 건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렇게 좀 낙심해야 사람이 발전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꼈다. 그래서 조금 이상하지만, 실패는 축복이라고 느꼈다. 좌절한 경험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기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실패를 조금 용서하는 편이다.


물론, 모든 실패가 나의 역량 부족으로 연결된다는 건 아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다. 이 사실까지 알게 된 난, 실패한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방어기제가 아니다.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성공과 실패가 내 의지로만 결정되는 일은 드문 것 같다.


그렇기에 실패라는 친구는 미운 정이 가득하다. 인상 깊었던 그 친구도 실패를 용서하고 조금은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소 악의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누구든 자신의 앞으로의 나날들이 항상 성공으로 가득한 삶을 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패도 있어야 하는 법이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삶에 성공으로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슬픈 시간은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그럽게 받아주길 바란다. 아까와는 다소 모순된 태도이지만, 그래도 낙담하는 건 슬프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패는 필요하다. 어쩌면 실패는 성공이라는 메인 요리가 오기 전 애피타이저일지도 모른다.


*수시러 : 정시(수능)와 수시(내신, 생활기록부 면접) 중 수시로 대학을 지원하는 이를 지칭하는 용어.

*정시러 : 정시(수능)와 수시(내신, 생활기록부 면접) 중 정시로 대학을 지원하는 이를 지칭하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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